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 육지에 있는 터라 피치 못하게 주중에는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다. 주중에 가족들이 몹시 보고 싶지만 성장하며 그들의 삶을 사는 가족들이 나 한 명을 위해 모두 살고 싶은 제주를 떠나 육지에 살 이유는 없다. 그렇기에 모두가 합의된 상태로 주중엔 각자의 임지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여건이 좋아져 지금은 매주말마다 제주에 간다. 표를 조금이라도 싸게 사기 위해 한 달 치를 미리 예매해 둔다. 네이버 검색으로 가장 싼 비행기표를 찾고 해당 항공사 어플로 예약하는 방식이지만 사실 가격이 거기서 거기인지라 제주항공을 주로 이용한다. 제주도민 할인도 있고 제주항공만 몇 년째 이용했더니 나는 골드회원이라 우선탑승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제주항공의 주홍빛이 우리 집 앞마당 귤나무에 종종 열리는 귤을 닮아 마음에 쏙 든다.
주말마다 제주에 가니 금요일은 아침부터 설렌다. 가족들을 볼 생각에, 야식을 함께 나눌 생각에 종일 업무가 바빠도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나의 이런 사정을 아는 모든 동료들은 금요일마다 날 보며 하는 인사가 이렇다. "이번주에도 제주 가?"
나는 어느 순간 제주 아빠로 유명해져 있었으며, 심지어 제주로 내려간 경험담을 쓴 책 "육아휴직 쓰고 제주로 왔습니다"의 작가이기도 하니 나를 볼 때면 모두가 제주를 떠올린다. 덕분에 "올여름엔 제주 한 번 가야 하는데"라는 말도 정말 많이 듣는다. 그럴 때면 상세하게 언제 예매하는 게 좋은지, 제주 여행은 어떻게 계획해야 좋은지 나만의 노하루를 열심히 떠벌린다. 이보다 더 좋은 아이스 브레이킹이 없다.
제주에 가는 기분 좋은 여정은 사실 쉽지만은 않다. 평택역에서 서울역까지(그 시간에는 용산역까지 밖에 없어서 용산역에서 서울역까진 지하철을 탄다.)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서 공항까지 공항철도로 갈아탄다. 서울역 1호선에서 공항철도까지는 어찌나 먼지 이럴 거면 왜 서울역이라고 이름 지었나 싶다만 열심히 들뜬 마음으로 걷고 걸어 공항철도에 몸을 실으면 요즘은 날이 더워 땀으로 흠뻑 젖는다. 게다가 매주마다 아이들 간식이며, 선물, 책가지 등을 가방에 잔뜩 넣는 터라 가방도 무척이나 무겁다. 이 가방이 나의 출근 가방이기도 한데 가방을 볼 때마다 이렇게나 큰 가방을 들고 다니냐며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한다. 주중엔 주로 운동복이라든지, 신발, 속옷 같은 것이 들었지만 금요일엔 가득 가족 사랑과 행복을 담는 가방이다. 그래서 더욱 넉넉한 이 가방이 좋다. 여하튼 그렇게 무거운 가방 메고 김포공항역에 도착하면 또 한참을 걸어 공항으로 간다. 공항에 도착하면 거의 녹초가 되어버린다. 만보기는 벌써 만보를 넘은 지 한참이다. 하지만 역시나 가족들 볼 생각에 힘이 나서 어깨는 무겁지만 가벼운 발걸음으로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고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한동안은 너무나 자주 지연이 되어 불편을 겪었다. 요즘 제주 가는 비행기 편을 해외로 돌려 제주행이 많이 줄였다고 한다. 그 덕인지 요즘엔 지연이 거의 없다. 노하우가 생겨 밤 비행은 어차피 창문으로 보이는 것이 많이 없어 창가 쪽을 선택하기보다는 최대한 앞쪽을 선택한다. 그래야 내리자마자 집으로 가는 광역버스 시간을 얼추 맞출 수 있다. 즐거운 비행이 끝나면 마음이 조급하다. 버스 놓질 새라 부지런히 뛰어 빨간색 121번 버스를 보면 집에 다 왔구나 싶다. 제주도민답게 관광객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공항에 보이는 포토존 같은 곳은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지나간다. 그래도 그 앞에서 사진 찍는 여행객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가끔은 엄마와 아내가 날 데리러 공항까지 오는 수고를 감내해 준다. 그럴 때면 50분 정도 운전해서 돌아가야 하는 길이 피곤할 법도 한데 마음이 충만해서인지 즐겁게 운전하여 집으로 들어간다.
우리 마을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면 기지개를 켜며 크게 숨을 쉰다. 콧구멍 가득히 들어오는 제주의 공기는 확실히 육지의 그것과 다르다. 공기에 맛이 느껴진다고 하면 거짓말처럼 보일까? 달콤하면서도 시원 쌉싸름한 맛이 콧속 가득 느껴진다. 상쾌함이 온몸에 퍼지면 피로가 싹 풀린다. 여독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눈 녹든 사라진다. 금요일 밤 아이들 역시 모두가 신나서 밤 9시가 훌쩍 넘은 시간임에도 그 누구 하나 집에 들어가지 않고 너른 마당에서 어울리며 놀고 있다. 덕분에 온 동네 아이들로부터 인사를 받는다. 반갑게 맞아주는 가족과 이웃이 있는 제주로의 여정이 즐겁게 끝이 난다. 배가 몹시 고픈 상태로 집에 들어가면 엄마의 손맛이 담뿍 담긴 맛있는 음식이 평소 체중조절한다고 잘 먹지 않는 내 식욕을 미친 듯이 자극한다. 결국 참지 못하고 입안 가득 집어넣는다. 오감으로 행복을 느낀다.
제주에 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다. 우리의 꿈이 있고, 성장이 있다. 무엇보다 이곳은 사랑이 가득하다. 그렇게 나는 매주 제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