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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주 May 16. 2020

‘좋은 사람’이 헤어지지 못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걸

            

“집 열쇠 있지? 들어가면 책상 아래 제일 구석에 상자가 하나 있어. 그거 열면 검은 양복이랑 넥타이가 있을 거야. 택배로 좀 보내줄 수 있어? 아버지 아무래도 힘드실 것 같다.”     



수백 번도 더 돌렸을 열쇠 문인데 손이 덜덜 떨렸다. 그의 말대로 책상 아래쪽을 보자 그가 깨끗이 다려둔 검은 양복이 보였다. 바지에 잡힌 주름이, 깨끗하게 접어둔 와이셔츠가 너무 그다워서, 너무 그 사람이어서 나는 검은 양복을 손에 쥔 채 엉엉 울었다. 너는 왜 이런 걸 부탁할 사람이 전 여자친구밖에 없는 거니. 왜 아직도 내가 가장 가까운 사람인 거니.     



우리는 2010년에 만나 2016년에 헤어졌다. 우리는 동아리에서 만났다. 그는 동아리의 회장이었고, 나는 창립 멤버이자 개국 공신이었다. 우리는 함께 동아리를 키우고, 신입 부원을 모집하고, MT를 가고, 술을 마셨다. 그는 나와 사귀기 시작할 무렵부터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연애한 6년간, 그는 꼬박 공부를 했다. 고시라는 건 한 사람의 세계를 극단적으로 작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오전 열한시 반, 오후 다섯시 반, 밤 열한시. 그와 내가 통화하는 시간이었다. 그가 세계와 유일하게 소통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노량진에 들어가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그에게 나는 유일한 세상이었다. 내가 그의 온전한 세상이라는 게, 처음에는 좋았고, 자주 버거웠으며, 종내에는 귀찮았다. 그는 나의 오빠이자, 스승이자, 선배였다. 그러나 연인은 아니었다. 아니었다는 걸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그는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참 바른 사람이었다. 그게 사람과 사람이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6년의 고시 생활을 청산하기로 한 날,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2월의 어느 주말이었다. 그 도시의 전망을 구경하다,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는 거였다. 함께한 첫 여행이자 2박 3일의 가장 긴 여행은 그렇게 반나절만에 끝이 났다. 그는 바로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는 예약한 숙소에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KTX를 탔다. 믿기지 않는 일 앞에서는 논리적 사고가 마비된다. 나는 그가 내가 받아야 할 벌을 대신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내가 권태기여서? 그에게 더 이상 사랑을 느끼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해서? 우리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나와 우리 스스로를 속여서?     



그의 아버지는 갑자기 찾아온 뇌졸중으로 전신 마비가 되었다. 고향으로 내려간 그는 쉽게 올라오지 못했다. 아버지의 똥을 치우고 소변을 받고 때마다 운동을 시켜드린다고 했다. 이미 결혼한 누나와 서울에 있는 형, 나이든 어머니 말고, 붙어서 간호를 할 사람은 사실상 직업이 없던 그 사람뿐이었다. 그는 서울로 올라올 수 없었다. 선택은 내 몫이라고 했다.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강요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선택해야 했다. 그와 결혼을 해 지방에 내려가 살아야 할지, 말지. 



6년의 연애는 그렇게 끝났다. 문제는 아버지의 병 수발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좋은 헤어짐의 구실이었다. ‘좋은 사람’이라는 게 헤어짐의 이유가 될 수 없듯, ‘좋은 사람’이 결혼의 이유가 되지도 못한다. 사실은 내가 그를 아주 오랫동안, 별로 사랑하고 있지 않았다는 걸 그 구실을 핑계 삼아 헤어지면서 깨달았다. 나는 아무 연고도 없는 지방에 내려가 살기 어려워. 나는 병든 아버지를 돌보는 당신 옆에서 살기 어려워.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 어려워. 사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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