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구원케이 Sep 23. 2016

저와 여러분은 UX디자이너가 아닙니다.

UX라는 개념이 하나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세를 항상 내재화하여 업무에 적용시켜나가는 것은 단순히 디자이너의 일로만 국한되지 않으며 다양한 직종에서 필요시 될 것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UX(사용자 경험)이라는 단어가 주목을 받게 되면서 'UX 디자이너'가 등장했습니다.

몇 달 간격으로 누군가 한 쌍의 이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남겼다고 합니다.


하나의 UI는 비스킷이 되며 또 다른 하나의 이미지는 그 비스킷을 먹는 UX라는 승자의 얼굴이 될 것이다.


몇 주 뒤 'UI의 올바른 정의는 비스킷을 적시기 위한 차 머그컵(mug of tea)이다.'라는 마음 담긴 반론이 게재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비유는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아직 정의되지 않은 단계에서 'UX 디자인'이 넓은 의미를 갖는 단어로써 사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UX는 디자인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제트코스터 설계자는 경험을 디자인한다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트코스터 경험은 중력과 균형, 소리, 공기의 심한 변동을 수반하는 매우 스릴 넘치는 것입니다.


제트코스터 경험을 디자인할 수 있다 말할 수 있는 건, 이러한 변화가 제한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열의 길이, 날씨, 옆에 앉게 될 아이가 탑승 전 마시는 딸기 셰이크의 양까지는 컨트롤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영화감독도 UX 디자이너의 예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선형 스토리 형식(Linear narrative: 영화나 소설 등에서 이야기가 시간축에 따라 펼쳐지는 형식)으로 빠져들어갑니다. 누군가의 휴대폰이 울려 방해받지 않는 한, 상영중인 약 2시간 남짓에 걸쳐 관객 모두가 동일한 감정의 기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UI(유저 인터페이스)와 UX를 대비한 첫 번째 비유는 '자전거'입니다. UI가 자전거 자체의 프레임, 핸들, 타이어 등이라 하면 UX는 언덕을 자전거로 자유롭게 달리는 경험입니다. 하지만 투르 드 프랑스(Le Tour de France: 매년 프랑스를 중심으로 개최되는 자전거 프로 로드 레이스) 경로를 디자인하고, 도시계획 책임자로서 자전거 도로를 설계할 것이 아니라면 자전거를 타는 경험을 디자인할 수는 없습니다. 교통, 지리, 다른 도로 사용자를 컨트롤할 수도 없습니다.


즉,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상정해 UI(디자인)을 디자인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UX(자전거 타기 경험)은 사용자에게 맡겨진 것이며 디자인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UX는 결코 1가지가 아니다.


UX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환상이 아닌 웹사이트나 앱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오해할 수 있는 점은, 절대적으로 올바른 유일한 UX 디자인이 가능하다고 믿는 일입니다.


한편, UX를 위한 디자인이라면 가능합니다. 이해하기 쉽게 기능적인 UI를 디자인하고, 사용자가 공감하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UX를 위한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것은 가능할지라도

UX 그 자체는 디자인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감각은 5가지(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가 있다고 우리들은 학교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감각의 정의는 더욱 다양하다는 점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배가 고픈 공복감, 균형 감각, 온도를 느끼는 감각 등 5가지 전통적 감각과는 상이합니다.


종이 매체 디자인은 최대 세 가지 전통적 감각(시각, 촉각, 후각)과 관련 있습니다. 한편 웹사이트 디자인이 마주하는 감각은 최대 두 가지로 시각과 청각입니다.


내 웹사이트를 방문한 사용자가 어떤 노래를 재생하는지, 그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난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용자의 웹에서의 경험 지속시간과 집중도도 컨트롤할 수 없습니다.


UX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며 개별 사용자에 따라 다를 뿐만 아니라 동일한 사용자라도 문맥이 바뀔 때마다 하나하나 다른 경험을 맞이합니다.


반응형 디자인은 화면 크기 차이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실제론 더욱 많은 것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연결 속도와 화면 해상도, 밝기 차이 등 환경에 의한 요인에 대해, 모두 디자이너만으로는 컨트롤 불가능합니다. 반응형 디자인의 기본 원칙은 이러한 변화를 제약으로써가 아닌 정보 매체가 가지는 본질로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반응형 웹 디자인 연상 선상엔 반응형 UX가 있습니다. UX 그 자체를 디자인하지 않는 대신 UX를 위한 프레임워크를 디자인한다는 개념이며, 디자이너는 사용자 개인의 경험을 발전시키기 위한 도구를 구축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UX vs. 인간 공학


타이포그래피는 가독성의 과학 즉 정보를 흡수하는 행위와 깊이 관련돼 있습니다. 독서 경험이라는 UX에는 인쇄술 이상의 요소가 존재합니다. 책의 무게와 종이의 질감, 표지에서 나는 냄새 등 책을 사용할 때의 모든 요소가 포함됩니다.


책을 인쇄하는 문자의 크기 2pt는 너무 작고 200pt는 너무나 큽니다. 인간을 위한 디자인을 인간의 관점에서 설계하기 시작하는 것을 '인간 공학'이라 말합니다. '인간 공학'은 디자인의 과정이며 인간의 행동까지는 디자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UX 디자인은 그 디자인 과정의 저 뒤에 있는 결과인 것입니다.




잔디밭 출입금지


UX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진 비유 중 하나가 '잔디밭 위 콘크리트 길(a pathway with a patch of grass)'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어 어느 한 이야기에 따르면 문이 있고, 길이 직각으로 나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에 있어 길에는 '디자인'이라는 표식이 붙어 있고 누군가가 잔디에 들어선 뒤 생겨난 무수히 많은 진흙 발자국에는 'UX'라는 표식이 붙어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비스킷 비유와 같이 이 이야기는 UI야말로 사용자에 있어서의 제한이며, UX는 자유와 기쁨을 주는 것이란 내용을 불멸의 신화로 만들었습니다.




인간을 위해 디자인한다는 건 인간의 행위 자체를 디자인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한 이 예시 이야기는 잔디가 아닌 콘크리트를 걸으면 발자국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점을 때마침 무시하고 있습니다. 잔디 위를 걷는 한 사람에 대해 그렇지 않은 사람은 1만 명이나 있을지도 모릅니다.

UX에 대해 자주 언급되는 거짓말은, 오직 올바른 사용자 경험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크라우드 소싱을 통해 디자인을 결정함으로써 하나의 올바른 길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디자이너는 사용자의 사용 환경을 컨트롤할 수도 없고 하려고 시도해서도 안됩니다. 진정으로 성공하는 UX란 디자인되는 것이 아닌, 사용자가 스스로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프레임 워크가 주어질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스타워즈'는 역사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프랜차이즈 영화(몇 개의 속편이 제작되는 히트 영화) 중 하나입니다. 그 이유는 영화뿐만 아니라 장난감에 의한 것도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스타워즈'가 사람들에게 주는 건 선형 스토리 형식 영화 외에 팬들이 개인적인 이야기로 즐길 수 있는 '확장된 세계'입니다. 이 확장성이 없다면 조지 루카스는 '스타 파이터(The Last Starfighter, 1984년에 공개된 미국의 SF영화)를 제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UX 디자이너가 아니다. 당신도 역시 아니다.


좋은 디자인을 설계하는 목적은 사용자와의 연결점을 이루는 것입니다. 디자이너는 그 관계를 사용자에게 요구할 수는 있어도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UX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반응하며 사용자 측면에서 만들어지는 '개인적인 사건'입니다.


디자이너는 영화감독도, 제트코스터 설계자도, 소설가도 아닙니다.

디자이너는 영화관 팝콘을 청소하거나 '출발' 버튼을 누르거나, 문자를 설정하는 역할을 지닙니다.



(번역 끝 / 묭니)






함께 더 읽어보면 좋은 아티클을 가져왔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IoT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UX디자인의 역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