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른일까? 너와 나의 성장 이야기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했을 때, 우연히 영화 포스터를 보고 여주인공을 너무 자연스럽게 '툭' 던져놓은 포스터가 신선하단 생각을 했다. 동시에 저 몸짓은 대체 무엇을 표현하는 것인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칼라풀한 시대에 제작된 흑백영화라니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당시 30대 초반 아직여전히 방황을 하고 있던 나는 그렇게 프란시스를 만나, 그녀의 삶을 통해 나를 마주했고 위로받았다.
Story summary
뉴욕에 사는 27살 프란시스. 그녀는 화려한 무용수로서의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연습생으로 몇 년째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소한 일로 남자 친구와 이별하고, 함께 살며 미래의 꿈을 공유하던 절친 소피는 남자 친구와 함께 뉴욕을 떠나겠다고 선포한다. 무용단장님은 프란시스에게 무용단의 '비서 자리'를 제안한다. 프란시스는 무용수가 되고 싶었으나 뉴욕의 집값과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그 제안을 승낙한다 거부할 수가 없다. 그 후 그녀는 무용수가 아닌 안무가로 변신하여 자신의 무대를 올리고 그렇게 뉴욕 한복판에서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
꿈에 대하여
프란시스. 우리는 세계를 정복할거야. 너는 유명한 무용수로 이름을 날리고 나는 너에 관한 책을 출판해서 유명세를 얻겠지.( Frances. we are going to take over the world you’ll be a famous modern dancer and I’ll publish a really expensive book about you.)
이 영화는 꿈을 가진 젊은 청춘을 다룬다. 영화를 보면서 꿈을 이루는 것과 별개로 꿈을 꾸며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깨닫는다. 영화는 흑백이지만 꿈을 향해 나아가는 프란시스의 모습은 시종일관 밝게 묘사된다. 영화를 보는 중간 그 프란시스의 밝은 모습으로 인해 영화에 칼라감이 느껴진다. 꿈을 꾸는 사람이 일상에서 뿜는 에너지가 얼마나 밝고 아름다운지를 본다.
거창하진 않더라도 꿈을 꾼다는 것은 소망을 품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20대에만 하더라도 나는 내가 평생 꿈을 꾸며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러나 30대 훌쩍 넘은 지금 꿈보다 현실을 좇게 된 많은 사람들 틈에서 꿈을 꾸는 것이 얼마나 낭만적인 것인지, 비현실적인 것인지에 대해 잔소리를 듣게 된다. 어느덧 나도 현실 속에 나를 맞추고 살아감을 발견한다. 그때의 좌절감이란.
이루지 못한 꿈 앞의 '좌절'에 대하여
앤디: 무슨 일 하세요? (So, what do you do?)
프란시스: 설명하기 힘들어요.(Eh... It's kinda hard to explain.)
앤디: 뭐가 힘들어요?(Because what you do is complicated?)
프란시스: 진짜 하고 싶은 일이긴 한데, 진짜로 하고 있지 않거든요.(Because I don't really do it.)
직업에 대해 설명할 때 프란시스는 '진짜로 하고 있지 않아 설명하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그는 아직 꿈을 이루지 않았지만 꿈을 향해가고 있는 자신을 그렇게 설명한다. 이 부분을 보여주는 장면과 기타 몇몇 장면에서 프란시스는 약간 퉁명스럽기도 하고 약간 찌질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그 모습 또한 내 모습이기에, 우리의 모습이기에 '왜 저럴까'하면서도 극복해나가고 있음을 본다.
무용수가 되고 싶지만 무용단 비서가 된 프란시스. 적어도 프란시스는 좌절 속에서 꿈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꿈을 잡고 있다. 이제야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본다. 그런 사람만이 꿈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꿈을 접어 둔, 미뤄둔 나와 다르게 프란시스는 매일의 좌절 속에서 오늘도 나아간다.
우정에 대하여
내가 속상한 건, 네게 애인이 생기면 네 하루 중에 재미있는 일이 생겨도 넌 그 사람한테만 얘기할 거고 난 못 듣는단 거야.(It’s just if something funny happens on the way to the deli, you’ll only tell one person and that will be Patch. And I’ll never hear about it.)
3시간짜리 브런치 친구로 취급하지 마.(Don't treat me like a three-hour brunch friend!)
영화는 프란시스와 그의 절친인 소피의 우정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20대에는 친구가 정말 전부였던 것 같다. 친구와의 우정은 영원할 것 같았다. 그 자리는 절대 남자 친구가 대신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생활공간이 달라지고 관심이 달라지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매일을 함께 공유하는 우정'이 더 이상 어려움을 알게 된다. 프란시스는 평생 함께 하기로 약속했던 소피가 남자 친구와 뉴욕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 무용단장님이 무용수가 아니라 비서로 일해보라고 했을 때 만큼이나(어쩌면 더) 상처를 받는다.
친구와의 관계, 우정은 아직도 너무 어렵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자연스럽게 예전만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고 함께 공유하는 폭도 줄어들지만 여전히 우린 예전 추억을 공유하며 살아간다. 1년에 한 번 보기도 어려워지고 뭘 하고 사는지 알지 못할 때도 많지만, 어쩌다가 한 번을 봐도 매일 보며 지냈던 것처럼 하하호호 재잘재잘 수다를 떤다. 과거 함께 보냈던 시간이 그립지만 그렇다고 그 우정이 없어진 건 아니다. 단지 현실에 맞게 적응(adaptation)한 것일 뿐. 이걸 인정하는 순간까지 나도 마음이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프란시스의 상실감이 이해가 가고 너무 가슴이 아프다.
불완전함(imperfection)에 대하여
난 실수처럼 보이는 게 좋더라고.(I like that looks like mistakes.)
자신의 불완전한 모습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기에 가끔은 찌질하게 예민하게 구는 프란시스지만 멋있다. 나의 실수와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조차 아직 어려워하는 나이기에, 그 모습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나이기에 그녀를 보며 나의 불완전함까지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길 기대해본다.
영화에서 프란시스가 27살이기 때문에 다들 이 영화가 20대의 청춘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 시기(20대)의 불완전함과 어른이 되는 과정을 그렸다고 이야기한다. 20대는 불완전한 시기이고, 그 시기가 지나면 불완전함이 없어지는 것 마냥. 그러나 어른은 완전한 존재일까? 자신의 불완전함까지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어른이 얼마나 될까? 어쩌면 20대라 그런 불완전함을 쉽게 인정할 수 있는 거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건 시기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20대 만을 위한 성장 영화가 아니라 그저 불완전함을 감추고 어른인 척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른' 됨에 대하여
나는 아직 제대로 된 1인분의 사람이 아니야(I'm so embarrassed. I'm not a real person yet.)
프란시스는 스스로를 아직 'real person'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마 아직 어른이고 싶지 않은, 어른이 되지 못한 자신을 그렇게 묘사한 것 같다. 어른과 어른이 아님의 경계는 어떻게 규정되는 것인지, 나는 어른인지 궁금하다. 영화의 마지막에 프란시스는 안무가로 데뷔한다. 그 무대에 소피 등 그녀 주변의 사람들이 참석하여 그녀를 응원한다. 그리고 그녀는 뉴욕에서 마침내 독립에 성공한다. 마지막 프란시스의 표정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결코 그 모습은 삶에 대한 체념이 아니다. 그녀의 그 '여유'에서 얼핏 어른됨의 모습, 성장함을 본다.
프란시스와 우리를 응원하며
영화에서 프란시스는 힘든 현실에 불구하고 시종일관 밝고 경쾌하다. 그녀의 경쾌함에 흑백 영화에 칼라가 입혀지고, 우리의 일상에도 경쾌함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녀는 말한다
"가끔은 마음 가는 대로 막 해보는 것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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