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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경 Apr 26. 2024

엄마 혼자 떠나는 여행이 좋은 이유

[나의 안식월 이야기] 이 봄이 가기 전에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사방이 모르는 곳이다. 여긴 어딜까. 처음 보는 낯선 동네다. 언니랑 와본 적이 있던가. 앱 지도를 열어 걸으면서 호텔 위치를 확인한다. 너무 자신만만했다. 반대로 갔다. 급정지.


되돌아와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인도에 있는 평행선 쇳덩이. 철길을 건넌다. 기차가 다니는 길은 아닌데 선로가 있다. 도로에도 나 있는 선로를 자동차가 지날 때마다 우두둑우두둑 굉음이 난다. 그 후로 호텔로 가는 길은 쉽다. 무조건 직진.


웃음이 절로 난다. 엄마 혼자 떠나는 여행이 뭐가 좋냐면... 밥 하고 치우지 않아도 되니 좋다. 다른 이유가 없다. 내 몸 하나만 신경 쓰면 되는 온전한 내 시간이 좋은 거다. 기분 탓인가. 특별할 것도 없는데 천변에 난 유채꽃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천변 옆 2층짜리 번영빌라도 귀여운 모습으로 서 있다. 맘에 드네... 이 집. 이 집은 얼마나 하려나. 내 작업실 하고 싶다. 그렇다고 부동산 앱을 켜지는 않았다.

     

호텔 주차장을 지나 로비로 들어선다. 낮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청소가 끝난 방이 없다기에 일단 짐을 맡기고 로비 카페에 앉아 주변을 구경한다. 역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유채꽃이다. 군산은 유채꽃이 늦게 피나. 이쁘게 피었네. 생각할 무렵 언니가 왔다.     


“건조기에서 둘째 교복만 꺼내 놓고 왔징.”     


살림에 별 관심이 없는 건 나랑 비슷한 언니. 풋. 천천히 와도 되는데... 주말에 가족들의 시간을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언니가 묻는다. “도다리쑥국.” 며칠 전 이 봄이 가기 전에 도다리쑥국이란 것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예능 프로에서 유재석이 너무 맛있게 먹는 걸 보고 난 뒤다. 먹어 본 적 없다.      


모처럼 남편이 휴가를 낸 날 어쩐 일로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도다리쑥국을 말했더니 “물에 빠진 생선국... 난 별로”라고 해서 못 먹었다. 남편 말에 서운하지 않았다. 어느새 결혼 19년 차. 비린 거 못 먹는 거 아는데 뭐. 오히려 괜찮아, 군산 가서 먹으면 되니까. 군산에서 언니랑 먹는 게 더 맛있겠지... 했는데 웬걸. 일요일이라 식당들이 문을 많이 닫았다.


“관광지 아니면 주말에도 일을 안 하네. 군산도 변했어.”     


그래서 우리는 갈치 요리를 하는 궁전갈치찜에 갔다. 우리 가족이 언니를 처음 만났던 날, 언니가 애들 밥 먹이겠다고 데려간 곳. 데친 다시마를 잘 먹던 둘째를 언니는 기특해했다. 다시마를 손에 들고 초장을 찍어 먹던 둘째는 이제 중1. 너구리에 든 다시마도 버리지 않고 잘 먹는다. 백종원 선생님이 여기에 넣는 다시마는 좋은 것 쓴다고 했다면서 꼭 먹어줘야 한단다.

      


추억이 있는 밥집에서 갈치조림을 시켰다(1인분 16000원). 간이 세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맛이 좋았다. 감자도 넣어줘서 더 좋았다. 얇게 썬 무는 좀 실망이었다. 폭신하게 익은 도톰한 무조림이 맛있는데. 밑반찬도 맛있었다. 파래무침도 신선했다. 언니는 밥을 잘 먹지 않았다. “요즘 입맛이 없어.” 아침도 거른 나는 공깃밥을 싹싹 비웠다. 우리 만남에 계획은 하나였다. 청암산에 가는 것. 산에는 월요일 아침에 가기로 했으니 오후에 뭘 할지는 아직 미정.      


“최자매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     


군산의 웬만한 곳은 거의 다 가봤다. 언니랑, 가족이랑, 때로 혼자, 가끔은 출장으로. 그때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본 사진 한 장이 생각났다. 우리 집 아파트 화단. 나는 그 보라색 꽃이 맥문동인 줄 알았다. 지금쯤이면 장항송림산림욕장에 맥문동이 만개하지 않았을까. 아이들 어렸을 때 한 번 가 본 적 있다. 스카이 워크도 걸어봤다. 가 본 적만 있을 뿐이다. 또 와야지 했던 것 같은데 올 일이 없었다. 거기 좋았었지. 언니와 함께 걷고 싶었다.


아파트 화단에서 본 꽃. 맥문동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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