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하기 앞서...
대학원 학업으로 인해 몇 달 동안 무언가를 쓴다는 것에 손을 놓았습니다.
이제는 먼 추억으로 자리잡은 기억을 다시 되짚어보며.
저기요...저희 데리러 오는 거 맞죠?
새벽 다섯 시, 후다닥 눈곱을 떼고 전날 밤에 쌓아 둔 캐리어를 마저 접고 호텔 밖으로 나온다.
깜깜한 밤, 야쟈수가 펼쳐진 도로 앞에는 가로등들이 바닥을 비추고 있었고 차가운 밤하늘엔 별들이 반짝였다.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몇 분을 기다렸을까... 해안가 멀리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의 반짝이는 조명을 보며 우리의 픽업 담당자가 도착하지 않아 전화를 해본다.
뚜...뚜...뚜...
담당 바우처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짧은 영어로 픽업기사를 신청했는데 연락이 되지 않는다 했다. 여행사의 비상연락망으로 연락했지만 그들도 기사와 연락이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
한참을 기다리고 비행기 시간이 1시간 가까이 남지 않은 여섯시가 조금 넘은 시각, 어느 차량이 나타나더니 쭈뻣쭈뻣 기사가 내린다.
"몇 바퀴 도는데 아까부터 계속 서 계시기에, 태워드릴까요?"
그는 현지 프랑스인인지 조금은 서투른 영어로 우버 기사라고 대답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 우선 다른 차라도 타서 비행기를 놓치지 말아야지.
그의 차로 10여분을 달리고 금방 공항에 도착했다. 파파고의 번역기에 의존하여 그와 몇 번 이야기를 나누곤 퇴근길인데 우리들이 딱해 보여서 태워줬고 공항택시로 20유로면 저렴한 거라며, 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영수증이 필요하다는 나의 말에 그는 퇴근하고 바로 보내주겠다며 나의 메일을 받아간다. 이것이.. 펜팔?
+ 우릴 놓친 바우처 기사는 늦잠을 잔 게 아니었을까... 무튼 여행사에서 환급해주어서 메타다시 메타다시...
À plus! - 다음에 봐요, 프랑스
에스파냐 항공사 vueling 의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솟아오르자 양 떼 같은 뭉게구름들이 우릴 반긴다.
두 언어의 도시,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하자 우리는 표지판의 달라진 언어를 보고나서야 에스파냐에 도착했다는 걸 실감했다. 이정표에는 무려 세 단어가 쓰여 있었다.
흰 글씨의 Sortida 금색으로 칠해 진 Salida 는 비슷해 보이는데 무슨 차이일까?
흰 글씨의 Sortida는 카탈루냐어로 적힌 출구라는 뜻이다.
불현듯 나의 기억 속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 민족의 자주성이 떠올랐다.
사연을 모르는 이방인들에겐 그저 현지인들을 위한 사투리 같겠지만 한국의 어느 공항과 역에서 표준 한국어와 사투리를 병기하겠는가?
공항의 이정표에서부터 카탈루냐인들의 자존심과 강한 자주성이 돋보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 공항 버스
공항에 내리면 도심을 지나는 공항버스가 있었다. 1인당 6.75유로, 한국돈으로 만원 즘 되시겠다.
마침 일요일이었는데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마라톤이 열려 우리가 묶는 호텔 근처까지 가지 못하고 에스파냐 광장에서 멈춘다고 한다.
호텔까지 캐리어를 끌고 한참을 걸어야 했지만 우리는 도시 광경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즐거워했다. 역시 두 남녀의 무계획 근본없는 신혼 기행이다.
프라쟈 데스파냐에 어서오세요
에스파냐 광장(plaça d'Espanya)에 도착한 순간 탁 트인 공간에 수많은 건물들이 널찍하니 둘러쌓인 광경을 보고 한참을 고개를 둘러보게 된다.
외국인들이 서울역에 내려서 주변의 고층빌딩에 가로막힌 서울의 도심을 보는 느낌일려나.
광장을 중심으로 두 기둥이 서있는 남동쪽으로 쭉 가면 몬주익 궁전이자 카탈루냐 미술관이 있었고 반대편엔 적색 벽돌 외관의 큰 원형 건물 - 바르셀로나 투기장(Las Arenas de Barcelona)이 있었다. 예전엔 투우를 하던 공간으로 알고 있었다. 2011년에 리뉴얼하면서 복합 커뮤니티 센터가 되었다고.
출출하던 차에 주변 식당들을 모두 둘러보았는데 1시까지 모두 준비시간... 마침 지나가던 현지인이 이 동네에서 먹을 만한 데가 바르셀로나 투기장 옥상에 음식점들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오늘 마라톤을 하고 사우나에서 몸을 푹 쉴 생각이라며 같이 가자고 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 건물로 들어선다.
아쉽게도 여기도 1시까지 영업 준비중이어서 주변 전망 구경만 하고 호텔로 가기로 했다.
2일차에 저 멀리 보이는 몬주익 성 한 번 가 볼 걸 그랬다. 지금 돌아보니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바르셀로나의 겨울은 가을 날씨
지도를 보자 바르셀로나는 북동 방향으로 쭉 뻗은 Gran via de les Corts Catalanes(그란 비아 데 레스 코트 카탈란- 카탈란 의회 대로) 를 기준으로 사각형 모양의 거주 구역이 마치 바둑판마냥 나열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 바르셀로나를 관통하는 큰 대로를 따라 걷는다.
바르셀로나의 겨울은 가을 날씨와 같다. 눈 한 점 얼음 한 점 기대하기 어려운, 햇빛은 포근하고 바람은 조금 쌀쌀하고, 낙엽을 버린 민머리 가로수들이 길게 도로가 뻗어있다. 셔츠에 따뜻한 카디건 걸치고 다녀도 될 정도로 낮은 선선하고 포근했다.
호텔에 도착해 짐을 맡기고 출출했던 우리는 근처 가게를 돌아다녀 보았다.
12시 정각이었는데 식당들은 모두 13시부터 영업을 시작해서 우리는 호텔에서 가까운 스낵바를 찾았다.
3sols, 트레스솔이라 읽으면 되는건가, 카탈루냐어? 혹은 에스파냐어를 쓰는 동양인들이 하는 가게였다. 출출한 우리의 요기를 채워주는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바다로 나아가기로 했다.
사람 반 비둘기 반, 카탈루냐 광장
카탈루나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겨울 햇빛을 받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삼삼오오 공원을 뛰어놀고 수많은 비둘기들이...그래 비둘기들이 바닥을 가릴 정도였다.
피죤포비아 아내가 공포에 질려서 멀리서 멀뚱멀뚱 바라본다. 어린아이들이 비둘기 무리에 뛰어들면 파도처럼 날아오르며, 아내는 비명을 지른다. 광장을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멀리서 구경하는 걸로. 자길 두고 간다며 정말 화냈다... 미안...
비둘기에 놀란 가슴 달래주랴, 가는 길에 젤라또 가게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물고 길을 걷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바실리카 데 산타 마리아
잠시 대로를 떠나 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바르셀로나의 구 시가지는 고딕 지구라 불리는데 고대 로마 시대로부터 중세 시대까지의 비계획적인 미로 같은 골목길이 펼쳐져 있다. 왁자지껄한 소리를 따라 가보니 성당이 하나 나타났고 그 앞의 공터에는 천막이 펼쳐져 있었다. 일요장이다.
몽마르트 언덕의 성당에서 이야기했듯이, 이곳에서도 성당을 건축하며 사용했던 부지가 광장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장마당에 모여 이것저것 둘러본다. 전통 공예품이며 하몽과 같은 식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아내가 꿀단지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좋은 점원이 수저로 꿀들을 한 스푼 씩 떠준다. 세상에, 라벤다꿀과 오렌지꽃 꿀이 있는 걸 처음 봤다. 꿀에서 은은한 꽃향이 나는 게 기분이 좋아진다. 귀여운 꿀뜨개가 첨부된 라벤다꿀과 오렌지꿀을 하나씩 사 든다.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것들이니. 세관 무사 통과를 기도하며.
고딕 지구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근대까지 성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었다. 바르셀로나는 항구라는 입지와 에스파냐의 산업화가 맞물리며 18세기 무렵 팽창하게 된다. 바르셀로나는 기존의 시가지를 두르고 있던 성벽(로마의 성벽)을 허물고, 카탈란 의회 대로를 길게 뻗어내고 근대적인 바둑판식 신도심을 만들었다.
고딕 지구에 남은 골목과 건물들은 바로 그 격동의 시대 이전의, 바르셀로나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핸드메이드 인 에스파냐
고딕 지구 골목을 이리저리 다니다보니 구글 지도에는 뜨지 않는 가게가 보인다.
핸드메이드 인 에스파냐, 팝업 스토어로 보이는 이곳은 카탈루냐 사람들이 직접 만드는 수제화라고 홍보하고 있었다.
우리집 신발지네 아내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당연한 일이다. 분명 신발장에 열 켤레는 넘게 있는 것 같은데... 아무렴 어떠랴.
흑인 점원의 손에서 샌들이 기억자 마냥 구부러져도 이내 빳빳하게 돌아온다. 가우디 풍 타일 무늬와 올리브색 샌들을 두고 한참을 고민하다 아내는 무난한 올리브색 샌들을 구매한다.
60유로를 계산하며 점원에게서 들려오는 낮익은 말 - "감사해요. 안녕히가세요"
깜짝 놀라 되묻는다. 아니 어떻게 한국어를 잘하세요?
"한국 드라마 보면서 배우고 있어요" 정말 재밌는 인연이다. 생각치도 못했던 곳에서 한국어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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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콜롬버스는 지중해에서 활동하지 않았습니다...
1시간 반 가까이 걸어 드디어 벨 항구(Port Vell)로 도착.
바르셀로나 항구에는 누가 보아도 위용을 풍기는 거대한 탑이 서 있었다. 이름하야 콜롬버스의 기념비(Columbus Monument)의 맨 위에는 지중해를 향해 손을 뻗은 콜롬버스 조각상의 기백이 느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콜롬버스는 여기에 서 있으면 어색한 몸이다.
콜롬버스는 지구 반대쪽으로 나아가면 인도가 나올 것이라 굳게 믿었고 에스파냐의 서부를 차지하고 있던 카스티아 왕국의 여왕, 이자벨 1세에게 개인적 후원을 받아 서쪽으로 나아갔다. 한편 이자벨 1세와 동군연합(왕끼리 결혼해서 국가가 느슨하게 결합된) 상태였던 아라곤 왕국이 바로 바르셀로나 주변 지역을 통해 지중해 무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카스티아 왕국이 콜롬버스의 덕을 봤는데 그의 조각상이 아라곤의 항구에 있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한국으로 치면 전라도 좌수영으로 일본군을 틀어막은 이순신 장군 동상이 뜬금없이 부산 앞바다에 있는 느낌이랄까?
벨 항을 지나는 램블라 바닷길(Rambla de Mar)은 금방이라고 꺼질듯한 삐걱거리는 데크로 된 길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건너는 데크 길이 바다 위에 떠있는데 듬성듬성 썩어 이빨빠지고 벌어진 틈새로 보이는 바다 때문에 금방 멀미가 날 것 만 같았다.
데크를 지나면 마레마그눔(Maremagnum)은 벨 항에 수족관과 이어진 대형 마트가 있었다. 여기서 하마트면 다리미를 살 뻔했는데 각설하고.
알레-홉(ALE-HOP)이라는 정말 야시꾸리하고 이상한 가게가 있어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간다. 남유럽 특유의 개방적인 성 문화라고는 하지만 온갖 기상천외한 성적 죠크를 담은 물건들을 당당하게 팔고 있는 가게에서 다시 한 번 문화충격을 받고 간다.
보케리아 시장(Mercat de la Boqueria)은 내일 뵙겠습니다(일요일 휴무).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Museu d'Art Contemporani de Barcelona) 앞에는 돌로 된 넓은 광장이 있었는데 현대미술관 아니랄까봐 그래피티와 낙서로 점철되어 있다.
넓은 광장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보드를 타고 기예를 부리고 있었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고등학교까지 12년 내내 학업에 찌들었는지 학교 점심시간의 축구 빼고는 운동과 거리가 먼데 바르셀로나의 젊은 남녀들은 누구나 보드를 타고 촬영을 한다. 나 역시 학창시절 내내 운동보단 공부와 낙서를 했던 것 같다. 우리의 젊은이들도 운동이 필요한 게 아닐까.
저녁은 미쿠마쿠 잔뜩 배부르게 먹다
경고 : 떼강도들이 주변에 있으니 당신의 짐을 항상 잘 챙기시오.
미쿠마쿠의 우람한 고릴라를 보고 알아차렸어야 했다... 이곳은 정말 장난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너무 맛있었는데 파리에서 시키듯 시켰다가 양이 미친듯이 많이 나와서 그만 남겨버렸다.
계산하면서 너무 맛있는데 양이 이렇게 많을 줄 몰라 남겨서 미안하다고 전했다.
까르보나라는 진짜 계란 노른자를 치대서 사람에 따라서 느끼할 수 있었고 나도 조금 느끼하긴 했다. 포크 커틀렛은 조금 탄맛+까르보나라의 느끼한 맛 때문인지 맛이 교란돼서 평가는 패스.
시그니쳐 메뉴로 홍보하던 미쿠마쿠 햄버거는 진짜 맛있었다. 돼지고기 목심구이도 맛있었는데 모든 요리가 지방+기름질이라 그만 물려버렸지 모람...
정말 허기지고 배고픈 영혼들이여, 이곳에서는 꼭 하나씩만 시키시길.
다음 이야기
하몽에 진심인 편, 에스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