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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경 Apr 26. 2024

새벽에 와서 뛰면 좋아서 기절하겠네

[나의 안식월 이야기]  장항송림산림욕장

“장항송림산림욕장 알아? 여기서 20분쯤 걸린다고 하던데...”

“군산은 다 금방이야.”


“거긴 군산 아니고 장항이잖아.”

“다리만 건너면 돼. 동백교.”     


이름도 이쁜 아담한 동백교를 건너 삭막한 공장지대를 지나니 솔숲이 드러났다. 전망산에 솟은 장항제련소 굴뚝탑이 보인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자마자 솔숲이 코앞이다. 벤치에 앉은 두 여성분이 먼저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맑은 날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래도 좋아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여기 온 건 신의 한 수였다. 언니가 들려주는 어릴 적 이야기들이 배경음악처럼 흐르는 길. 걷고 걸어도 지치기 어려운, 자꾸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예쁜 길이다. 좋다, 이쁘다, 환상적이다.



"맥문동 피면 더 환상적이겠지. 또 와야겠다. 새벽에 걸으면 얼마나 이쁠까. 예전에 왔던 곳인데 그때랑 너무 다르다. 너무 잘 꾸며놨다...."


언니가 쉬지도 않고 말했다. 새벽에 와서 뛰면 진짜 기절하게 좋을 것 같았다. 물안개 끼는 날에도, 눈이 온 날도. 경험해 보지 않은 날들인데 마치 해 본 것처럼 미래를 현재처럼 이야기하며 기뻐하는 우리.

     

“주말 말고 평일 새벽에 와야겠다. 사진 보낼게. 부러워하라고.”

     


솔숲에서 바다가 보인다. 생각해 보니 이번 안식월은 대부분 산에 다녔다. 수리산을 제일 많이 갔고, 독서모임 사람들과 서울 우면산에도 갔고 인천 청량산에도 갔다. 내일은 청암산에 간다. 산은 아니지만 괴산에서는 산막이옛길도 걸었다. 바다는 안 갔다. 군산에 오니 바다도 산도 갈 수 있다. 나이스다. 완벽하다. 날은 흐렸지만 춥지는 않았다. 바닷가에서 사람들도 개들도 산책을 하고 있다. 맨발로 걷는 사람도 눈에 띈다. 그때까진 몰랐지. 그 갯벌, 나도 걷게 될 줄은.

     

“스카이 워크도 가야지?”

“가야지. 근데 좀 무서웠던 것 같아.”     


언니 곁으로 바짝 붙어서 팔짱을 끼고 걸었다. 괜찮은데 가끔 무서운 높디높은 길. 아찔한 순간, 팔에 힘이 들어간다. 하늘로 가는 정거장 같은 길. 막힘 없이 저 바다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어지는 길이다. 누가 디자인했을까. 누가 어떤 이유로 이런 모습의 건물을 세웠는지 궁금하다. 고2 딸이 건축을 전공하겠다고 해서 그런가. 요즘의 나는 멋진 건물을 보면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공들였을 사람들이 먼저 생각난다.



그리고 보았다. 내가 꿈꾸는 모습을. 어느 여성이 캠핑 의자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저 모습은 내 모습이어야 했는데...      


“언니 저거야. 캠핑 의자 사라.”

“나 요즘 물건 안 사는데... 그래도 저건 사야겠지? 차에 실어놔야겠네.”



“있어야지. 저것만 있으면 어디든 내 자리가 되잖아. 나도 사려고. 수리산에서 펼쳐놓고 책 볼 거야.”

“알았어. 꼭 저러고 사진 찍어서 보낼게.”


평일이라 사진을 찍으러 기다리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전망대 끝에 우리 둘만 있을 때도 있었다. 주말이었다면 인증샷을 남기기 위한 사람들로 줄이 길었을 텐데... 사람들 도움 없이도 셀카 타이머만으로도 훌륭한 사진을 건졌다. 장항제련소 굴뚝탑 배경으로 멋진 독사진도 얻었다. 언니가 참으로 이쁘게 나왔다고 여러 번 말했다. 언니와 나는 7살 차이인데... 7년 전 언니는 어떤 모습이었나, 잠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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