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출판사 두번째 단행본_ [평범한 동네의 하루] 출간 전 연재
딴짓출판사에서 두번째 단행본을 냈습니다.
저를 포함해 10명의 독립출판 작가들이 쓴 동네에 대한 기록이에요.
핫 플레이스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평범한 동네가 주는 울림을 담았습니다.
중소출판사 콘텐츠 제작 지원사업에 선정된 책이기도 합니다.
지금 텀블벅 펀딩하고 있으니 구경가보셔요!
황은주
구의동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동서울터미널이 있는 강변역과, 먹자거리로 유명한 건대입구역 사이에 있는 이 조그마한 동네가 알려진 건 2016년.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참사를 당한 김군 사건으로 ‘구의역’이 세간에 오르내리면서다.
나는 구의동에서 태어나 27년간 살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 그 집을 짓기 시작해 들어가 살았고, 우리가 나오던 날 허물었으니 그 집을 기억하는 것도, 그 집에서 산 것도 우리 가족밖에는 없다. 집을 사는(living) 것이 아니라 사는(buying) 곳이라는 말도 구의동에서만은 예외다. 구의동은 작은 촌락 사회와 비슷하다. 같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온 나의 친구들은 아직도 거기에 산다. 동네 사람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자신이 다녔던 유치원에 보내면서. 구의동을 떠올릴 때면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동네인 것만 같다. 여전히 그곳에서는 모두가 살아가고 있음에도 나만 혼자 빠져나와 다른 세상으로 가버린 것 같다. 그 동네를 지도에서 찾아보고 여전히 그 동네가 존재하고 있음을 감각할 때, 그 당연한 사실에 생경함을 느낀다.
구의역 출구를 빠져나와 몇 발자국 걸으면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이 보인다. 정확히는 친구 부모님이 운영하다 친구에게 물려준 곳이라고 해야 맞겠다. 친구와 나는 많이도 달랐다. 성적을 꼽으면 나는 앞에서부터 몇 손가락 안에 들던 모범생이었고, 친구는 뒤에서부터 매기는 게 더 수월할 정도로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였다. 우리는 같은 학원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해 같이 외국의 어학 캠프에 다녀온 후 급격히 친해졌다. 친해졌다고 해서 누군가의 성적이 급격히 오르고 내려가진 않았다. 어떤 친구와는 공부를 하고 어떤 친구와는 놀러 간다. 그 모든 걸 한 친구와 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걸 십대의 우리 둘은 알아차렸다. 몰래 담배를 피우러 갈 때, 술을 마시러 갈 때 친구는 나를 찾지 않았다. 과제를 할 때 나는 친구를 찾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걸 부끄러워했다. 그건 우리가 보이고 싶어하는 모습이지 실제의 모습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그런 우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수군거렸다. 선생님들도 내게 물었다. 그애랑 왜 친하냐고. ‘어떻게’ 친해졌는지가 아니라 ‘왜’ 친해졌느냐는 물음에 담긴 이상함을 모르지 않았다. 우리에겐 서로가 필요했는데, 성적이 곧 계급인 사회에서 보기에 그건 나에게 손해가 가는 일이었다. 나는 보란듯이 그애를 찾아다녔다.
친구는 누구보다 진지한 아이였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고 했다. 승무원이 되고 싶다고. 하지만 구의동의 ‘노는 애’들은 꿈을 갖지도 않았고,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다같이 망해보자는 태도로 함께 망가졌다. 될 대로 되라며 담배를 피우고 남자애들을 사귀고 몰래 술을 마셔댔다. 나는 친구에게 처음으로 화를 냈다. 너는 ‘그런 아이’가 아니지 않느냐고, 넌 하고 싶은 게 있지 않느냐고.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걸까? 아무것도 잘해본 적이 없으면 뭘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게 되어버려. 누군가 넌 이걸 잘한다고, 할 수 있다고 한마디만 해줬으면 달라졌을까? 나도 내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전혀 모르겠어.”
우리는 대학생이 되었다. 친구는 지방에 있는 어느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캐나다로 유학을 갔다. 유학 가서 우리는 싸이월드를 통해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의 먼 이야기였다. 친구가 돌아오는 방학 때면 매일같이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세계는 다르게 커져갔다. 나의 세계는 이제 더이상 구의동에 속하지 않았다. 내게는 대학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대학의 친구들이, 새로 시작한 연애가 더 중요해졌다. 친구에게는 내일까지 해야 할 과제가, 오늘 밤의 술 약속이, 남자친구와의 데이트가 있었다. 우리는 서서히 멀어졌다. 연락은 일주일에 한 번으로, 한 달에 한 번으로, 일 년에 두 번으로 멀어져갔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점차 친구의 이야기를 다른 친구들을 통해 전해 듣게 되었다. 너희 왜 연락 안 해?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친하다 했어, 이제야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간 것마냥 너희는 원래 어울리지 않았다고들 했다. 차라리 싸워서 멀어진 거라면 할 말이라도 있었을까. 우리의 세계가 이토록 멀어져서 그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고, 누구도 듣지 않을 말이었지만 그조차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다.
그사이, 나는 취업을 하고 퇴사를 하고 이직을 하고 결혼을 했다. 나보다 친구의 결혼이 더 앞섰던 모양이다. “S언니 결혼한대. 들었어?” 동생들끼리도 친구였던 터라 동생에게서 친구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오랜만에 문자를 했다. 번호가 바뀐 건 아닌지 프로필 사진만 보고는 알 수가 없었지만 일단 예전에 저장했던 번호로 메시지를 보냈다. 반나절이 지나 답장이 왔다.
(전문은 <평범한 동네의 하루>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tumblbug.com/ordinarytown?ref=disco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