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은 그 나라의 화장기 가득한 얼굴
잠도 오지 않아서 더더욱 고문 같았던 열 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우리는 아부 다비 공항에 내렸다.
공항은 그 나라의 잘 보이고 싶은 모습을 드러내는 공간 같다. 마치 레드 카펫을 걷는 연예인의 온갖 파운데이션과 립스틱과 눈썹에 힘을 팍팍 준 모습이랄까. 사람들은 내면의 본질보다는 보여지는 겉모습에 쉽게 현혹되곤 한다. 쾌적한 공기, 반짝이는 조명과 바닥... 히잡과 부르카를 착용한 아랍인 여자들이 많은 게 이곳이 중동이라는 걸 실감할 뿐이다.
거친 모래사막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깔끔한 공항에서 화장실에서 졸졸졸 흐르다 멈추는 수도에서 물을 아끼는 사막인의 검소함이 느껴진다. 에티하트 항공의 기내식이 나올 때마다 빵과 냅킨에 담겨있는 소금은, 당신들의 조상들이 사막에서 만난 낮선 이방인에게 선뜻 빵과 소금을 나누어주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인가 생각이 든다.
수많은 승객들에게 자신들의 홈타운을 방문해 준 수많은 이방인들에게 빵과 소금을 건네는 금빛 항공의 현대화된 실크로드를 생각하며.
7시간의 비행 끝에 우리는 샤를 드 골 공항에 내릴 수 있었다. 공항이 얼마나 큰 지 입국 심사실까지 이동하는 전용 지하철이 따로 있었다. 입국심사실의 엄청나게 긴 줄에서 30여분 가까이 기다리다 '한국인들은 자동여권심사가 돼요'라는 픽업 바우처 기사님의 말에 후다닥 줄을 바꿔 선다. 한참이고 주인을 기다리며 빙글빙글 돌고있던 캐리어를 하나씩 들고 기사님을 만나 픽업 차량에 오른다.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의 제일 큰 국제 공항에 2차대전의 전쟁 영웅이자 전후 대통령이었던 샤를 드 골의 이름을 붙였다. 사실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때 6주만에 나치 독일에 항복한 전후무후한 졸전을 치뤘다. 파리를 포함한 국토의 절반 이상이 나치 독일 치하에, 나머지 반쪽은 '비시 프랑스'라 불리는 괴뢰 국가로 분열되었다.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치욕스러운 패배에 경악하고 순응하거나 합리화하거나, 혹자는 레지스탕스가 되어 저항했다.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으로 망명한 샤를 드 골은 나라 반쪽을 뺏기고 반쪽마저 적국에 협조하는 괴뢰국이 된 것에 분개했다. 그는 나치 독일에 저항해 '자유 프랑스'라는 임시정부를 만들고 특유의 똥고집과 뚝심, 카리스마로 루즈벨트의 뒷목을 잡게 만들면서 식민지와 탈출한 군인을 이끌고 파리를 해방하는 최전선에 섰다.
만약에 나치 독일에 점령되어 있던 프랑스의 수도를 다른 연합군이 해방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프랑스인들은 영원히 수치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프랑스의 광복은 프랑스인이 해야 한다. 설령 드 골 자신이 아니더라도... 드 골은 이런 정치적인 감각도 뛰어났던 사람이었다.
전후 그는 나치에 협조한 부역자들을 처단하고 야인으로 지내다 알제리 전쟁의 참상을 카리스마로 중재하며 대통령이 되는데 성공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그러나 그는 재신임투표를 볼모삼아 정책을 추진해오면서 그의 권위주의 정부에 반감을 품은 젊은 세대의 68혁명이 일어나자 오히려 국민들의 신임을 잃고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드 골 장군은 공화국 프랑스를 구한 영웅의 모습이었지만 드 골 대통령은 공화국을 위기에 빠트린 독재자의 모습에 가까웠다. 나는 프랑스인들이 전쟁영웅으로서의 샤를 드 골의 이름을 공항에 붙였으리라 생각했다.
저런, 셍-떽 쥐페리도 좋았을텐데.
샤를 드 골 공항에서 내린 우리는 여행사에서 보내준 호텔 픽업 차량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쏟아지는 졸음에 꾸벅이며 창밖을 바라보다 담벼락에 수많은 그래피티들이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이름모를 길거리 예술가들의 도발적이고 통통한 살집의 글자들이 방음벽이며 터널이며, 상점의 닫힌 철제 블라인드며, 심지어 철도가 드나드는 곳까지. 도배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름모를 그들은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렸을 적 관광지에 가면 쉼터나 기물에 네임펜으로 자신들의 이름이며 '알콩이♥달콩이' 같은 낙서가 빼곡히 적혀 있곤 했다. 사실 사람들은 어디든 자신의 기록을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청나라의 사신으로 다녀갔던 모 관리가 휴식 겸 들렀던 정자에 다녀갔다고 붓으로 썼다거나, 기원전 로마인이 피라미드에 낙서한 것이 남아있는 걸 보노라면, 우리 인간은 본능적으로 낮선 곳을 여행하는 여행자의 기질과 더불어 무언가를 흔적이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유전적으로 각인되어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수많은 인종과 출신이 뒤섞인 유럽에서 그래피티란 아무개의 '나 여기 있었다'는 투박한 외침이자, 깔끔하게 쓰고 싶었던 주인과 국가의 절망이 상충한다. 사람들의 군중심리는 그래피티와 낙서에 똑같이 적용된다. 깨끗한 흰 도화지를 두면 사람들은 선뜻 그곳에 낙서를 하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손길을 타고 낙서와 도형으로 지저분해진 도화지를 본다면,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도덕적 심리가 쉽게 무너지곤 네임펜을 들게 된다. 정돈되지 않은 지저분함은 무질서를 종용하곤 한다. 가게의 깨진 유리창을 보면 사람들은 더욱 쉽게 도둑질의 유혹에 사로잡히게 되듯이. 그래피티는 치안을 악화시킨다.
그 이유를 함부로 단언할 수 없겠지마는, 유럽인들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에서, 혹은 유럽연합 내부에서 더 나은 삶을 찾아 입국한 외국인들이나 여행객 같이 세계화로 수많은 인종들이 유럽 반도에 뒤섞이게 된 점도 있지만... 불법 체류자들, 난민들, 집시와 같은 불안 요인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적절한 일자리와 집을 가진 사람들은 굳이 하릴없이 도로나 벽에 그래피티를 칠하지 않는다. 집이 없고 적절한 일자리가 없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여행객을 상대로 범죄를 일삼고 벽에 낙서를 칠하며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는 것이다.
픽업 기사님 말씀으로는 파리 겨울 날씨가 원래 그리 좋지 않은데 오늘처럼 해가 쨍쨍한 건 드물다고 하셨다.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은 눈과 비 소식이... 파리에서 눈 구경하기 드물다고 하신다.
우리는 체크인을 했는데 비수기라 그런지 오전임에도 바로 방을 내주었다. 그리고 City-Tax(도시세)를 내야 한다고 하는데... 2024년도 1월부터 시티 택스가 1일 당 8유로 이상으로 많이 올랐다. 세상에... 월드컵 한다고 세금 올리는 거냐고 비난이 많댄다. 아무렴 어쩌겠어 롬에 가면 롬 법을 따라야지.
실내화가 없이 실내화를 달라 하곤 짐을 풀고 하루 묵은 몸을 씻고 드디어 침대에 누워본다. 얼마만의 편안한 수평 중력인지!
아름다운 센 강을 내려다보며.
- 신혼기행 프롤로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