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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 Jun 09. 2020

땅콩사탕과 할머니

흔적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건


“그렇게 책이 된다” 서점 외관 모습


매서운 겨울이 지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서점 안에 세워둔 하얀색 접이식 의자 두 개를 문 밖에 가지런히 내놓는 일이었다. 처음 서점 문을 열었을 때 네 개였던 테이블 의자가 지금은 보조용 의자까지 아홉 개로 늘어나버렸기에 두 개를 밖으로 옮기는 건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쉬어가는 자리’를 내주는 것이자 서점 안 공간 확보를 위해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부턴가, 하얀색 의자에 낯익은 뒤태가 보였다.


 일정한 시간에 와서 짧으면 20분 길면 40분 이상을 하염없이 앉아 있는 작은 체구의 뒷모습은 긴 세월을 묵묵히 견뎌내 강해 질대로 강하고 거친 모습이었다. 강하다는 표현을 감히 쓰는 데에는, 의자 옆에 놓여있는 에어컨 실외기 때문이다. 온풍기를 가동하면 바람이 의자 쪽을 향해 분다. 그 바람을 견디며 앉아있기란 은근 고역이기에 날이 화창해서 온/냉풍기를 안쓸 때는 편히 쉴 수 있지만 틀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추위가 가시기 전인 2~3월에 틀었던 것을 보면 할머니가 처음 오셨던 게 아마 그즈음인 것 같다. 티브이 광고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할머니들의 트레이드 마크인 짧은 뽀글 머리에 고쟁이 바지, 햇빛에 그을린 피부,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을 보니 꼭 우리 외할머니 같아 친숙함이 느껴졌다. 바람과 맞서며 묵묵히 앉아 계신 모습에 신경이 쓰이던 찰나 할머니는 슬며시 서점 문을 열고 입을 떼셨다.


“여기 의자에 좀 쉬었다 가도 되려나”
“그럼요 편히 계세요. 들어오셔도 되고요”


어떤 날은 큰 결심을 하셨는지 문을 여셨다.

 서점 안으로 들어오신 할머니는 문 바로 앞, 끄트머리에 엉덩이만 걸친 채 어디를 바라보는지 가늠이 안 가는 정면만 응시하고 있었다. ‘따뜻한 차 한잔 드릴까요.’ ‘아유 괜찮아’, ‘그럼 물 한잔이라도’ 건네는 모든 호의에 신경 쓰지 말라며 앉아만 있겠다고 한사코 거절하시면서 말이다.


 단지 자리만 내어드렸을 뿐, 말동무가 되어드린 것도 아닌데  “이런 거 젊은 사람들도 먹으려나” 라며 내 손에 땅콩사탕 세 개를 꼬옥 쥐어주신다.


손바닥을 펼쳐 처음 땅콩사탕을 봤을 때,

무척이나 마음이 찡했다.




 어린 시절, 시골 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는 나를 살짝 불러 장롱 안에 고이 보관한 땅콩 캐러멜을 내주셨다. 선명히 기억나는 건, 오래된 나무 장롱 안에 있던 목캔디 통이다. 그 통은 요술상자처럼 커피 사탕, 캐러멜, 알사탕 등 다양한 간식을 저장하고 있었다. 할머니와의 간식 타임이 끝나면 할아버지는 마당에서 놀고 있는 나를 불러 “이거 하나 먹어” 라며 캐러멜을 꺼내 주셨다.

그럼 난 처음이라는 듯, 앞전에 일을 슬쩍 모른척하고 “우아” 라며 즐겁게 받아먹었다.


 그때를 회상하면, 꺼내 먹을 어린 시절 추억이 있다는 건 참 다행이라는 생각뿐. 빛바랜 시절 땅콩 환대는 절대 잊지 못하는 당신들과 나와의 기억이니.




 할머니는 그 이후로도 종종 등장하셨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에도 오시고 서점 바로 앞 한의원에 침 맞으러 가기 전에 들려서 단 15분이라도 앉아있다가 가셨다.


 또 하루는 친한 서점 손님(나와 동갑에 달 사진을 찍는 선한 청년이다.)과 업무적으로 나눌 이야기가 있어 노트북을 보며 진지하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 지정석 바로 옆자리에서 말이다.


 그날도 할머니는 들어오셔서 본인의 지정석에 앉아 우리의 이야기엔 관심 없다는 듯 정면을 응시했다가 벽에 걸린 포스터를 보셨다가 팸플릿을 만지작하더니 “이거”라며 땅콩사탕과 보라색 목캔디(홀스)를 무심한 듯 다정하게 내미셨다.



 “앗 할머니 이건 귀한 거 아니에요.
먹어도 될까요? 감사합니다”



 할머니의 사심 없는 호의엔 빼지 않고 넙죽 받아들이는 게 예의지. 라며 함께 있던 선한 청년과 목캔디 포장을 부욱-찢어 입 안에 쏙 넣었다.


참 이상하지. 언제부턴가 할머니는 서점의 오랜 단골처럼 익숙해져 안 오면 창 밖을 두리번거리며

 기다리게 되니 말이다. 어떤 날은 두세 마디를 나누고 또 하루는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 채 각자의 일에 집중하다 자연스럽게 사라지셨는데 그게 참 좋았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서점 영업일이 이틀인가 남았을 때 청소를 하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빼꼼히 존재감을 보이며 맨 위 칸에 앉아있는 땅콩사탕 9개와 목캔디 2개.

  이미 꽤 먹었음에도 땅콩사탕 9개가 남아 있으려면, 몇 번의 인기척이 서로 오간 것일까.


 실로 짠 아끼는 손가방에 땅콩사탕을 고이 넣어서 집에 가져왔다. 마음이 소란스럽거나 그 공간이 그리워질 때 하나씩 까먹으면서 소중한 시간을 기억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난 오늘 그중 하나를 입에 쏙 넣었다.

 사탕을 오물 거리다 보니 우리가 기다림이라 불렀던 행복했던 기억들이 하나씩 싹이 튼다.

 땅콩의 고소한 맛은 할머니의 쓰담이던 투박한 손이고, 사탕의 달콤한 맛은 어여쁜 똥강아지를 바라보던 할머니의 깊은 눈망울이다.



내게 아름다운 흔적을 남겨 준 할머니의 시간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늘 어딘가를 응시하는 당신의 눈동자가 공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 공허하더라도 때때로 웃음 짓는 순간이 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어서 당신을 편히 쉬게 할 마음에 드는 공간을 만나길 바란다. 긴 기다림 없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을..



할머니가 앉아 계셨던 지정석을 바라보며




* 책 속, 아래의 문장을 읽다가 할머니가 생각나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삶의 무수히 많은 순간을 기다림 속에서 보낸다. 다가올 주말과 예정된 여행을 기다리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지나고 나면 또 다음을 기약한다. 기다림의 감각을 나를 찾아왔다가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머물러 있는 어떤 윤곽처럼 나라는 존재를 둘러싸고 있다. 이를테면 존재의 틀 같은 것이다. 사라지지 않고, 선명해지거나 투명해진다. 우리가 오늘이라 부르던 어제와 내일이라 부르던 오늘의 사이를 순환한다. 기다림의 바깥에서 일상은 유유히 흘러간다. 기다림에 익숙한 이들은 알고 있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를 곧 관통해 지나갈 것이고, 기다림의 끝에 다다르면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것은 새로운 기다림의 시작이라는 것을. 점차 반복될수록 우리의 윤곽은 견고해지고, 그 속안 조금씩 비워져 간다.

그런 것을 우리는 공허라고 부른다.
<emptyness>, 최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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