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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풀잎 Mar 09. 2024

기억하고 기리는 각자의 방법

책 읽고 독후활동_<한국 근대사 산책>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지난달, 언니공동체에서 함께 책 읽고 채탐을 갈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을 읽었다.


채탐 (採探)

명사

모르는 곳을 더듬어 살핌. 또는 그렇게 하여 찾아감.



수요세계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한참 역사 공부에 재미가 시작되는 시점에

한국 근대사라니 또 솔깃하여... 또한 한국의 역사를 공부하면 그 현장을 직접 가볼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으므로 덜컥 신청을 하고 한 달 동안 책을 읽었다.


강준만 교수가 쓴 <한국 근대사 산책>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인 - '천주교 박해에서 갑신정변까지'를 다룬 책이다.



책은 책 표지에 나와 있는 이 많은 말들

-- 신유박해 기해박해 이양선의 출몰 삼정문란 고정 즉위 대원군의 등장 병인양요 병인박해 제너럴셔먼호 신미양요 운양호 사건 조미수호조약 임오군란 한성순보 갑신정변...... 을 다 다루고 있어서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그런대로 술술 읽히는 편이라 다 읽긴 했다.

이 네 글자로 만들어진 역사 속 사건들을 일일이 기억하려고 하는 것은 욕심일 것이므로, 나는 그냥 기억에 남는 것만 기억하기로 했다.




특히 천주교 박해 부분이 기억에 많이 남았는데

천주교 교인들의 많은 비율이 여성이었다는 것, (신분고하를 막론)


천주교가 '만인은 평등하며,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 믿고 따르며, 가난한 자를 섬기고 선을 베풀면 죽어서 영생을 얻어 천국에 간다...'는 교리이다 보니 신분차별, 남녀차별에 익숙한 사회였던 조선 사회의 낮은 자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철저한 신분 사회였고 남녀가 유별했던 조선사회에 이 또한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종교였을지도, 이해가 간다. 그러니 기득권은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테고.. 박해로 이어진 것인데, 박해를 기쁘게 '순교'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무지'라는 말의 어원인데,

각 집에서 천주교를 믿는 자식이 있어 말을 해도 듣지 않으면 '도모지'라는 사형으로 죽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오늘날 '아무리 해봐야...'라는 뜻으로 쓰이는 '도무지'라는 말의 어원이 된 '도모지'는 몇 겹의 종이에 물을 묻혀 얼굴에 발라 숨이 막혀 죽도록 하는 사형방법이었다고 한다. 자식이 천주교를 믿는다고 하여 이렇게 죽일 수밖에 없었던 부모. 너무 끔찍하고 잔인하다.


또한 황사영 백서 사건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1801년 9월 황사영(정약용의 조카사위)이 프랑스인 주교에게 무력을 동원하여 조선에서의 신앙과 포교의 자유를 보장받아 달라는 서신을 보내려다 발각된 사건이다. 그런데 이 내용이 무척 충격적인데 청의 황제를 통하여 선교의 자유를 주도록 조선 국왕에게 압력을 가할 것, 청조가 친왕을 조선에 파견하고 조선 국왕을 청의 공주와 결혼시켜 조선을 청의 영토로 병합할 것, 서양에 요청하여 무력으로 위협해서라도 선교사를 받아들이도록 조선에 압력을 가할 것 등이 이었다고 한다. 이건 조선시대에 젤 무서운 '반역죄'아닌가....


조선시대 천주교인들의 순교 이야기는 수요세계사에서 공부하면서 배운 로마제국의 기독교(천주교)인 박해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당시도 신분고하에 따라 사는 모양이 달랐고, 특히나 로마의 지배를 받던 식민지의 백성들은 힘들게 일한 것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으므로 천주교의 교리가 얼마나 와닿았을까.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믿고, 갖은 박해를 받았지만 순교한다는 기쁨으로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였다. 로마제국으로부터 조선에 그 천주교가 당도하기까지 18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는데 그 종교가 퍼지게 된 연유와 박해 그리고 순교의 과정이 복붙 한 듯 똑같다는 게 놀랍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순교가 있었는데, 서소문 밖 네거리가 당고개, 새남터, 절두산과 더불어 조선시대 공식 참형장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자리에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 지어졌다고 해서 오늘 채탐으로 다녀왔다.


지상에는 서소문 역사공원이

지하에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먼저 지하로 들어갔는데, 천주교 신자였던 운보 김기창 선생님의 성화 판화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운보 김기창 선생님은 성함은 익숙한데 어떤 작품을 그리셨는지는 잘 몰랐다.

그런데 이번 작품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조선을 배경으로 판화로 만든 작품들이었는데

그 섬세함과 다채로운 색감에 완전히 반함

예수님이 조선 시대에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셨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인물들의 표정이나 생김생김이 살아있는 듯 한 작품들 사이에서

제일 기억에 남은 작품은 이것.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의 모습인데, 저 색깔의 음영만으로 구현된 거센 파도라니.

이것이 판화라니. 놀랍다.




운보 김기창 선생님의 전기 다큐를 상영해 주는 게 있어서 보았는데

7세 때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을 앓고 난 후 청력을 상실하셨다고 한다.

평생 고요한 세상 속에서 그림으로 자신의 생각들을 표현해 내신 분.

그분 곁에는 김기창 선생님께 말을 가르쳐 줄 뿐만 아니라 함께 그림을 그린 화가이자 아내

우향 박래현 선생님이 계셨다.

훌륭한 화가 곁에는 항상 남편의 작품 세계를 든든히 받쳐주는 아내가 있다.

김환기 선생님 곁의 김향안 선생님도 그렇고....

에드워드 호퍼의 부인 조세핀 호퍼도 그렇고....

그 와중에 박래현 선생님은 활동이 상대적으로 적긴 해도 부부가 같이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도 하셨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그 다큐에서 김기창 선생님의 작품들을 보는데

어찌나 다양한 그림들을 그리셨는지.

엄청 정적인 그림도 있고, 엄청 다이내믹한 그림도 있고.

천재화가의 작품세계는 놀라웠다.


그리고 다른 층에서는 조각가 최종태 선생님의 <영원을 담는 그릇>이라는 제목의 조각 작품 전시가 있었다.

테라코타, 브론즈, 나무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서 만든 여러 버전의 성모자 상들이 있었다.

정말 아름답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이 역사박물관의 진수~ 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이름하여 하늘광장.

한쪽 벽이 쭈욱 유리문이었는데 놀랍게도 다 열고 나갈 수 있는 문이었다.

하늘문이 모두에게 열려 있는 것.



그리고 그 광장에 서면 뻥 뚫린 사각형의 하늘을 마주할 수 있다.



한쪽에 기다랗게 세워져 있는 게 깃대인 줄 알았는데

이환권 작가의 <영웅>이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진짜 놀라운 건 옆으로 돌면서 쓰윽 올려다보면 사람의 형상이 나타난다는 것.

와 진짜 깃대인 줄 알았는데...

박물관 설명서를 보니 인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을 반영하듯 왜상기법을 이용하여 한 사람을 왜곡되게 수직으로 늘여놓은 것이라고 한다. 작품명 <영웅>은 누구나 타인의 선입견에서 비롯한 왜곡된 시선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의 주인이고 영웅이라는 깊은 메시지를 담은 것이라고 한다. 정말 멋진 작품.




그리고 반대편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성이며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현 작가의 <서 있는 사람들>이라는 작품인데 서소문 밖 네거리 형장에서 박해받다 순교하여 성인의 반열에 오른 44인을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한다. 설명서에는 '무거운 기차가 수백 번, 수천 번 위로 지나가며 짓밟히며 누워있던 침목이 이 작품으로 재탄생하여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이 땅에서 순교한 거룩한 이들과 닮아있다.'라고 되어 있다.


작품의 소재가 갖고 있는 의미와 형태가 너무 와닿고 이들이 '하늘 광장'에 서 있다는 것이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천국에 가 있는 거 같아 감동적이었다. 이들은 제각각 키도 다르고 서 있는 모습도 달라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하늘 광장 한편에 난 길로 나가면 '하늘길'이라는 아름다운 공간이 펼쳐진다.

지금까지 경험해 본 미디어 아트 중 가장 아름다웠던 곳.

마치 내가 천국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이 하늘광장과 하늘길을 보면서 건축가의 역할에 대해 생각했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걸어가는 길의 폭, 기울기까지 철저히 계산된 공간. 경이롭다.



성 정하상 기념경당(예배당)에도 잠시 들어가 보았는데 자그마한 예배당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정하상은 정약종의 아들로 1839년 기해박해 때 최초의 호교론서인 <상재상서>를 올려 박해의 부당함을 항변하고 서소문 밖 네거리 형장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부친 정약종과 형 정철상이 1801년에 순교하였는데 정하상은 그때 6살이었다고 한다. 어머니와 누이 정정혜 역시 뒤를 이어 순교하였기에 이 가족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예배당이라고 한다.


지상으로 올라오니

서소문 역사공원이 펼쳐졌다.


이곳에 순교자를 기리는 현양탑이 있고, 그 옆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이 우물을 이른바 망나니 우물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곳이 당시 처형장소이다 보니 망나니들이 처형을 한 후 칼을 씻은 곳이라고.

가족이나 친지들은 망나니에게 돈을 던져주며 가급적 고통을 주지 말고 단칼로 죽여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망나니를 사극에서 볼 때마다 무서운 이미지만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매일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하는 그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지옥이었을까 싶다. 정상적인 삶이 가능했을까.


그리고 그 옆에는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만한 벤치에 누워있는 노숙자 동상이 있다.

얼핏 보면 진짜 노숙자가 누워있나 싶기도 할 정도로 실감 나게 보인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작품 명을 보고 깜짝 놀랐다.

<노숙자 예수>


가까이 가보니 노숙자의 발에 못 박힌 자국이 선명하다.

작가 티모시 슈말츠는 마태복음 25장 40절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근에 있는 약현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그마한 성당에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어 들어가 보진 못했는데 건물 자체가 참 예뻤다.

이번에 책을 읽다 알게 된 사실인데 서울의 명동성당과 전주의 전동성당이 천주교를 믿고 순교한 사람의 집 터이거나, 죽음을 맞은 자리에 지어진 곳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는지를 이 책을 통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오늘 박물관 관람을 인도해 준 언니와 함께 인근 맛집 골목에서 점심 먹을 메뉴를 찾다가

너무 이색적인 공간을 만났다.

중림동 성요셉아파트!


약간 삐뚜름한 오르막길 한쪽으로 쭉 이어지는 주상복합 아파트.

찾아보니 71년도에 지어진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이라고 한다.

10평대부터 30평대까지 다양하네.

이곳 1층엔 진짜 70년대 풍의 방앗간이 무려 3곳이나 있었고, 그런 70년대 풍 상점들 사이에

2024년 풍(?) 카페들이 끼어 있었다.

오호 이렇게 이색적인 곳이라니!

이곳은 약현성당의 성도들을 위해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재미있는 길들을 지나, 맛집 골목에서 굴국밥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부족해 좀 더 자세히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충분히 충만한 시간들이었다.

<한국 근대사 산책> 1권과 찰떡콩떡한 나들이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


함께 책 읽고 나눈 언니들

시간을 내어 만나주시고 가이드해주신 J 언니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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