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경 Apr 26. 2024

언니는 보여주고 싶어 하는 사람

[나의 안식월 이야기] 좋아하는 것을 공유한다는 것

들판뷰가 있는 도서관은 산들도서관. 군산시 옥구읍에 있다. 수산리 표지판이 보인다. 언니 시댁으로 가는 길이다.


옥구읍은 금융권이었다. 농협도 있고 새마을금고도 있는 동네였다. 보건지소도 있고 도서관도 있고 초등학교 중학교도 있다. 시골인데 번화가다. 주말이라 문을 닫아서 그렇지 맛집들도 많다고 했는데 어딜 봐도 들어갈 만한 식당은 눈에 띄지 않았다. 사실 오래된 노포는 내 취향은 아니다.

산들도서관은 이름처럼 예쁜 곳이었다. 1층은 어린이 도서관, 2층은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 3층은 전망대였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논밭뷰는 장난 아니었다. 햇살이 좋으면 좋은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눈이 오면 오는 대로 사계절을 넉넉히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여긴 일하러 오는 데 아니네... 힐링하러 와야지. 원고 쓰러 오는 곳이 아니야.”     


트렌디한 조명까지 완벽한 창가 의자에 앉아봤다. 언젠가 언니가 인스타그램에 올려둔 장면이 생각났다. 다시 한번 생각했다. 여긴 글 쓰러 오는 곳이 아니라고. 머리 쉬러 와야 하는 곳이라고. 우리는 잠깐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언니는 여기 와서 소파에 앉아본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언니가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서가에 꽂힌 책 두 권을 발견했다. 하나는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그리고 그 아래 아래 서가에 꽂힌 <소년의 레시피> 주인공 강제규의 <소방관들을 위한 특별한 한 끼>. 두 권을 사진에 담았다. 아들의 책과 엄마의 책이 나란히 도서관에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되려나. 열심히 도서 정리를 하던 도서관 사서는 작가 배지영을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우리는 3층으로 갔다. 탁 트인 논밭을 바라보니 갑자기 친정엄마가 말한 만평언니가 생각났다.     

 

“엄마 친구 중에 땅이 만평 있어서 만평언니라고 하는 사람 있더라. 만평이 얼마 큼이야?”

“얼마 안 돼. 저 한 필지가 2천 평이거든.”


“그럼 이렇게 다섯 개면 만 평이네. 정말 생각보다 별로 안 크다.”

“그러게 땅 만 평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사야 하나. 근데 돈이 없네. 여기 땅값 비싸야.”     


땅 이야기를 더 하나 싶었는데 언니가 말했다.      


“최자매에게 내가 좋아하는 곳 다 보여줬다이.”     


언니는 친정엄마와 시아버지에 대한 글로 책을 썼다. 책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에서 언니는 친정엄마를 이렇게 정의했다.      


‘엄마는 보여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배지영의 이 말을 나는 이렇게 고쳐 쓰고 싶었다.      


‘언니는 보여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나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내가 배지영을 알아온 시간은 군산이란 도시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내게 언니는 군산이었고 군산은 언니였다. 언니가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이란 책을 쓴다고 했을 때 언니보다 더 잘 쓸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 이미 나에게 언니는 군산 도슨트였기 때문이다.


언니와 함께 걸은 군산 거리는 셀 수 없이 많다. 경기도에 사는 내가 전라북도 군산 시내를 훤히 꿰뚫고 있는 것은 다 언니 덕분이다. 헤아려 보니 언니와 만난 세월이 적지 않다. 15년.


만난 날보다 앞으로 만날 날이 더 길 거다. 언니는 지금까지 그랬듯 나한테 늘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생기겠지. 나는 어미새의 먹이를 받아먹듯 언니가 보여주면 보여주는 대로 함께 보고 듣고 걸으면서 순간을 기록할 거고 언니도 언니만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쓰겠지.

      

“몸 관리 잘해서 또 건강하게 만나자. 가을에 또 와. 맥문동 보러 가자. 아리사랑.”


우리의 봄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함께 걷다가 서로 쓰고 싶은 다음 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직장인의 안식월에 대해 쓰기로 했다.



다음 안식월은 아마도 현재 고2 딸아이의 수능 이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여건이 되는 대로 직장맘의 안식월을 써보려 한다. 회사 다니면서 꾸준히 글 쓰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언니가 말했다. 언니가 모르는 게 있다. 내 옆에 언니가 있어서 포기하지 않고 쓸 수 있었던 순간들이 많았다는 거. 그러니 언니, 나를 계속 거둬줘.


이성복 시집 <그 여름의 끝>을 호텔 침대 위에 두고 왔다. '여름의 끝'에 다시 언니를 만나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년 봄에도 생각날 도다리쑥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