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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상민 Jun 24. 2024

<북극백화점의 안내원> 단평 : 깔끔하긴 한데

유려한 애니메이팅으로 차려진 소품, 끝에 남는 까끌함.

작품이 처음 시작하며 나오는 풍경은 평범한 백화점 같습니다. 하지만 어딘가 달라요. 백화점 안을 거니는 손님들은 모두 동물들입니다. 주변에 인간은 없어 보여요. 마치 분홍신을 신은 것처럼 허둥지둥 좌충우돌 하던 소녀 ‘아키노’는 매우 친절하고 능숙하게 자신을 도와주는 백화점의 안내원에게 큰 인상을 가지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아키노는 자신이 어릴적 흘러든 이 ‘북극백화점‘의 안내원이 되어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손님은 모두 동물, 직원은 (거의) 인간인 이 신기한 백화점에서요.


작품은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나카무라 쓰치카(西村ツチカ)가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연 5회 발행되는 <빅코믹 증간호>에 연재한 동명의 작품을 원작으로 합니다. 한국에는 나카무라 쓰치카의 작품이 일러스트를 맡은 책 하나만 나온 상태라서 한국에서 정식으로 볼 방법은 없지만, 이래저래 그림에서 느껴지는 감각대로 매 에피소드마다 소소한 느낌으로 전개되는 에세이툰에 가까운 감각의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마냥 포근한 작품은 아닙니다. 작품의 초반부에 바로 제시되지만, 이곳에 찾아드는 거의 모든 동물은 이미 지구에서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북극백화점은 인간들에 의해 사라진 동물들에게 일종의 보상적 차원에서, 동물 자신들의 욕망으로 고급스러운 소비를 하게끔 만드는 공간이죠.


이러한 이유를 제시할 때는 조금 분위기가 무거워지지만, 작품은 또 마냥 무거운 길을 가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어떤 연유로 이 공간이 태어난 것인지도 알 수도 없고 딱히 만화에서도 진지하게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매머드와 20세기에 멸종된 동물들이 이족보행으로 다니는 건 합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 작품에서 그리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오히려 작품은 사회초년생인 아키노가 어린 시절 백화점의 좌충우돌처럼 때로는 어설프고, 때로는 너무 의욕이 지나쳐 실수를 하면서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더 초점을 맞춘 느낌입니다. 그 ‘성장담’에 이제는 북극백화점에서만 볼 수 있는 멸종된 동물들의 이야기를 덧붙이며, 아키노를 비롯한 백화점의 인간들과 동물 손님의 관계가 그저 직원-손님이 아니라 인간-동물의 관계와도 맞닿음을 넌지시 제시하는 모습이랄까요.


이러한 원작 만화를 어느덧 창립 35주년을 훌쩍 넘긴 중견 애니메이션 제작사 프로덕션I.G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습니다. 원작도 2권에서 완결된 소품인 만큼, 큰 추가적인 이야기없이 러닝타임 70분의 중편 느낌에 가까운 호흡으로 장편을 만들었어요. 연출은 <볼룸에 어서 오세요> 감독, <백일홍 : 미스 호쿠사이>의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감독을 맡은 이타즈 요시미가 맡고, 음악은 하마구치 류스케 <아사코> OST를 비롯해 여러 J-POP에 참여한 tofubeats(카와이 유스케)가 맡았습니다.


중견 애니메이션 제작사에 경력 있는 연출가가 붙은 만큼 작품은 애니메이팅에 있어서 큰 매력을 드러냅니다. 분명 원작도 그렇고 이 작품도 소소한 해프닝을 소재로 삼는 소품의 성격이 강한데, 캐릭터나 배경이 움직이는 시퀀스를 통해서 이 작은 이야기 안에서 분명하게 완급 조절을 해냅니다. 주인공이 허둥지둥하는 장면에서 카메라의 원근을, 주인공 캐릭터와 배경 작화의 적절한 거리 배치와 움직임을 통해 애니메이션에서 가능한 유려한 움직임을 멋드러지게 드러내죠. tofubeats가 맡은 음악도 백화점에서 들을법한 잔잔한 분위기의 칠 아웃 스타일의 음악을 활용하며 세련된 분위기를 더 이끌어냅니다.


<북극백화점의 안내원>의 원작 만화의 표지 및 컷.


하지만 그래서 스토리의 아쉬움이 더 두드러집니다. 신입 직원 아키노와 그녀가 마주하는 다양한 손님들, 그리고 다시 아키노를 지켜보는 북극백화점 직원의 소소한 이야기는 에세이를 보는 듯한 여운을 주지만, 그 이야기를 ’접객업‘으로 푸는 방식은 너무 고풍스럽습니다. 물론 장치가 없는 건 아닙니다. ‘손님이 왕이다‘는 명제를 통하도록 만들기 위해 멸종동물을 손님으로, 인간을 직원으로 설정하고 ’진상손님‘ 같은 소재도 넣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손님을 어떤 순간에도 만족스럽게 대하는‘ 백화점 직원을 드러내는 표현은 너무 고전적인 감각이 강합니다. 멸종된 동물을 위한 극진한 대접이, 역설적으로 이 동물이 멸종된 인간의 욕망과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런 문제를 어떻게든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다면, 분명 애니메이션의 감각은 좋은 작품입니다. 작화나 동화도 유려하고, 이를 묶어내는 촬영의 감각도 좋아요. 소소한 일상과 성장담을 보는 소소한 흥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심함을, 원작의 각색에서도 더 드러내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은 여전히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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