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J.O
어느 작은 시골마을. 만삭의 여인이 몇 시간 째 진통을 겪고 있었다. 산파는 아무래도 아이가 나오기 힘들 것 같다고 제왕절개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구급차에 탄 산모는 큰 병원으로 옮겨져 굵은 수액줄을 잡고 수술대에 올랐다. 그렇게 태어난 우량아 아기는 병원의 분유를 거덜낼 정도로 먹성이 좋았다고 한다.
30여년이 지났지만 어머니는 내가 태어난 날 즈음만 되면 아직도 배가 당기고 아프다고 하신다. 그때는 정말 죽을 뻔 했다며 지금은 웃으며 말하신다.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둔 11월의 어느 날, 나이트 출근을 앞두고 여유로운 커피 타임을 즐기던 때에 수선생님께 전화가 온다.
"오늘 코로나 병동으로 하루 파견을 가야 할 것 같은데... 괜찮겠니?"
얼마 전까지 코로나병동 파견 경험이 있었던 나에게 어렵사리 전화했을테니 바로 가겠다고 했다.
옷을 갈아입고 병동에 도착하니 이미 교수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PAPR(양압 방호복)을 입고 격리실에 들어가 있었다.
"인투(intubation)한데요." 기관삽관해서 기계환기를 하겠다는 말에 나도 황급히 방호복을 입는다.
격리실에 들어서니 30대의 젊은 여인이 Airvo(고유량환기,Highflow)를 한 채 숨을 껄떡이고 있었다. 당직 교수님과 호흡기내과 전담간호사(PA)와 이브닝번 간호사랑... 다른 둘은 누구지? 어째 간호사들이 많은데?
그제야 환자복 아래로 볼록 솟아오른 배가 보인다. 기관삽관을 기다리는 환자는 바로 임산부였다.
다른 선생님이 기계환기 세팅을 하는 동안 나는 컴퓨터 앞 차트를 잡았다.
"인투할게요!" PAPR 후드너머 막힌 소리로 교수님이 외친다. "포폴 70 먼저 주고 CIV걸어주세요"
프로포폴이 들어갔건만 산모는 숨쉬기 힘든 듯 요동치기 시작했고 우리는 산모의 양 손목을 꽉 붙들었다. 능숙한 솜씨로 단숨에 기관내관 삽관이 끝나고 기계환기를 연결했건만 어머니는 이물감에 고통스러운지 가쁘게 숨을 내쉬고 자꾸만 입에 손이 갔다. "포폴 120 더주세요."
그럼에도 그가 몸부림치자 교수님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산부인과 전담간호사들은 환모의 복부에 태아감시장치를 대고 아기의 심장소리를 듣는다.
"아무래도 온콜(on-call)로 시섹(제왕절개) 해야 할 것 같아요." 교수님의 PAPR의 배터리 알람이 아까부터 울리고 있었기에 방호복을 갈아입고 오겠다고 했다.
뒷정리를 하는 와중에 나 역시 PAPR 배터리 알람이 울려 복도로 나왔다. 탈의실 앞 복도에서 교수님과 마주친 나는 제왕절개 후 처치에 대해 묻는다.
"마취과에서 산모한테 포폴만 쓰라고 했었는데 수술 끝나고 나오면 레미 포폴 써서 푹 재울게요. 레미 0.1로 시작해서 0.15까지 올려도 되고요. 포폴은 0.6으로 시작해주세요."
"진정 안돼면 좀 더 올려도 되나요?"
"그럼요. 선생님 연차면 잘 하시잖아요."
숨 돌릴 틈 없이 Level-D 방호복으로 갈아입고 격리실로 들어왔다. 이동형 기계환기를 준비해달라고 요청하자 10여분 만에 중환자실에서 기능검사까지 끝난 인공호흡기가 들어온다. 나는 수술 겸 약물 단독투여를 위해 오른팔에 18G 수액 라인을 잡고 프로포폴을 옮겨 달았다. 마침 음압텐트가 도착했고 입 안의 이물감에 고통스레 발버둥치는 환모를 어르고 달랜다. 비좁은 방에서 산모는 초조해하고, 침대와 음압텐트와 두 대의 기계환기와 모니터, 약물펌프가 엉킨 전쟁터 같은 상황에서 답답한 방호복을 입은 나와 병동간호사 셋은 땀을 뻘뻘 흘리며 - 미쳐버릴 것 같았다.
마침내 음압텐트에 환모를 어떻게든 넣고 지퍼를 잠그고 입가의 빈틈으로 기관내관을 꺼내 이동형 기계환기를 옮겨 달았다. 음압텐트의 요란한 펌프 소리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나는 자꾸만 입가로 올라가는 환모의 손을 한 손으로 움켜잡고 다른 한 손으로 인공호흡기를 잡고 승강기로 향했다.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
음압 수술방 앞에는 PAPR을 입은 채 우리를 기다리는 수술방 인원들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뭔가 이름모를 경외감이 느껴졌다.
음압텐트를 밀고 수술방으로 들어가 환자를 수술대에 올린다. 수술방 인원들은 오염(contamination)됐다고 툴툴대겠지만 아무렴 어떨까. 마취과의 기계환기가 그의 기관내관에 연결되고 서서히 문이 닫혔다. 우리는 음압텐트와 약물을 두고 병실로 돌아왔다.
새벽 한 시 - 이브닝 번 간호사 선생님이 퇴근하지 못한 채 격리실에서 나온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렁설렁 주세용~" 나는 ECMO와 기계환기를 돌리는 다른 세 명의 환자들의 인계를 받는다. 세 번째 환자의 인계를 받는 도중 전화가 온다 "수술 끝났대요!" 나는 주저없이 방호복을 입었다.
격리실을 통해 수술방에 올라오자 굳게 닫힌 자동문의 유리창 너머로 산부인과 의사의 날랜 슈처(suture) 손놀림이 보였다. 그는 니들홀더로 반달모양의 바늘을 잡아 두어바퀴 실타래를 꼬더니 양 손으로 당겨 매듭을 튼튼하게 묶고는 가위로 잘라낸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이른둥이는 이미 신생아중환자실의 격리실로 내려갔다고 한다.
슈처가 끝나고 문이 열리자 우리는 음압텐트에 어머니를 옮겼다. 태아를 위해 피했던 레미펜타닐을 시작하고 그는 편안히 잠들었다. 몇 주 동안의 우여곡절 기계환기 치료를 마치고 격리 해제된 그는 일반병동 1인실에서 오랫동안 재활치료를 했다고 한다. 장기간의 기계환기 치료와 산후 우울증이 겹쳐 많이 고생했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지 한참이 되었건만, 이 기막힌 엄마와 아이의 사연은 3년동안 내 마음 속 어느 한 구석에서 '걱정 이자'가 잔뜩 붙은 묵직한 부채가 되어 있었다.
11월의 어느 날, 용기를 내서, 혹여나 하는 불안감을 머금은 채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게... 차트를 열람해본다.
산후 심부전으로 평생 베타 블로커 강심제를 복용해아 한다는 기록에서 심박출량이 호전되어 약을 끊고 찾아온 마지막 외래 기록에 - 더이상 외래를 오시지 않으셔도 된다고, 아이 잘 키우라는 심장내과 교수의 덕담이 날 반긴다.
그제야 3년동안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빚이 사르르 사라졌다.
- 힘든 고통의 기억이 순간이기를.
수십여년이 지나 아이에게 '그때 죽을 뻔했지...' 라며 허심탄회하게 말할 날이 오길 바라며. 당신들을 축복하기 위해 흰 방호복을 걸친 수많은 동방박사들이 찾아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