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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달 Sep 09. 2016

머릿속을 맴도는 자유

언젠가 쓰고 싶었던 나만의 고백

추억이라고 해야 하나?
오래 간직하고픈 소중한 시간들에게 보답하고 싶다.


때는 2010년. 재혼한 남편은 종로에서 20년째 귀금속 세공업체를, 나는 평촌에서 잘 나가는 주얼리 매장 2곳을 운영하고 있었다. 벌이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힘겨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인터넷 덕택에 소비자들은 똑똑해졌고 금값은 천정부지로 뛰면서 손님들의 발길은 뜸해졌다. 우리는 대책을 세워야 했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고민을 하다가 다른 사업을 해서 그나마 살아남겠다는 생각에 우리는 새로운 일을 찾았다. 당시 수원의 한 화물택배회사를 인수했다. 새로운 사업으로 좀 더 풍족한 경제적 여건과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그러나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과 달리 화물회사의 일은 생소하기도 하지만 일 자체가 정말 달랐다. 물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실전에 뛰어들면서 괜한 짓을 했다는 자책감은 두려움과 초조함이 늘 나를 지치게 했다. 그야말로 장사가 아닌 사업이라는 게 실감 났다. 무서웠다. 과연 끌고 갈 수 있을까? 이대로 무너지면 몇십 년 동안 만들어온 나의 기초가 흔들리는 건 불을 보듯 뻔했고 인생에 지친 상태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 자명했다.


음식도 맛이 없고 얼굴엔 그나마 있던 웃음 근육도 없어진 지 오래, 간신히 한 끼 넘길 때면 늘 반주 한잔이 더 쉬운 나날이었다. 간신히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에 들어가면 내일 일어날 일에 대한 불편함이 내 생활을 잠식해 버렸다. 괴로움을 동반한 잠을 청해 보지만 다음날의 에너지로 쓸 수 있는 영양분은 공급되지 않았다. 이런 게 일종의 도시병(?)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느닷없이 새벽에 복통이 일어나 응급실에 실려가는 사태도 비일비재했다.


그렇게 3년쯤 지나니 조금은 무뎌지고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두려움 속에서도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인들의 적은 '안정기에 접어든다 싶으면 여지없이 찾아오는 나태함'이 아닐까. 아니면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 어쩌면 회의감? 뭐 이런 것들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경쟁이 심하지 않았던 옛날 같으면야 조금은 뻐기기도 하고 누려도 보겠지만 요즘은 그렇게 하다간 남들한테 추월당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우린 또 뛰고 또 궁리하고 또 뛰고... 열심히 일하고 더 숨차고 또 열심히 가족을 위해 쓰고 또 열심히 숨차게 일하고의 반복... 물론 경제적인 면으로나 일에 대한 안정적인 시기가 도래됐음에도 노후를 생각하면 이건 정말 답이 안 나온다.


얼마를 벌어서 모아놔야 늙어서 일 못할 때 쓸 수 있지?


 다들 한 번씩은 이런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 같다. 깊게 생각하면 할수록 더 많은 돈과 노력과 열심이 아니면 안 되는 게 노후 설계인 것 같다. 그렇다면 앞으로 아프거나 건강에 이상신호가 오면 절대 안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그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이쯤 되면 포기라는 놈이 저 멀리서 웃음 띈 얼굴로 비웃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행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 주저앉아 버리는, 계획이고 뭐고 열심히 일한다는 자체에 회의감이 생기면서 기운이 빠진다. 어느새 삶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리게 되는 것이 인생.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변화를 무서워하게 되고 성공이라는 단어를 애써 외면하게 되는... 그런 무기력감으로 쌓여 갈 즈음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 나는 더 이상 나를 끌고 갈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게 두려워 싸웠고 자존심 상할까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쯤 우린 휴가를 떠나기로 했다. "이제 그만 하고 싶다"는 간절한 꿈을 품은 채... 부안에 왕포라는 바닷가에 아주버님이 살고 계셨다. 바닷일을 하시는데 뵐 때마다 느끼는 거였지만 참 순수하시고 아이처럼 밝으셨다. 청각장애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그 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부안에 도착하니 저녁 무렵이 되었고 바다 풍경이 제대로 보이는 바깥 마당에서 아주버님은 고기를 구워주셨다. 우리는 생선 말린 것들을 구워 먹으며 정말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즐길 거라고 다짐하고 떠난 터라 더 신났을 게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주버님은 "새벽에 바다 한번 따라가 보지 않겠냐"며 제안을 하셨고 우린 흔쾌히 승낙했다. 생전 처음 입어보는 몸뻬바지와 얼굴 전체를 가리는 모자, 옷장화 까지... 물살을 가르던 배는 아주버님이 표시해 둔 곳에 세워졌고 그물을 걷어 올리자 꽃게가 잡히는 계절임을 간신히 알려줄 정도(?)가 올라왔다. 난 맘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는데 아주버님은 아무렇지 않은 듯하던 작업을 계속하셨다. 한참을 올리시는데 꽃게가 한가득씩 푸짐하게 올라오기 시작했고 난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런 의연한 아주버님 모습에서 잔잔한 감동으로 내 가슴에 박히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속에서  자유를 느꼈던 것 같다.


신나는 휴가가 끝나 도시로 돌아온  나는 순간순간 내 머릿속을 맴도는 어떤 게 있다는 걸 알았다. 여유, 평화로움, 편안함, 풍요로움... 이제는 과감하게 결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과 귀향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물론 남편의 고향이기에 더 쉬운 결정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난다는 건 말처럼 쉽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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