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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주 Jul 05. 2021

2회차: 한달살기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한없이 밀리는 고속도로와 온수 안 나오는 숙소에 관하여




강릉으로 출발하는 당일. 나는 잔뜩 긴장해 있었다.

한달살기를 시작하는 것에 대한 긴장이 아니라, 서울에서 강릉까지 혼자 운전해야 한다는 데서 오는 긴장이었다. 운전면허를 딴 후 계속 운전을 해왔지만, 혼자 가장 멀리 간 거리는 고작해야 김포에서 서울 종로구 정도까지, 1시간 반 남짓의 거리뿐이었다. 30분~1시간 내외의 자유로를 왔다갔다 하며 운전에는 제법 익숙해졌지만 200킬로미터가 넘는 장거리 운전은 해본 적이 없어서 잔뜩 긴장했다.


게다가... 아버지 차를 가져가게 된 점도 신경이 쓰였다. 우리 부부가 쓰던 차를 내가 가져가게 되면 반려인이 주말에 쓸 일이 있을 때 불편할 것 같아, 평소에 거의 사용을 안 하시는 아버지 차를 한 달간 잠시 빌리기로 했다. 아버지 차도 내 이름으로 가족보험에 가입된 상태여서 쓰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아무래도 자기 차가 아니면 브레이크 페달이나 핸들 조작 등에서 약간 감이 다르게 마련이다.


출발 전날에 반려인이 짐 싣는 걸 도와주었다. 트렁크 두 개, 캠핑의자, 노트북이었다. 챙겨갈 게 많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싸다 보니 은근히 짐이 많았다. 두루마리 휴지나 곽티슈도 넣고, 작은 음료병에 따로 세제나 섬유유연제도 옮겨 담았다. 마트에서 번들로밖에 안 파는 터라 현지에서 사면 짐이 될 게 뻔한 것들이었다. 한 달 살자고 돈 주고 사기엔 좀 아까운 것들은 아무래도 챙겨가는 게 좋겠다 싶어서 싸다 보니 짐이 한없이 늘어났다... 사실 내가 좀 꼼꼼한 성격이라서 준비를 위한 준비를 하다보니 늘어난 짐들도 있다...



아이폰 메모장 앱의 체크 기능을 활용해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빨랫줄 같은 건 일단 숙소 도착해서 확인해보고 사도 괜찮을 것 같아 체크하지 않았다.

  



아침 11시에 출발(은) 했는데, 반려인이 집에 뭘 두고 갔다고 해서 회사까지 가져다주느라 30분 정도를 돌아갔다. 그래도 출근시간이 지났으니 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크나큰 오산이었다. 서울에서 빠져나가는 데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 회사 앞에서 만난 반려인이 응원차 사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켜다보니 점점 화장실에 너무너무 가고 싶어졌다. 빨리 만남의광장(서울 남부 부근)이 나오기만을, 아니, 뭐라도 잠깐 쉴 곳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는데 1분에 1미터도 못 가는 상황이 지속되자 미칠 것 같았다. 결국 동작 한강공원 표지판이 보이자 핸들을 급하게 꺾어서 한강공원 화장실로 뛰어갔다. 이렇게 20분 정도를 또 소요하고... 한 시간 반이 지나서야 서울을 벗어날 수 있었다.


...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더욱 큰 오산이었다. 7월의 첫날, 본격 휴가철 주말 전의 목요일이라서 그런지 고속도로 곳곳에서 점검 공사를 하고 있었다. 뻥뻥 뚫려야 마땅한 고속도로가 왕복 1차선만 통행 가능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쓰다보니 점점 흥분됨...) 물론 고속도로공사 관계자분들이 열일하시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정체가 계속되다보니 운전의 긴장감은 온데간데없고 한쪽 다리를 올리고 운전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브레이크만 밟아도 될 정도로 서행했다는 의미).


그렇게 겨우겨우 홍천휴게소에 도착했는데, 정말이지 거대한 인파가 '소떡소떡' 줄에 몰려 있었다. 이영자 교수님이 점지해주신 음식이니 그럴 만도 했다(엄밀히 따지면 여기가 아니라 안성휴게소이지만, 방송 이후 전국의 모든 휴게소에서 소떡소떡 메뉴를 팔고 있다). 갑자기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소떡소떡이 몹시 먹고 싶어졌다. 나도 그 거대한 인파의 1인이 되어 소떡소떡을 흡입하고 다시 출발했다. 그렇게 출발한 지 4시간 반이 되어서야 겨우 강릉에 도착했다. ㅜㅜ 그때까지 내가 먹은 건 소떡소떡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뿐이었다(아, 너무 배가 고파 차에 둔 비상식량 에너지바를 하나 먹었다).




겨우 숙소에 도착해 호스트분이 알려준 대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체크인을 무사히 했다. 숙소는 깔끔하고 주차공간도 넉넉했다. 냉장고도 적당히 크고 웬만한 집기들이 다 있어서 한달살기를 하기에 적절해 보였다. 일단 짐은 나중에 정리하고 샤워부터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온수가 나오지 않는 거였다! 나와서 보일러를 확인해보니 '목욕' 버튼이 별도로 있었다. 아, 그런 거라면 간단하지. '목욕' 버튼을 누르고 다시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5분을 넘게 틀고 있어도 뜨거운 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 거다. 어떻게 된 거지? 주섬주섬 옷을 다시 주워 입고 경비실에 전화를 했다. 경비 아저씨가 무슨무슨 버튼을 눌러 보라고 했는데, 내가 잘 못 알아듣자 숙소로 찾아오셨다. 휙휙 조작을 한 경비 아저씨는, 한참 있다 보면 뜨거운 물이 나올 거라고 했다.



분명 이렇게 '목욕' 버튼을 눌렀는데 말이다.


이제 드디어! 기쁜 마음으로 온수를 기다렸다. 그런데 여전히 물이 나오지 않는 거였다. 하... 배는 고프고, 빨리 씻고 나가서 밥이라도 먹고 들어와 짐 정리를 해야 하는데 짜증이 너무 났다. 옷은 벗은 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그냥 찬물로 샤워를 했다.


맛집을 찾아볼 기운도 없어서 근처 초당순두부마을의 가게 아무데나 들어가 청국장을 먹었다. 5시에 오늘의 첫 끼니를 먹다니(#한국인의밥상 입맛을 가진 이에게 소떡소떡은 철저히 간식의 영역에 속한다). 밥을 먹으며 에어비앤비 숙소의 후기를 다시 뒤졌다. 이런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면 다들 리뷰에 써놨을 것 같은데, 리뷰엔 좋은 후기밖에 없었다. 어떻게 된 걸까. 한참 후기를 밑으로 내리다 이런 글을 발견했다. '온수와 냉수 레버가 거꾸로 되어 있어요.'


다들 이걸 읽고 별 무리 없이 써왔던 것인가! 어쨌든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숙소에 다시 돌아가 레버를 반대로 돌리니 온수가 콸콸 잘 나왔다. 아주 호된 신고식을 치른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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