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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minar Flow Jul 13. 2022

보지도 않는 200권의 책을 못 파는 이유

안 팔려서 더 고마웠던 당근에게



2년 정도 미친 듯이 쓰다 보면 수명 닳는 느낌이 온다. 커피를 물처럼 마시고 4-5시간 자다 보면 심장 뛰는 속도도 빨라진다. 쓰는 일로 얻는 건 적다. 애정은 애증으로 바뀌고 텍스트란 단어 위에 분노가 들러붙는다. 어느 날 책장에 꽂힌 200권의 책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팔아서 음악 장비나 업글해야겠다'

 

하나하나 리스트를 적어 당근에 올린다. 문의, 달랑 1명. 다들 가격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허세용이라 깨끗하다'고 적었음에도 전혀 인기가 없다.

새 책 대비 40-50% 가격이니 비싸보이는 게 맞다. 오픈 마켓이랑 비교해도 괜찮은 상태라 생각했는데, 혼자만의 생각인 것 같다. 아무래도 요즘 중고 책은 3-5천 원 사이라는 개념이 잡혀버린 걸지도. 

그런데 나는 기뻐하고 있다...? 책이 안 팔리는데 왜 기뻐할까? 

책 제목을 적으며 몇 번이고 아깝다는 생각이 스쳐갔기 때문이다. 보지도 않을 거면서 이건 또 무슨 심보인지..





아마 책이 거기 있어서 '책에 쏟았던 시간'들을 추억했던 것 같다. 아웃풋을 만들었던 인풋들이 저기 서있다는 사실로서 위안을 느꼈던 것 같다.


책 쓰기를 막 시작했던 때의 일들이 지나간다. 

같은 카페에서 매일 글 쓰다 매니저님과 친해진 일, 책 목차 뽑겠다고 책을 벽처럼 쌓고 머리 싸매던 일, 밤늦게 맥도널드에 앉아 미친 듯 고쳐 쓰던 일. 그런 생각들이 스치고 나니, 이제야 왜 그걸 아까워했는지 알게 됐다. 


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들의 증거품이기 때문이다.


더 좋은 삼성 모니터를 팔고 더 오래 쓴 LG 모니터를 남겨놓았던 이유랑 닮았을 거다. 더 좋은 주인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곁에 있었으면 하는 애증이다.


힘들어서 안 한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결정적으로 글을 멀리했던 이유는 의미의 상실이었다. 나, 관계, 사회 전체에 대한 번 아웃, 그런 것들 때문이었다. '글'의 의미는 나에게 컸지만, 그걸로 바꿀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몇 년간 번 아웃에 빠져 음악을 전혀 만들지 못했다던 김윤아의 심정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따지고보면 내가 글을 놓은 건 아니었다. 영상편집과 가사를 쓰는 일은 쉬지 않았다.  그것도 글이었지만 부담은 느끼지 않는 편이었다.  늘 글과 멀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늘 쓰고 있었던 거다.

어쩌면 '글'이라는 글자에 내가 너무 두꺼운 프레임을 씌워놓은 걸지도 모른다. 읽으면 써야 하고, 쓰면 깊게 써야 한다는 굴레를 못 벗어난 것이다. 프레임을 버리는 게 글쓰기의 시작이라는 걸, 잊어버렸던 것 같다. 안 팔린 책 때문에 중요한 걸 다시 찾은 기분이다. 오늘은 당근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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