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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듣게 되는 가수"

[내 인생의 심사평] 노래도, 글도 능숙하지 않아도 좋다

by 은경

"우리는 사람들이 생각할 때 굉장히 무대에서 능숙한 사람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아니에요. 능숙한 사람은 오히려 반감이 생기고 (가수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사람들이 잘 안 하거든요. 이렇게 떨려하고 수줍어하는 모습들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듣게 되는 이유일 것 같으니까..."


<우리들의 발라드> 1회에서 고3 송지우 무대 이후 정재형 심사위원이 한 말이다. 그런가? ‘능숙한 사람은 오히려 반감이 생기고 (가수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사람들이 잘 안 하나?’ 심사위원 중 하나인 배우 차태현이 1라운드 때 16세 조수아 양에게 표를 주지 않은 이유가 ‘노래를 너무 잘해서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아서’라고 한 걸 보면 그렇기도 한 듯하다.


그런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2라운드 경연에서 차태현은 이 말을 번복한다. 소프라노 조수미의 ‘나 가거든’을 노래한 조수아에게 “선곡을 정말 잘한 것 같다. 오늘도 (1라운드에서처럼) AI처럼 불렀는데 그런 느낌이 없었다. 곡이 너무 멋있으니까 AI 같지가 않았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노래를 능숙하게 잘 부르는 사람에게도 사람들은 귀를 기울인다. <싱어게인> 심사위원 이해리의 ‘진실의 턱’이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나는 다만 정재형의 말을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예를 들어 10살 소녀가 이미지에서 벗어나 허스키한 보이스로 노래를 부를 때,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사춘기 소년이 미성을 들려줄 때, 스무 살 여대생이 록커의 면을 보일 때, 완벽하지 않고 서툴러도 좋게 들린다.


화면 캡처 2025-11-24 184018.jpg


다시 말하면,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했을 때 사람들은 기립하고 환호한다. 오디션은 그것이 너무나 투명하게 드러나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우리들의 발라드>처럼 무대 경험이 거의 없는 신인들이 등장할 때 그것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새롭다는 게 뭔지 듣기만 해도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같은 오디션이지만 <싱어게인>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이유다.


편집기자인 나도 정재형 심사위원이 귀 기울이는 것과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대학생들이 쓴 글을 볼 때다. 첫 소절을 듣자마자 놀랍다는 듯 의자 깊숙이 기대 있던 허리를 바짝 세우며 자세를 고쳐 앉는 심사위원처럼, 새롭고 재밌는 글을 발견할 때면 나도 모니터 가까이에 얼굴을 들이밀고 보게 된다. 거북목, 일자목으로 고생하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가 없다.


자기 경험을 솔직하게 적어 내려가면서 그것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나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은 정보들, 사람들이 관심있어 할 법한 시의성 있는 주제들을 잡아 서툴지만 진심으로 쓴 글들은 눈에 띄었다. 문장의 완성도를 굳이 따지고 싶지 않을 만큼, 자체 발광하는 그런 글을 만나면 속으로 환호했다. 어떤 글은 완벽하지 않아도 시선이 머문다. 여운을 남긴다.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쓰는가의 고민은 그래서 중요하다.


반면 그렇지 않은 글들도 많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인지 AI를 적극 활용한 글들이 그렇다. 오탈자 비문이 없는 깔끔한 글, 고칠 데가 특별히 없는 그런 글들은 편집의 수고는 덜 수 있겠지만 재미가 떨어진다.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감흥이 일지 않는다. 특히 본인과 아무 상관없는 주제로, 구체적인 경험에 대한 이야기도 없이 자료 정리에 급급한 글을 볼 때는 한탄도 나온다. 무엇을 위한 글인지 모르겠어서다.


깨달음도 배움도 없는 그런, 숙제를 위한 숙제를 보게 되면 안타깝다. 그 숙제를 교수 대신 검토하고 있는 나도 안타깝고. 다행이라면 그런 가운데서도 ‘반짝’ 하고 나타나는 새로운 사람들은 꼭 있다는 것. 길고 긴 오디션 심사위원들의 피로를 싹 날려주는 참가자가 어디선가 나타나는 것처럼, 나 역시 눈의 피로를 씻어주는 안구 정화 글을 만나는 순간이 오더라. 아쉬운 건 숙제를 내고 나면 끝이라는 것.


다음 라운드로 계속 올라가고 싶은 오디션 참가자처럼 계속 써주면 좋을 텐데, 하고 바라는 내 마음을 대학생들은 알랑가요.




밀리의 서재 이용하시는 분들,

한번 밀어주리.....를... 부탁드립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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