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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주 May 04. 2020

야간열차의 환상과 실제

책 읽기 좋은 공간에 대하여

언제 다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을지 기약 없는 나날이지만,

책을 읽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인 기차에서 독서를 즐길 그날을 기다리며 지난 추억을 꺼내보다.



*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여행자에게 야간열차는 좋은 숙소이자 이동수단이 되어준다. 오후 느지막이 침대차를 타서 한숨 자고 나면 아침에 다른 도시에 도착한다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리스본행 야간열차』 같은 작품들이 야간열차의 로망에 불을 지핀다. 겁없이 홀로 파리발 니스행 야간열차를 예매한 것도 반쯤은 그 책의 영향이었다. 


책은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는 나이든 선생 그레고리우스에서 시작한다. 홀로 일어나 차를 끓여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자리를 옮겨가며 혼자 체스를 두는 풍경은 고독한 노인의 그것이다. 여느 때처럼 출근을 하던 그는 다리 위에서 자살을 하려던 한 여자를 구하고, 그가 수업을 하는 사이 사라진 여인의 코트 주머니에서 『언어의 연금술사』이라는 책을 발견한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에 아마데우 프라두라는 젊은이에 의해 쓰인 책이다. 책 속에서 15분 후 출발하는 리스본행 열차 티켓을 발견한 그는 마법처럼 그 기차에 올라탄다. 아무 연고 없이, 빨간 코트와 책만 들고. 아마데우의 자취를 쫓던 그레고리우스는 그가 비밀혁명당의 당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건은 꼬리를 물고 비밀을 드러낸다. 판사의 아들이었던 아마데우, 그의 절친이자 하층 계급이었던 조르주, 혁명당 동지였던 주앙, 그리고 그들 앞에 나타난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인’ 스테파니아까지. 아마데우의 이야기를 좇으며 그레고리우스는 오랜 시간 자신에게 결여돼 있다고 여겨왔던 것들, 열망이나 희생, 사랑 같은 것들에 눈을 뜬다. 



프랑스 파리 북부역. 야간열차를 기다리며. ⓒ 황은주


유럽의 열차들은 시간대가 자주 바뀌는데다 불규칙한 출발 시간으로 악명 높다. 일찍 플랫폼에 도착해 니스행 열차 번호를 단단히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다행히 별도의 연발 없이 제시간에 출발했다. 혹시나 걱정되는 마음에 일등석 티켓을 예매했다. ‘일등석’이라는 단어에 지나친 기대를 걸었던 걸까, 비행기 일등석과는 달리 무척이나 평범한 모습의 객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긴, 일등석과 이등석의 가격이 큰 차이가 없었던 걸 보면 과한 기대였는지도 모른다. 일등석 침대칸은 양쪽에 이층침대 두 개씩이 놓여 총 4인이 사용할 수 있는 객실이었다. 이등석은 아마 중간에 침대칸이 하나 더 있어서 한 층에 3인씩 잘 수 있는 6인실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인원수가 적을수록 편하겠지, 생각하며 이층침대로 기어올라갔다. 평소 같으면 왔다갔다하기 쉬운 아래칸을 쓰겠지만 혼자여서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에 이층을 쓰기로 했다. 생수 두 병, 베개, 귀마개, 티슈가 침대 위에 놓여 있다. 



야간열차 침대칸에는 한밤의 기차여행에 필요한 물품들이 놓여 있다. ⓒ 황은주


나는 비행기가 출발하자마자 기내 화장실에 가 메이크업부터 지운다. 요즈음에는 아예 로션만 바른 민낯으로 공항에 가 그대로 비행기를 타는 일이 대부분이다. 기내는 너무 건조하고, 메이크업을 한 상태로 열 시간 넘게 비행을 하면 얼굴이 바싹 말라버린다. 공항 패션이니 뭐니 하는 말들도 내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셈. 야간열차도 마찬가지였다. 밤새 열차를 타야 하니 일단 세수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를 대강 정리하고 세면실에 갔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여행지에서 도미토리 공용 화장실을 써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챙겨야 할 도구가 얼마나 많은지. 수건이며 칫솔이며 자잘한 용품들을 잔뜩 챙겨 나왔는데 문이 잠겨 있을 때의 허무함이란. 그 앞을 서성대는데 한 프랑스 아저씨가 열차가 출발해야 문이 열린다고 귀띔해준다. 잠시 객실로 돌아가 기다렸다가 열차가 덜컹거리며 출발하자 다시 세면실로 갔다. 이번에도 문이 잠겨 있다. 아까 그 아저씨 왈, “승무원이 곧 와서 문을 따줄 거예요. 그때 들어가요.” 야간열차 초보 티를 이렇게 톡톡히 냈다. 


애초에 샤워는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세면실은 세수를 하기에도 턱없이 좁은 공간이었다.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의 동양인 여자인 나도 이런데 외국인들은 여기서 어떻게 씻을 수 있는 거지? 의문을 잔뜩 품고 고양이 세수를 마친 채 침대로 기어올라가 책을 펼쳤다. 여행지에 들고 갈 책을 고를 때마다 늘 고심이 되는데, 일단 내가 기준을 두는 건 다음과 같다. 


1. 챕터별로 구분이 되어 있어서 언제든 끊고 다시 읽을 수 있을 것(여행지에서는 오래도록 한 자리에서 책을 읽기보다 장소를 옮겨가며 이동중에 책을 읽기 때문에 되도록 언제든 끊고 다시 들어갈 수 있도록 챕터별로 구분된 도서를 고른다). 
2. 여행지 무드와 어울리는 책을 고를 것(여행지와 잘 매칭된 도서는 여행의 기분을 한껏 끌어올린다). 
3.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다룬 사회과학서보다는 가급적 서정적 에세이일 것(잠깐 내가 속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떠난 여행이므로, 두고 온 곳을 떠올리는 책보다는 새로운 터의 서정을 만끽할 만한 에세이 분야가 좋다).




파리발 니스행 야간열차에서 읽은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  ⓒ 황은주


니스행 야간열차에서 읽은 책은 2013년에 출간된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이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시인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이다. 메리 올리버가 50여 년간 살고 있는 작은 마을 프로빈스타운의 자연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고요한 날들에 대해 담백한 문체로 써내려갔다. ‘생태시인’이라는 별칭답게 자연은 이 시인 앞에서 그 놀라운 속살을 드러내 보인다. 그녀의 문장을 따라 읽다보면 자연이 바로 이 세계의 중심이며, 우리는 그저 자연을 예찬하고 관조하며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밖에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몇 해 전, 이른 아침에 산책을 마치고 숲에서 벗어나 환하게 쏟아지는 포근한 햇살 속으로 들어선 아주 평범한 순간, 나는 돌연 발작적인 행복감에 사로잡혔다. 그건 행복의 바다에 익사하는 것이라기보단 그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에 가까웠다. 나는 행복을 잡으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행복이 거저 주어졌다. 시간이 사라진 듯했다. 긴급함도 사라졌다. 나 자신과 다른 모든 것들 간의 중요한 차이도 다 사라졌다. 나는 나 자신이 세상에 속해 있음을 알았고 전체에 속박되어 있는 것이 편안했다. 그렇다고 세상의 수수께끼를 푼 기분을 느낀 건 결코 아니었고 오히려 혼란 속에서 행복할 수 있었다. 

_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마음산책, 2013.



메리 올리버의 문장에 이끌려 낯선 곳이라는 걱정도 긴장도 잊고 그만 잠에 빠졌다. 푹 자다 일어나보니 어느새 아침. 기차는 아직 니스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객실에 프랑스어로 계속해 방송이 나왔다. 아래층 침대에 있던 프랑스인 커플이 묻는다.


“어디까지 가세요?”

“니스까지요.”

“아 그럼 다행이에요. 중간에 내리지 말고 끝까지 가면 될 거예요. 우린 이만 가볼게요.”

“고마워요!”




그렇게 닿은 니스의 풍경. ⓒ 황은주



기차는 책을 읽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책을 읽으며 내 의식이 잠시 낯선 세계를 헤매는 사이에 기차는 나를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데려다놓는다. 일상에서의 독서가 우리의 정신을 잠시 여행하도록 만든다면, 여행지에서 하는 독서는 몸과 마음이 동시에 여행을 떠나도록 만든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그레고리우스는 왜 아마데우의 자취를 좇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는 이렇게 답한다. “그의 이야기는 엄청납니다.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거든요.” 그레고리우스는 다시 베른으로 돌아갔을까? 그는 다시 홀로인 삶을 택하게 될까?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자취를 좇으며 나름대로의 답을 만나게 된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두고 온 것들을 찾아가야만 하는 때를 만난다고, 그렇게 스스로와 마주할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그것은 어쩌면 스스로를 발견하려 오늘도 끊임없이 뭔가를 발견하려 여행을 떠나는 우리 모두가 들어야 할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평생 한 마을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메리 올리버는 가장 오래 한 자리에 머문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통찰을 펼쳐 보인다. 지구별 여행자인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의 삶에서 빛나고 있다고, 무엇을 찾기 위해 여행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세계는 그 자체로 이미 빛나고 있다고. 애써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오히려 지금, 내가 머물던 자리가 더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일 것. 야간열차에서 했던 심야 독서는 내게 여행지를 넘어 더 먼 우주를 펼쳐 보여주었다. 


우주가 무수히 많은 곳에서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_메리 올리버, 같은 책. 






* 월간 국회도서관에 기고한 글입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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