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혼기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섀도우 Aug 18. 2024

가우디의 유산, 속죄의 교회

불멸의 영생을 얻은 아기들

벌써 마지막 조식이라니...

시간은 쏜살 같이 지나간다. 신혼 기행의 마지막 날 아침.

슬슬 한국식 아침이 그리워지는 걸 보니 귀국할 때가 다가온 게 아닐까.



가우디 투어

여행사에서 미리 예약해 준 가우디 투어 프로그램 약속 장소로 급하게 뛰어가니 우리가 마지막 팀원이었다.

안내지에 적힌 전화로 미리 연락을 했는데 답장이 없기에 무언가 했는데 가우디 투어에서도 우리 연락처를 잘못된 번호로 받아서 연락이 되지 않았었다. 그래도 사전에 약속 시간과 장소를 잡아놓은 팜플렛이 있어 망정이지...


가우디 투어는 현금으로 2인 총 95유로였다. 우리는 현금이 부족했기에 여행 중간 쉬는 시간에 근처 ATM에서 출금하기로 했다.


 바르셀로나는 19세기 폭발적인 확장을 거듭하면서 현재의 바둑판식 배열로 도시 경관이 완성되었다. 이후 세월이 흘러 20세기가 되면 대대적인 리모델링 유행이 불었고 바르셀로나의 건축학과가 급히 승격되고 수많은 건축가들이 배출된다. 이상한 디자인으로 아슬아슬하게 낙제를 면하던 가우디 역시 그 학생들 중 하나였다.


 가우디는 리모델링 고객에게 자기 자신만의 곡선의 미학을 강제로 먹이기로 유명했다. 또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각각의 건물에 성모 마리아와 같은 성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가톨릭적 믿음에 대한 표현에서 몇몇 건물주들과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20세기 에스파냐의 정치적 혼란은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반가톨릭 운동과 보수 가톨릭-왕당파와의 대립이 있었다. 이 정치적 갈등은 결국 에스파냐 내전(스페인 내전)으로 폭발한다. 에스파냐 내전의 복잡한 정치상과 끔찍한 참상에 대해서는 나중에 언급하자.


 건물주들은 가톨릭적 교리가 깃든 가우디의 리모델링이 집값을 떨어트린다고 반대했다. 이에 실망한 가우디는 리모델링 사업을 접고 은둔한다.



현금 인출은 무적권 이베르카하!

한때 전 세계에 식민지를 세우고 부를 축적했던 나라라 그럴까, 시내 곳곳에 은행과 ATM(현금인출기)들이 잔뜩 있다. 유럽 국가중에서 특히 에스파냐에는 유독 ATM이 많은데 국영 은행 뿐만 아니라 민자 은행들도 출금 수수료를 노리고 잔뜩 설치했다고.


 이중 수수료가 사실상 없는 수준인 건 이베르카하(iberCaja)와 유니카하(UniCaja)라던데, 근처에 유니카하는 없었고 수수료를 얼마 받는지 모르겠다. 이베르카하는 1유로도 안 되는 수수료로 출금할 수 있었다. 

 에스파냐에서 급히 현금 필요할 시 꼭! 이베르카하를 애용하십시오. 



구엘 공원

다시 가우디 투어로 돌아와서, 가우디는 구엘 백작(Eusebi de Güell)의 요청을 받아 바르셀로나 근교의 구엘의 땅에 건축을 시작한다. 이 당시 부동산 황금기를 따라 구엘 백작 역시 근교의 땅을 사들여 새로운 빌라촌을 만들 생각이었나 보다. 그것도 다른의미로 아주 유명한 가우디를 기용해서.


좌측의 붉은 집은 가우디가 생전 구엘 공원을 만들 때 살았던 곳인데, 너무 바쁜 가우디를 대신에 제자가 대신 작업해 주었다고. 곡선애호가인 가우디가 뾰족뾰족한 집을 좋아했을 지는 잘 모르겠다.


하필 날씨가 우중충 했다


가우디는 든든한 후원자의 지원을 바탕으로 구엘 공원을 디자인하기 시작한다. 가우디는 주택단지에 수많은 기둥으로 지지한 거대한 광장을 만들었다. 해설자의 말씀으로는 이곳은 물이 귀한 언덕이라 광장으로 빗물을 모으고 기둥 속 관을 타고 내려와 지하 수조에 물을 저장해서 생활용수로 사용하려 했다 한다. 지금은 시설이 오래되어 더이상 빗물을 모으지 못한다고. 

광장 아래 기둥으로 된 이 넓은 공간은 시장으로 활용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가우디는 곡선을 정말로 사랑했다. 산사태를 막고자 아치형으로, 사선으로 세워진, 돌을 쌓아 올린 기둥 복도는 경외감이 든다.



카탈루냐에는 용의 전설이 있다. 

흉폭한 용이 마을 사람들을 해치자 공주가 제물로 바쳐졌고, 지나가던 기사 산 호르디(Sant Jordi, 혹은 성 게오르기우스)가 용을 무찌르고 마을을 구했다. 가우디 역시 이 전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구엘 공원의 광장에서 모인 물은 뱀 머리와 도마뱀의 입에서 물을 뿜어낸다. 


산 호르디의 전설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2024 바르셀로나 산 조르디 페스티벌: 카탈루냐의 발렌타인데이 (barcelona-tourist-guide.com)


구엘 공원 입구에는 과자로 만든 것 같은 집이 있다고 한다. 감빡하고 찍지 못했는데 벽의 패턴이 마치 비스킷 무늬라 그런걸까. 지금은 관람객들을 위한 기념품 가게로 쓰인다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이야기

셔틀버스를 타고 우리는 가우디 투어의 마지막 종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도착했다.

삼엄한 경비와 수많은 인파가 아우러진,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어버린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에스파냐 내전 때 하마트면 파괴될 뻔 했지만 성당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양 진영의 합의로 유산을 지킬 수 있었다.


 사회주의와 반가톨릭과 같은 신성모독적인 세태에 한탄한 가우디는 성당 건립 계획에 착수하면서 아예 성당 지하실에서 살면서 건축에 평생을 바친다. 그즈음 그의 부모와 누나의 죽음 등, 그는 자신들의 가족의 목숨을 거두어 간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순응하고 더더욱 귀의했다.


성당은 건축물 그 자체가 성경의 말씀을 전달하는 교육장과 같다. 스테인드 글라스의 이콘들이 그렇고 성당의 조각상들이 그렇다.

가우디가 생전 작업한 성당 동쪽의 탄생의 파사드(Façana del Naixement) 벽면에는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일화가 조각되어 있다.



불멸의 영생을 얻은 아기들

 "나사렛에 유대인의 왕이 테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듣자 당시 유대인들을 통치하던 헤롯 왕은 병사들을 시켜 나사렛의 수많은 아기들을 학살했다. 그 장면을 묘사한, 검을 든 병사가 아이를 죽이려 하고 이를 막는 부모의 애처로운 모습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사실 이 조각들은 건축에 참여한 사람들이 석고 본에 들어가 이틀 동안 꼼짝 않고 자세를 취해 만든 조각들이라고 한다. 그럼 저 아기들은 어떻게 본을 떴는지 의문이 드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고.


아기들의 모델은 바로 죽은 아기들, 사산아였다. 


전근대의 열악한 위생환경으로 많은 아기들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곤 했다. 소중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가우디의 성당 건축에 죽은 아기를 공양했다. 이로서 미처 빛을 보지 못하고 별이 된 아기들은 성당 한 켠의 조각상으로 영원히 숨쉬는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나는 하느님을 섬기는 전당에서 영생을 얻게 된 아기들의 굳은 미소에서 지금도 마음이 아프고 한편으로 전율하며, 그들이 영생을 얻게 한 가우디에 감사한다.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수난의 파사드

성당의 동쪽 면 수난의 파사드(Façana de la Passió)는 카탈루냐 지방의 현대 조각가 호셉 수비라치(Josep Maria Subirachs)의 작품이다. 고전적인 가우디의 조각들과 달리 수비라치의 조각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묘사하기 위해서인지 야성적이고 날것이며 거칠게 표현되어 있다. 


예수를 상징하는 알파△이자 오메가▽ 위에 작품들이 놓여있다. 산업화와 물질주의가 인간과 하느님과의 영적인 믿음을 파괴했다고 여긴걸까, 예수는 산업화의 상징인 H빔의 십자가에 매달림으로 재해석되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던 예수의 얼굴을 적신 피와 땀을 닦아낸 여인, 베로니카(Veronica)의 앞수건에는 예수의 얼굴이 묻어나왔다고 전해진다. 수비라치는 이 설화를 기반으로 음각 기법으로 예수의 얼굴을 새겨,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보는 이를 마주보게 했다. 


 베로니카를 감시하는 군인(조지 루카스는 이 얼굴을 보고 다스 베이더라는 희대의 악당 마스크를 만들었다) 옆에 옆면을 보며 구부정히 서 있는 노인이 보인다. 그는 한 단 위에 서서 베로니카를 응시하는데 나는 수비라치가 가우디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는 걸 알아챘다. 언젠가는 성인으로 시성될 가우디를 위해 그의 이름을 새길 단을 남겨놓은 것이라고. 정작 유족들은 고인의 뜻에 반한다고 반대한다고 한다.




빛과 공간의 마술

예배당은 그 높은 성당 건물의 전고만큼 하늘로 치솟은 기둥들이 수많은 영롱한 빛으로 반짝였다. 스테인드글라스의 형형색색 합성된 빛에 나는 감탄했다. 동쪽 스테인드글라스는 청록색으로 봄을 상징하고 서쪽은 붉은빛으로 낙엽진 가을을 상징한다고 한다. 점심시간 이후였기에 노을진 경관을 볼 수 있었다.



속죄의 성당, 그리고 아이러니한 죽음

성수를 담는 대야조차 조개 껍질로 만든 고상함


가우디는 아나키스트들과 사회주의자들로 인해 바르셀로가 더럽혔다고 생각했고, 그는 속죄의 교회를 짓는데 평생을 다했다. 그러던 어느날 산책하러 나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관계자들이 한참동안 그를 찾아다녔고 몇시간 만에 그가 행려병자들을 수용한 자선병원 한켠에 누워 있는 걸 발견한다. 


어느날처럼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그를 노상열차가 덮쳤고, 기관사는 꾀쬐쬐한 몰골의 가우디를 보고 노숙자인 줄 알고 길에 버리고 갔다. 시민들이 그를 병원에 보내고자 택시를 찾았지만 무려 세 번이나 승차거부 당하고 나서야 지금의 병원에 도착했다. 집중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옮기려는 지인들 앞에 가우디가 일갈했다.


"외모로 판단하는 놈들에게, 이 가우디가 여기서 죽는 꼴을 보게 냅둬라." 

그는 물욕에 찌든 사람들과 세태를 비판하며 가장 낮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 세상을 떠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애도했고, 뺑소니 기관사와 승차거부한 택시기사들, 병원들은 큰 처벌을 받았다고.



우리는 한참이고 기념품점에서 한국의 친구들에게 어떤 선물을 할 지 고민했다. 



파 비스무리한 깔숏구이

에스파냐에서는 1-2월이면 깔숏(Calçots)이라는, 파 비스무리한 풀을 구워먹는 축제가 있다고 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근처의 음식점 중에서 가까운 곳에 맛있다는 집을 찾아 들어가 본다.


위풍당당 한국인들이 깔숏 구이를 시키자 너무나 귀여운 앞치마를 나누어 준다.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저 뒤의 뿔테 안경 할아버지가 우리가 깔숏 먹는 걸 잘 모르자 한심한 듯(...) 시크하게 다가와서 먹는 법을 알려준다. 흰 뿌리 쪽을 잡고 잎 부분을 쓱 당기면 쑉 하고 빠져나온다. 이걸 특제 소스에 찍어 입에 후루룩 넣으면 정말 맛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십쇼.


먹물 빠에아와 크림 스프를 시켰던가.. 사실 깔솟에 한눈 팔려서 메뉴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https://maps.app.goo.gl/DshRyEcLwLBYDiDm9



츄러스 맛집

사람들이 맛있다 맛있다 해서 먹는데 초콜렛은 따뜻하고 츄러스는 따끈 바삭했다. 현장에서 바로바로 튀겨주는 츄러스 맛에 행복해 하고 남은 코코아는 홀짝 들이켰다. 


https://maps.app.goo.gl/yVQ6CxcibTbZrQ1z6


더는 보기 힘들 이국의 풍경을 눈에 담아두고


기념품 가게를 향해 걷다보니 어제 보았던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 골목을 지나게 된다.



기념품 가게 손님은 모두 한국인이어따...

아내의 친구들에게 나누어 줄 선물들을 고르기 위해 비누 가게에 들어섰다. 

세상에, 몇몇 미국인들을 제하고 이곳에도 한국인 천국이다. 

우리는 가판대에 전시된 수많은 비누들의 향을 맡아보고, 파파고 번역에 의지해서 비누 향을 골랐다. 

https://maps.app.goo.gl/NVtNYScu3bDqhEAi8



보케리아 시장의 야경

낮 풍경과 달리 저녁 시간대의 석양 진 보케리아 시장의 모습은 또 새로운 모습이다. 환하게 켜진 불빛과 차가운 얼음에 놓인 생선들과 육류들(다행히 어제 봤던 양 머리는 없었다). 병에 잔뜩 담긴 이름모를 간식들까지. 

 한국은 유럽 국가들과 달리 고층 아파트와 넓은 도로로 집중화가 되고 장을 보러 나가려면 차를 끌고 대형마트로 가는 편이다. 물론 바르셀로나에도 준대형 마트들이 있었지만 보케리아 시장만큼 접근성이 높고 주변의 예술같은 건축물들과 시설이 있다는 건 부러웠다. 



저희 또 왔어요

진짜 이 타파스집 너무 맛있어서 또 와버렸다. 오늘은 줄 서서 20여분 간 기다리고 입성. 앞의 바 까지 수많은 손님들이 자리잡고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우리도 샹그릴라와 홈맥주와 함께 스타트.


꿀대구찜은 매일 먹어야 하며 저 빵에 스테이크 한 점 얹어준 요리는 정말이지 10개 시켜서 먹고싶을 정도였다. 타파스집은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젤라또 너무좋아

그리고 루치아노는 신이다. 만세!



다음 이야기 : 에필로그


매거진의 이전글 에스파냐는 하몬에 진심인 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