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은 속도의 문제가 아닌 시선의 문제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한다. 사랑도 타이밍이고, 결혼도 타이밍이고, 주식도 타이밍이며, 심지어 완전범죄도 타이밍이다. 물론 완전범죄를 위한 타이밍은 개인을 파국으로 이끄는 좋지 못한 기회겠지만, 어쨌든 타이밍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타이밍을 잘 잡으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예전에 강의를 갔을 때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몇 몇 학생들이 비슷한 대답을 말한다.
속도가 가장 중요하죠!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쉽게 간과하는 사실이 하나가 있다. 속도가 아무리 빠르고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잡아야 할 타이밍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그것들은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인생에는 수많은 기회가 다가온다. 어떤 이들은 그러한 기회를 잡아내고, 어떠한 사람들은 같은 상황 속에서도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기회를 놓치기도 하며, 남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는데도 오히려 뒤늦게 온 사람에게 그 기회를 양보해야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우리 사회는 타이밍(기회)을 잡는 것이 단순히 속도의 문제라고 가르치거나, 눈치를 잘 보는 것이라고 은연중에 가르쳐왔다. 타이밍을 빨리 잡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타이밍을 알아볼 수 있는 시선과 안목인데도 말이다.
겨울 이탈리아 피렌체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겨울이라기보다는, 완연한 가을날씨에 약간의 우기가 섞여있는 날씨다. 언제 어디서 비가 내릴지 모르기 때문에, 겨울 이탈리아 여행은 쉽지 않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을 즐기는 여행자들에게는 더없이 다양한 모습을 누릴 수 있어 오히려 장점이기도 하다.
아침 일찍 민박스탭 일을 마치고 오래간만에 여유를 누리러 시내로 나왔다. 민박스탭으로서 하루의 일이 끝나면, 늘 나는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손님이 오실지 모르는 특성 때문에, 자유롭게 다니긴 어려웠다. 가령, 그날 구름이 너무나도 역동적이라,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일몰을 찍고 싶어도, 손님이 오셔서 담지 못할 때도 많았다. 오늘은 날씨가 이럴거 같아서, 높은 전망대에 올라가고 싶어도 늘 손님에게 발이 묶여 여유롭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운이 좋게도, 간만에, 오전 손님만 받으면, 저녁 10시까지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날이 왔다. 즉 오늘은 담고 싶은 만큼 마음껏 사진을 담을 수 있는 날이다.
변화무쌍한 겨울 피렌체의 날씨 덕분에, 그 날도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가 그쳤다가, 구름이 하나도 없다가 갑자기 많아졌다를 반복했다. 구름의 이동이 매우 빨랐고, 그 날 따라 베끼오 강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날씨의 변화를 보며, 머릿속으로 갑자기 담고 싶은 그림이 그려졌다. 오늘이 아니면, 또 이런 여유로운 날을 못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높은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면 피렌체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피렌체에서 가장 높은 곳은 두오모 성당 꼭대기다. 유럽의 도시들은 옛부터 중심에 있는 성당보다 다른 건물들을 높게 지을 수 없었는데, 지금도 어느 정도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 어쨋든 내가 담고 싶은 장면을 담기 위해서는 두오모로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피렌체에 오랜시간을 있으면서, 두오모를 오르기 쉽지 않았다.
첫 번째, 이미 3번 이상 올라가본 곳이었다. 풍경 좋은 것은 당연히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올라가지 않은 건, 두 번째, 가난한 여행자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는 입장료 때문이었고, 세 번째,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난이도 높은 계단 때문이다.
위의 이유를 보면, 굳이 또 두오모를 올라간다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합리적이지 못하다. 가뜩이나 돈이 없는데 돈을 쓰고 싶지 않았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게 등산, 그 중 계단으로 올라가는걸 제일 극혐한다. 어릴 때부터 특별한 동기부여가 있는게 아니면, 등산을 하는 걸 제일 싫어했다.
하지만, 그 날 나는 내 머릿속으로 상상되는 그 장면을 꼭 담고 싶었다. 이걸 담으려면, 두오모 밖에 답이 없었다. 시계탑이 조금 더 쌌지만, 거기는 공간도 좁고 무엇보다도 난간이 있어서 사진을 찍는데 방해가 됐다.
결국 나는 두오모를 올라갔고, 2시간 이상을 기다린 끝에, 내가 기다리던 순간을 담았으니, 그것이 바로 위에 있는 저 사진이다.
내가 저 장면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속도이기 전에, 내가 담고 싶었던 장면이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담고 싶은 장면이 없었다면, 나에게는 손해 밖에 안되는 두오모를 굳이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당시 내게는 합리적이지 않았던 선택들조차, 합리적이고 적절한 타이밍으로 만든 것은, 내 머릿속에 상상되는 그 장면이었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가도,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길과 무관하다면, 그저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물론 우리 인생에 버릴 것은 하나도 없기에, 그 모든 것들이 내게 유익하게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기회조차도, 목적없이 허무하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았던 스스로의 삶을 반성하는 이들에게만, 하늘이 주는 반전의 기회일 뿐이다.
콘텐츠의 시대다. 자신의 이야기가 정보가 되고 돈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콘텐츠의 기본은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글쓰기 학원을 다니고, 웅변 학원을 다니기도 한다. 유튜브나 블로그로 크게 돈을 버는 법을 배우기 위해 클래스를 수강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우리가 글을 잘 쓰지 못하는 건, 말을 잘 하지 못하는 건, 기술의 문제이기 이전에,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거나, 하고 싶은 말이 없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이 없는데, 백날 기술을 배운다고 콘텐츠를 잘 만들 수 있을까?
콘텐츠를 빨리 만드는 것보다,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타이밍보다 중요한 시대이다. 좋은 콘텐츠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힘이 있어, 속도에 크게 집착할 필요가 없다. 마치 서점에서 오랜시간 볼 수 있는 스테디셀러처럼, 오랜시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타이밍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다. 하지만, 속도와 전략을 이야기 하기 이전에,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훈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어떨 때 가슴이 뛰는가. 나는 어떨 때 행복함을 느끼는가.
좋은 기회, 좋은 타이밍은 결코 속도가 아닌, 우리가 지금 느끼고 있는 도전과 열정, 실패와 좌절 속에서 스스로를 들여다볼 때 비로소 볼 수 있다고 믿는다.
오로지 막연한 타이밍만을 생각하며,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떠한 타이밍도 제대로 잡지 못한채, 지금과 같은 사진작가의 삶을 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사진 / 글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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