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andinavian Lighting Design
ㅣ 들어가며 ㅣ
<북유럽 디자이너 토크>는 다양한 분야의 북유럽 디자이너들과 직접 마주 앉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철학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는 토크 세션입니다. 북유럽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비롯한 패션, 건축, 뮤지엄, 놀이터, 카페, 게임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분야의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이야기를 전합니다.
빛(Lighting) 이라는 요소가 품은 잠재성과 미적 효과는 디자인 분야에서 특히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빛을 테마로한 조명 디자인의 분야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다. 상상해보자. 어두침침한 실내에 조명이 하나만 놓인다 해도 그 공간의 분위기와 느낌은 전혀 다르게 변할 것이다. 직접 조명인지, 간접 조명인가에 따라서 공간의 분위기는 확연하게 달라지고, 천정에서 떨어지는지 스탠드형인지에 따라서도 전혀 느낌을 보일 것이다. 그야말로 조명이 우리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시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꽤나 크다 할 수 있다.
특히 이곳 북유럽에서 조명의 역할은 상상이상으로 중요하다. 밤 늦게까지 해가 지지않는 여름, 반면 길고 어두운 겨울의 환경은 조명의 역할을 중요하게 만들었다. 조명을 거의 켤일이 없는 여름엔 인테리어 오브제로서의 훌륭한 역할을 하며, 길고 어두운 겨울에는 말 그대로 제대로 빛을 발한다. 이쯤되니 이들의 조명에 대한 생각이 더욱 궁금해졌다.
이번 <디자이너 토크>는 '빛' 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조명 디자이너 (Lighting Designer)와 함께 했다. 덴마크에서 핫한 조명 브랜드로 부상 중인 Vibeke Fonnesberg Schmidt 스튜디오가 그 주인공이다.
http://vibekefonnesbergschmidt.dk/
<디자이너 토크>에 온 것을 환영한다. 브랜드와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스튜디오에 온것을 환영한다. 나는 비베카 (Vibeke Fonnesberg Schmidt)이며 2012년 부터 조명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현재 코펜하겐에서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다. 빛을 매개체로 한 오브제와 다양한 소재에 관심이 많다. 학교에서는 세라믹으로 예술 분야에 입문했고, 일본에서 세라믹 장인의 도제로 수행한 경험이 있다.개인적으로 스스로가 아티스트 (Artist) 이기보다는 장인(Craftsmanship)이라 불리고 싶다.
조명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있는지
아트 스쿨 재학 당시에도 세라믹, 우드, 유리 등 다양한 소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 소재들이 만들어내는 고유의 특성을 알아가는 과정이 좋았다. 조명 디자인에 매력을 느낀 포인트는 많이 있었다. 무엇보다 빛이 만들어내는 스토리 텔링의 요소가 인상적이었다. 조명 오브제가 꺼져있을 때, 그리고 켜졌을 때의 경험은 완전히 다르다. 그 반전의 매력과 스토리는 늘 감동을 준다.
현재 작업 중인 조명 디자인에 대해 설명을 부탁한다.
기본적으로 플랙시 글라스 (plexi glass)라는 소재를 사용한다. 일상적인 소재이며 가격 수준도 적당하다. 어찌 보면 이 평범한 소재에서 이끌어내는 극대화된 아름다움이 디자인의 가장 핵심 포인트라 할 수 있다. 모든 조명은 모듈러 방식으로 설계된다. 공간의 크기나 장소에 상관없이 모듈 방식이나 구조를 변경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컬러와 빛의 융합이 만들어내는 스토리가 디자인의 주요 콘셉트이라 할 수 있겠다. '호기심 (Curiosity)을 불러일으키는 오브제를 사용하려 한다. 투명한 플랙시 글라스가 서로 레이어를 이루며 만들어내는 컬러와 빛의 결과물은 바로 이 호기심에 대한 대답이라 할 수 있다.
제작에 사용되는 플랙시 글라스 (plexi glass)는 어떤 소재인가
독일 플라스틱 브랜드로 다양한 컬러와 두께, 후가공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컬러는 내가 추구하는 콘셉트와 차이가 있기에 이 스튜디오에서 직접 컬러링 작업을 하고 커스터마이징 작업을 거친다. 특히 빛이 투과될 때의 효과는 상당히 유니크하고 레이어별로 보이는 결과물도 만족스러운 소재다.
조명 디자인은 다른 오브제보다 훨씬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낸다고 생각한다. 빛이 가진 고유의 특성 때문인가
전적으로 동의한다. 몇 가지의 이미지로 끝나는 단순한 오브제보다는 빛이라는 요소를 품은 조명 디자인은 훨씬 매력적이다. 아무리 단순한 구조의 오브제일지라도 빛이 들어오면 전혀 다른 이미지가 투영된다. 다양한 소재의 변화 (거울이나 반사체)를 적용한다면 그 효과는 극대화된다. 켜져 있을 때나 꺼져있을 때나 아름다운 오브제로 그곳에 있기를 바란다.
전반적인 디자인 프로세스에 대해 설명 바란다.
우리 스튜디오를 방문하는 고객들은 대부분 웹사이트나 SNS 통해서 나의 디자인 작업들을 미리 찾아보고 온다. 거실 혹은 서재에 조명을 설치하려는 개인 고객부터 호텔, 레스토랑 등 비즈니스 목적으로도 많이 방문한다. 이러한 고객들과 회의와 아이디어 전개과정을 함께 거치며 최종 결과물에 접근한다. 대부분 나의 디자인 언어를 존중하고 그에 대한 기대치를 갖고 찾아온다. 다양한 전시 행사를 통해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가장 처음 작업한 조명 디자인일 것이다. 당시 어느 갤러리의 요청으로 나무소재를 기본으로 한 오브제 작품을 제작 중이었는데, 갤러리 한쪽 공간에 설치할 조명까지 제작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시 나는 조명에 대한 전문지식이 전혀 없었던 터라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그 작업을 진행했는데, 당연히 갤러리 측에서는 결과물에 대한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얼마 뒤 그 조명을 (무려) 노만 코펜하겐 (NORMANN COPENHAGEN) 측에서 구입해 간 것이 아닌가? 이 일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조명 디자인에 심취하게 된 것 같다. 자신만의 컨포트 존 (Comport Zone)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렵지만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반면 도전이 된 프로젝트가 있다면
2018년에 진행한 런던의 부티끄 레스토랑 프로젝트를 들 수 있겠다. 레스토랑 공간 구성의 이유로 22개의 램프를 제작해야 하는 큰 프로젝트였다. 게다가 처음 일하는 건축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과 합을 맞추는 일도 도전이었다. 수 많은 충돌과 융합의 과정이 반복된 끝에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덴마크 출신 디자이너로서, 본인 스스로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가
상당히 흥미로운 질문이다.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교육을 받았고, 특이하게도 일본에서도 경험을 쌓았다.그리고 이탈리아에서도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내며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개인적으로 이 다양한 경험의 시간들이 모든 프로젝트마다 어떤 접점을 만들어낸다고 본다. 너무 장식적이지 않고, 정제된 이미지를 추구하며, 미니멀한 구성을 동시에 녹아내려한다.
내가 만난 덴마크의 디자인 독립 스튜디오들은 그들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 독립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한다는 것은 그리 녹녹지 않다. 여러 환경에서 제약이 따르고, 고유의 디자인 랭귀지를 고수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디자인에 대한 덴마크의 시스템은 상당히 관대하고 안전하게 설계되어 있다. 쉽게 말하면 실패해도 괜찮은 안전망 (safety Net)이랄까. 좋은 아이템과 아이디어가 있다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도 많고 각 브랜드끼리의 공유 환경도 잘 구축되어 있다. 무엇보다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높은 고객들의 성향도 중요하다.
북유럽 디자인 트렌드는 여전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고맙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북유럽의 디자인에는 늘 이야기를 담긴다. 얼마 전 동료가 자신의 딸을 위해 고가의 디자인 체어를 구입했는데 그 아이가 커서 독립하는 날 그 의자를 가져가기로 했단다. 어찌 보면 단순한 에피소드 일지 모르지만 디자인의 유산을 남기는 이러한 문화가 바로 '북유럽 디자인의 힘'이라 생각한다. 가치 있는 디자인은 사용하면 할수록 훌륭한 시간의 흐름이 담기기에 그 특별함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이다.
디자인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얻는가. 특별한 과정이 있는지
개인적으로 다른 디자이너나 브랜드로부터 영감을 받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조금 거리가 있는 혹은 관련이 적은 분야인 회화나, 페인팅, 조각 등 순수 예술에서 영감을 얻는 것을 선호한다. 사실 이 인사이트 과정은 어지럽고 지저분 할 수 있는 단계를 거치지만 그 안에서 분명 영감의 포인트가 드러난다.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싶은 후배들에게 조언을 바란다
독립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니다. 본인 디자인데 대한 열정과 확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픈 마인드가 필요하다. 나의 절대적인 방향이 아닐지라도 경험과 실행을 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 기회를 통해 많은 것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처럼) 또한 모든 사물에 대한 호기심은 결코 빼놓을 수 없다.
디자이너로서 다음 비젼은 무엇인가
멀리 바라보지는 않으려 한다. 지금의 흐름이 좋고 집중하고 싶다.
그녀와 디자인 토크를 진행하면서 독립 디자이너의 성취감과 고단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그녀도 지금의 브랜드로 자리잡기까지에는 수 많은 도전과 선택, 그리고 좌절이 있었으리라. 이 시대 디자이너가 자기만의 아이코닉한 이미지를 얻기까지는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런 면에서 Vibeka는 꽤나 조심스럽고 진중한 성향을 가진 디자이너였다. 동시에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 움직임엔 분명 확신과 믿음의 태도가 엿보였다. 같은 디자이너로서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냉정한 현실을 버텨냄과 동시에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잃지않고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것은 이 시대 독립 디자이너, 혹은 브랜드로서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리라. 물론 북유럽과 우리의 문화는 확연히 다르기에 서로 다른 모습으로 그 과정들을 마주하겠지만 결국 디자이너로서 고수해야만 하는 것은 방향과 확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아가면 된다.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정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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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조상우
현재 북유럽 스웨덴에서 산업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글을 기고하는 저널리스트로, 사진을 기록하는 포토그래퍼로, 그림 그리는 일러스트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북유럽으로 향한 한국인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담은 책, <디자인 천국에 간 디자이너 / 시공사>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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