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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주 Jan 08. 2022

[2022 커넥트 강릉, 엔스파이어드 트립 팸투어]

연결을 통해 영감을 받는 새로운 여행법

정동진역에 내리자마자 보이는 바다. ⓒ황은주


“고향이 어디예요?”


누군가 물으면 늘 약간은 머뭇거리며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답했다. 서울이 고향이라는 건 어딘가 멋없었다. 그리워할 대상이 없는 건 재미없는 일이었다. 방학 때면 내려갈 집도, 부모의 간섭을 피해 마음껏 놀다 늦게 들어올 자취방도 없이 강퍅하게 지내온 불쌍한 모범생이 된 느낌이랄까. 가끔 도시의 삶에 지친 친구들이 바다 곁으로 내려가 ‘엄마 밥’을 실컷 먹고 기운을 충전하고 올 때면 나도 ‘고향’이 있었으면 싶었다. 눈을 감고도 거리의 풍경이 그려지는 곳, 마음껏 그리워할 곳. 


그러던 중 한달살기 후 다시 강릉에 갈 기회가 생겼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엔스파이어드 트립’에 초대받았다. 영화, 그림, 사진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적 영감을 나누며 서로 연대하는 경험을 하는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4명의 예술가가 한 조가 되어 1박 2일 동안 함께 참여하며 영감을 주고 받는 것이 취지였다. 프로그램도 흥미로워 보이는데 강릉이라고?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한달살기를 마치고 올라온 지 4개월 만에 다시 강릉으로 내려갔다. 


이스트씨네 서점. ⓒ황은주


아니, 정확히는 정동진으로 갔다고 해야겠다. 첫날엔 영화 전문 서점(세상엔 이런 서점도 있다. 이곳은 상영관처럼 극장 좌석이 세팅되어 있다) 이스트씨네에서 시작했다. 



첫날 저녁, 이스트씨네 오승희 대표님이 차려 주신 따뜻하고 든든한 저녁. ⓒ황은주



프로그램은 예상대로 좋았다. 좋은 의도와 기발한 프로그램이 모였으니 좋지 않을 리가. 함께 단편영화를 보고 ‘영화 발화 워크숍’을 진행했다. 


30분짜리 짧은 단편영화였지만,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갈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었다. 공장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가, 2020년대를 살아가는 네 명의 여성들에게 각자 다른 색으로 와 닿았던 듯하다. 서로 나이도, 하는 일도,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도 몰랐지만 이야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야기를 펼쳐놓을 수 있었다.


이스트씨네 서점에서 진행한 영화 발화 워크숍과 서점 내부. ⓒ황은주


둘째날엔 강릉의 페인팅 스튜디오 나우오네버로 이동했다. 벽 하나 가득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고 셀프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는 시간. 강릉에 방문하는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추천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했는데, 이렇게 워크숍 개념으로 참여하니 팀 빌딩 면에서도 무척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전에 같이 매거진을 만드는 멤버들과 함께 왔을 때 한 번 해봤지만, 다른 구성원과 다른 계절에 참여하니,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작업물이 나왔다. 



나우오네버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페인팅 작업. ⓒ황은주




첫날에 받은 스물네 장짜리 필름카메라를 암실에서 직접 현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도 했다. '식물원'이라는 현상소는 스튜디오가 아니라 온전히 필름 현상에만 집중해 작업하는 곳이었다. 서울에서도 이제는 사라져 가는 현상소이지만, '여행'을 주제로만 한 롤을 찍어보는 건 그 자체로 여행을 기록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 같다. 그렇게 스물네 장의 사진을 현상해보는 걸로 인스파이어드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강릉의 사진 현상소 '식물원'에서 직접 필름을 현상해보다. ⓒ황은주



이곳에 오기 전까진 4명의 여성들이 1박 2일이라는 시간만으로 연대할 수 있을까, 궁금했었다. 아마도 이곳에 오는 멤버들마다, 상황마다 다를 테다. 


다만 확실한 건, 그날 우리는 짧지만 강하게 서로의 삶을, 시간을 나눴다. 서로를 궁금해하고,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싶어하고, 그 고민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엔스파이어드 트립'이라는 말은 각 공간의 Eastcine+Now or never + Sikmulwon이라는 공간을 '연결'하는 여행이자, 그 연결을 통해 '영감(inspiration)을 얻는 여행이기도 한 것이다.  


공감하고 지지받았던 1박 2일의 기억을 디딤돌 삼아 우리는 언제든 다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

내가 보낸 시절에 대한 그리움, 마음을 온전히 내어두고 쉬었던 장소에 대한 그리움. 만약 고향이라는 게 태어난 곳이 아니라 내가 오래도록 ‘그리워하는’ 어떤 곳이라면, 나는 아마 고향을 찾은 것 같다. 어떤 이에게는 제주가, 어떤 이에게는 태국의 빠이가 그런 곳일 테다. 모든 걸 내려놓고 가장 나답게 지낼 수 있는, 그래서 영혼을 충전할 수 있는 나의 고향. 누군가 고향이 어디냐고 내게 물어주길, 이제부터 반가운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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