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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경 Apr 26. 2024

두근두근 안식월

[프롤로그] 20년간 6개월의 안식월 그리고 다시 생긴 6개월

2024년 4월은 나의 일곱 번째 안식월이다.

그래서 조사를 좀 해봤다. 입사 후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포함 내가 회사를 공식적으로 쉰 기간에 대해서.


2003년 5월 입사.

2005년 11월 결혼.


2007년 8월 첫째 아이 출산

: 3개월 출산 휴가 사용 후 복직. 육아휴직 사용 하지 않음.


2008년 5월 모일 이후 5년 근속 첫 안식월 발생.

: 회사 안식월은 5년마다 발생, 회사 단체협약에서 보장.

 

단체협약은 노동조합과 사용자 사이에서 근로조건 그 밖의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에 관하여 합의된 문서를 말한다.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단체교섭에서 합의된 사항을 문서로 작성하여 확인 보존함으로써 노사 간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려는 데 그 기능이 있다. 단체협약은 근로자 측에서 보면 조직의 힘으로 확보된 근로조건을 그 효력기간 동안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전리품과 같은 기능을 가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단체협약 [團體協約, labor collective agreement] (실무노동용어사전, 2014.)


단체협약에 안식월이 보장되어 있다. 안식월은 말 그대로 '직장 등에서 장기근속 연수에 따라 부여되는 장기 휴가를 이르는 말'이다. 우리 회사의 경우 다음 안식월 발생 전까지 반드시 소진해야 한다. 사용하지 않을 시 이월이 되지 않는다. 사용하지 않는다고 돈으로 보상해주지도 않는다. 그러니 반드시 사용해야 하고 누구나 쓸 수 있다. 회사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래서 나는 언제 첫 번째 안식월 썼나 봤더니,


근속 5년(2008년 이후 2013년까지 사용해야 할 안식월 1개월 발생)


[겨울 / 육아] 2010년 1월 4일~2010년 2월 3일, 건강상의 이유.


이때가 입덧 기간이었다. 당시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둘째를 임신했던 터라 이때 첫 안식월을 사용했던 것 같다. 특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왕복 3시간 출퇴근을 하기는 무리라서 오로지 나와 아기를 위해 쉰 한 달이었다. 물론 그때의 나는 변기통을 붙들고 살았지만. 그래도 몸도 마음도 힘들 때 퇴사 대신 안식월이라는 선택지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충분히 잘 쉴 수 있었고 그해 8월 아기도 잘 낳았다.


2011년 8월 둘째 아이 출산 후 3개월 출산 휴가.


2011년 11월 7일~2012년 5월 6일 육아휴직 6개월(배치팀)

2012년 5월 6일~2012년 8월 31일 육아휴직 4개월 연장(배치팀)

: 9세 전까지 쓸 수 있는 육아휴직 2개월 남음.


근속 10년(2013년 이후 2018년까지 사용해야 할 안식월 2개월 발생)


[봄 / 육아] 2014년 3월 5일부터 4월 4일까지 안식월 한 달(편집부).


10년 근속 안식월이 발생하자마자 그 한 달은 첫째 아이 초등학교 입학하는 해 3월에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직장맘이라면 누구나 그런 계획을 세웠으리라. 학부모는 처음이라 괜히 정신 없었던 2014년의 3월. 두 번째 안식월 역시 나보다는 아이를 위한 선택이었다.  


[겨울 / 육아] 2017년 1월 2일부터 2월 1일까지 안식월 한 달(편집부).


세 번째 안식월 역시 아이 겨울방학에 맞춰 썼다. 과거와 다른 이슈라면, 2016년부터 쓰기 시작한 글로 한 출판사와 계약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쓴 시간이기도 하다. 10년 근속 안식월이 이렇게 소진되었다. 다음 안식월은 근속 15년 차에 발생한다. 나는 그때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결과적으로... 다녔다!).


2017년 5월 1일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출간.


(2018년 3월 1일부터 5월 30일까지 아빠 육아휴직. 둘째 아이 초등학교 입학)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해는 다행히 아이 아빠가 육아휴직을 썼다. 덕분에 나는 일과 글쓰기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근속 15년(2018년 이후 2023년까지 사용해야 할 안식월 3개월 발생)


2019년 1월 1일부터 2월 28일까지 육아휴직(네트워크부).


9세 이전에 사용해야 할 육아휴직 2개월 분을 이때 소진했다. 아이들 방학을 이용해 이 중 한 달은 베트남에서 지냈다(1월 9일부터 1개월).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좋았었지"라고 말하는 시간. 떠날 때만 해도 몰랐지. 24시간 풀케어 독박육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나기만 하면 좋을 줄 알았어.   


2019년 11월 18일 성교육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출간.



[겨울 / 육아] 2020년 1월 29일부터 2월 28일까지 안식월 한 달 사용(네트워크부).


네 번째 안식월 기안을 낼 때만 해도 코로나가 내 발목을 잡을지 몰랐다. 큰 아이 중학교 진학 등을 이유로 집을 알아보던 중에 계약을 하게 되었고 꼼짝없이 한 달간 이사 준비를 했다. 인테리어도 해야 했기에 알아볼 것들이 많았다. 새벽에는 산에 다니고, 낮에는 끝도 없는 집정리를 했던, 코로나와 함께 한 안식월. 일과 병행했으면 더 힘들었을 거라는 걸 알기에 이마저도 감사했다.


[여름 / 자유+육아] 2021년 8월 18일부터 9월 17일까지 안식월 한 달 사용(라플).


다섯 번째 안식월. 처음으로 나를 위한 시간을 내봤던 때다. 연차를 이용해 혼자만의 시간을 안 가져 본 것은 아니었지만 나 홀로 여행은 꽤 오랜만이었던 기억. 포항과 대구를 다녔고, 출간을 앞둔 책의 원고도 부지런히 썼다. 일 외에 집중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안식월은 좋은 충전의 시간이 되어 주었다.


2021년 12월 13일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출간.


[여름 / 자유+돌봄] 2022년 7월 13일부터 8월 12일까지 안식월 한 달 사용(라플).


여섯 번째 안식월. 사실 이때의 안식월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가장 최근의 일이기도 했지만 사춘기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냈던 시기여서다. 중3  아이의 사춘기가 심하게 왔다. 아이는 학교를 가기 싫어했다. 자퇴 후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했다. 실제로 가지 않은 날도 많았다. 9일 만에 학교를 간 적도 있다. 학교를 자주 빠지더라도 그만두는 것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해 억지로 보내지 않았다(물론 학교에서 정한 규정을 따랐다).


학교를 가더라도 교실보다 상담실에 있던 시간이 더 많았다. 이때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힘들어 할 때 옆에 있어줘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혼자 감당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가 방학을 하자마자 제주도로 떠났다. 그 후 강릉으로 인천으로, 마음이 답답한 아이와 참 많이 돌아다녔다. 나중에 아이는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2학기가 되자 자퇴는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는지 졸업은 했다. 고등학교에도 진학했다.

가족여행 중에. 양양 낙산사


근속 20년(2023년 이후 2028년까지 사용해야 할 안식월 6개월 발생)


[봄 / 자유+돌봄] 2024년 4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안식월 한 달 사용(라플).


20년 간 총 6개월의 안식월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2028년까지 써야할 6개월의 안식월이 생겼다. 계절로 보면, 두 번의 봄, 두 번의 여름, 세 번의 겨울이었다. 아, 지금도 봄이니 이제 세 번의 봄이 되었군. 가을에 온전히 쉬어본 적이 없다는 걸 알았으니, 남은 안식월 가운데 한 달은 가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계절에 쓰는 것도 좋을 듯하다. 안식월은 한 달씩만 쓸 수 있는 건 아니고 한두 달 붙여서 쓸 수도 있다. 개인과 부서의 상황을 고려해서 쓰면 된다.


직장맘 안식월의 대부분은 늘 육아와 돌봄이 있었다. 따져보니 5개월 이상이다. 나와 가족을 위해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시간을 보냈다. 그 쉼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남은 5개월의 안식월에서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 가능할지 궁금하다.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다.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뭘 할 수 있을까. 미리 고민해 두는 것도 겠다. 그 전에 그동안 안식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록해 두면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을까. 그래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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