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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경 Apr 26. 2024

내년 봄에도 생각날 도다리쑥국

[나의 안식월 이야기] 회와 초밥은 덤

에이본 호텔 월명 일식 12시 반 예약인데 12시 32분에 호텔 주차장에 도착했다. 조식이 너무 근사했나. 만 보 넘게 걸었는데도 식욕이 돌아오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손을 깨끗이 씻고 1번 룸으로 들어갔다. 미리 전화로 도다리쑥국을 먹는다고 말했기에 주는 대로 먹고자 기다렸다.



반찬이 깔린다. 헉 그런데 회가 나온다. 회는 시킨 적이 없는데... 도다리쑥국을 시켰는데 왜 회가 나오니. 초밥까지. 전복에 멍게 해삼 관자는 덤. 그 뒤로 보글보글 뚝배기에 쑥이 수북이 쌓인 도다리쑥국의 등장. 너로구나. 국물부터 먹어보자. 아, 글을 쓰는 지금도 침이 고인다.



은은쑥향에 맑은 국물. 짜지 않은 국물. 비린내라고는 1도 없는. 복국과도 다르고 대구지리와도 다른. 오호라. 이게 바로 도다리쑥국의 맛이로구나. 식욕 없다는 언니의 숟가락이 바삐 움직인다. 국물이 줄어드는 게 눈에 띄게 보인다. 기운이 나는 것 같단다.


천천히 오래 먹자 언니. 이어지는 튀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상차림이다. 1인분 28000원의 호사. 괜찮다. 오래 꺼내지 않고 묵혀둔 ‘작가 통장’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니까.

      

생각해 보니 쑥은 개떡으로만 먹었다. 시어머니가 만들어주시는 개떡은 정말 천상의 맛인데. 쑥을 국으로 먹어본 건 처음이거나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나지 않거나 그렇다.


도다리를 한 마리 통째로 넣은 것 같았다. 살을 발라 먹느라 나는 그 좋아하는 밥을 반이나 남겼다. 이때 빠질 수 없는 게 있으니 바로 맥주.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천국을 오가는 기분이다. 언니 미안. 이건 나만 먹을게.


많은 음식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먹고 싶었으나 치우는 입장에서는 그게 아닌가 보다. 오후 2시가 되기 전에 치우고 쉬고 싶은 식당 노동자의 마음을 이해했다. 나는 안식월 중이니 지금은 이해 못 할 게 없다. 다 못 먹은 음식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충분히 먹었다.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이고 특히나 밥 욕심은 버릴수록 내 몸에 좋은 것이니 괜찮다.

     

언니는 들판이 보이는 도서관에 잠시 들렀다 넓은 카페에 가자고 했다. 그리고 군산역에 여유 있게 가면 딱이겠다고. 배가 너무 불러서 더 뭔가를 위에 넣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냥 들판이 보이는 도서관에서 쉬었다 가자고 했다. 손 잡겠다는 말은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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