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누워서 휴대폰으로 쓰잘데기없는 카페글이나 뉴스기사를 읽다가 줄곧 머릿속에 맴도는 감각에 대해 적어보려고 브런치를 열었다. 여름 막바지에 쓴 글 이후로도 더위가 한동안 이어졌었다. 그러다가 한순간 추워지며 짧은 가을이 찾아왔다.
연휴동안 별로 한건 없지만 아이들의 옷을 정리했다. 세박스 분량의 버릴 옷이 나왔다. 한번도 입지 못한 옷들도 수두룩하다. 삶에 너무 낭비가 많고 체계가 없어, 라고 잠시 생각했다. 어딘가 새로운 곳으로 간다면, 전부 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글을 쓰지 않으니 글을 쓰는 감각이 급속도로 퇴화되고 있음을 느낀다. 하다못해 카페에 올리는 일상 글 조차도 예전처럼 쓸수가 없었다. 불꽃축제 다녀온 후기를 올리려고 끄적였는데, 아무리봐도 초딩이 적을법한 한심한 수준이라서 결국 임시저장만 했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현학적인 단어에 매료되곤했던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것인지. 남들이 찬사를 보낼만한 글과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말들을 엮어내려하던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글을 쓰지 않고 아무 생각이 없이 사니까 오히려 좀 행복해진 거 같기도 하다. 한때 나는 너무 심각했고 쓸데없이 생각이 많았다.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들에 대해 끙끙거리며 글을 써댔고 그 고민글을 곱씹으며 문제를 심화시켰다. 많이 썼었다. 그렇게 매일 쌓아올린 글들을 보면 우울했다. 우울감과 회의감같은 것들이 내가 쓰는 글의 원천이었다. 그래서 글을 쓰다보면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둘째를 낳고나서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육아의 순간들로 인해 고민을 하거나 글을 쓸 겨를이 없었고, 쓰고싶다는 마음도 사라졌다. 단순하고 물렁해져서 아이와 보내는 순간에 몰입하거나. 해야할 일들을 재빠르게 처리하는데에 온 체력을 소진하고선 쉬는 시간에 또다른 '생산'을 해낼 수가 없었다. 생산적인 삶을 살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항상 성장하고있다는 느낌을 받아야만했던 20대, 30대의 나는 그렇게 멈춰섰다. 소비할 것들은 넘쳐났고, 본연의 자신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부재한 채 바깥의 소비에 집중하는 삶은... 행복한 편이었다.
가끔 기시감이 들긴 한다. 도대체 내가 뭘하고 있는거지.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인데 왜 아무것도 쓰고싶지 않은거지. 회사에서 일이 많지 않을때 특히 그런 자괴감이 많이 든다. 줄곧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개념없이 살고있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그런 삶이 행복한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 의미있었던 많은 것들 ㅡ 내가 쓰는 글, 새파랗게 날선 감각들, 어떤 선명한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었던 매력적인 단어들. 그런 것들이 이제는 의미없게 느껴진다. 좋아하던 책들도, 팬이었던 작가의 말들도 이제는 별 것 아니고 시시해 보인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예전에는 스스로의 이런 상태를 한심하게 여기면서 다시 시작하고 새롭게 도전하려고 노력했는데. 지금은... 뭣이 중한가 싶다. 특별히 더 잘하고 싶은 것도, 더 되고싶은 것도 없는 지금이 좋으면서도 너무 맹맹하고 투박해진 일상이 한심하다. `나는 제대로 걸어가고 있는걸까'라고 적었다가 ㅡ 그럼 제대로 걸어가고있지, 이 곳이 아니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렇게 회의감을 눌러없애버리는 무시무시한 40대 일상의 내가 있다. 노 프러블럼. 문제가 없는 삶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데? 그래도 결론짓고싶어하지않는 자아가 아직은 남아서 물음표를 꾹꾹 쳐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