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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작가 Oct 12. 2020

#13. 상처가 아름다운 흔적이 되려면

누군가는 상처를 흉터로 남기지만 누군가는 상처를 흔적으로 남긴다.


  사람이라면 살면서 누구나 상처를 받는다. 가난할수록 위험하고,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오해가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상처의 모양이 다를 뿐, 아무리 금수저로 태어나도,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수많은 방패가 있어도, 설사 눈과 귀를 막고 살아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상처이다. 소위 깜량이 안되면, 상처의 크기와 상관없이 누구나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작은 상처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작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과한 호들갑으로 상처를 대하기도 한다. 상처를 많이 받아보지 않았거나, 상처를 받을 때마다 도망만 다녔던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수많은 상처 속에서도,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알아,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많은 상처의 위험속에서도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기도 한다. 이미 상처를 많이 받아보았거나, 상처를 받을 때마다 그것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극복한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위험(Risk)은 존재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위험의 크기가, 실제 느끼는 위험의 크기와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세계역사를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아시다시피,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게 살아온 민족은 2000년간 나라 없이 떠돌았던 이스라엘 민족이었다. 2차대전에는 600만이 넘는 자기 민족이 학살을 당하기까지 하지만, 지금은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민족이 되었다. 위기는 성장을 방해하는 주체가 아닌, 끊임없이 관리하고 극복해야하는 대상일 뿐이다.


  9개월만에 터키에서 상봉한 엄마와 함께 그리스 여행을 갔다. 그 중 메테오라가 나에게 참 인상적인 곳이었다. 차를 타고 산 중턱 정도로 올라가면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메테오라의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울긋불긋한 나뭇잎과 빨간 지붕의 하얀 벽의 집들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져있는 수도원이 정말 그렇게 조화롭지 않을 수 없다.

  매우 아름답죠? 하지만, 여기에는 슬픈 사연이 있어요.


  가이드겸 운전을 해주었던 기사아저씨가 말했다. 


  지금이야 아름답지만, 옛날에는 수많은 피가 흘렀던 곳이예요.
절벽위에 수도원 보이죠? 옛날에 저기에 어떻게 수도원을 지었겠어요.

  

  알고보니, 수도원은 그리스 정교의 수도원이었다. 당시, 구교였던 카톨릭이 종교개혁으로 일어난 개신교를 핍박하던 시기였다. 그리스 정교회를 믿던 신부들과 성도들은 구교의 핍박을 피해, 그들이 쫓아오지 못할 곳으로 도망을 갔다. 그렇게 세운 수도원이 사진 속 절벽에 세워진 수도원들이다.


  지금이야 수도원을 들어가는 길이 생겼지만, 옛날에는 정말 말그대로 고립된 나홀로 기암바위였다. 저 위에 사람이 있어야 자재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자재는 또 어떻게 옮겼을까. 실제로 건축과정 중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믿는 종교신념을 지키기 위한 절실함이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했다.


정말 많은 피가 흘렀던 곳이었죠


  지금은 참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땅인데, 역설적으로 참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땅이었다. 그러한 안타까운 사연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지역이 되었다. 그 옛날 상처를 잊을만큼.




  누군가는 상처를 흉터로 남긴다. 같은 상처인데도 불구하고, 잘 해결하지 못한 상처들은 마음의 쓴뿌리로 그들 마음 속에 자리 잡는다.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놓아둔 쓴 뿌리는 결국 언제 어떻게 발아할지 모르는 암세포가 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언행에 그 쓴뿌리가 지속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결국 해결하지 못한 쓴뿌리는 돌이키기 힘든 자신의 얼굴이 된다.


  누군가는 상처를 흔적으로 남긴다. 같은 상처인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 상처를 대하는 법을 잘 알아서, 마음 속에 썩은 뿌리로 자리잡을 틈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상처에서 영감을 받아, 그 때까지는 몰랐던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상처 때문에 아무 일도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잘 들여다보면 상처 그 자체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사람은 반드시 잠을 자야하는 것처럼, 상처 또한 사람이라면 꼭 겪어야 하는 과정일 뿐이다. 상처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는 결국 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늘 마음이 부정적인 곳으로 쏠린다면, 상처는 그 크기를 더해갈 것이다. 마음을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 쏟는다면, 상처는 생각보다 크기가 작을 것이고, 오히려 성장하기 위한 점핑보드가 될 수 있다.


  코로나19의 시대를 살고 있다. 기존의 위기였던, 전쟁과 금융위기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주고 있다. 하지만, 이 시간들을 어떻게 마주하고 대할 것인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누군가는 코로나19로 인해서, 더 부정적으로 살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이전보다 더 긍정적으로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비전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핑계가 아닌 방법을 찾으니까.


  그 옛날, 그리스 정교에 대한 종교적 신념이, 엄청난 핍박 속에서도 지금의 아름다운 메테오라를 만들어온 것처럼, 우리 마음 속에 분명한 비전과 실천이 결국 모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낸다고 믿는다.


  나 또한 수많은 위기를 마주하며, 무일푼 세계여행이라는 도전을 하게 됐다. 만일 내가 마주했던 위기속에서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현실에 함몰되어 있었다면, 지금 사진작가라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상처를 흉터로 만들지 말고, 상처를 흔적으로 만들어내는 삶을 살자. 뜻이 분명한 이들에게 위기는 분명 기회니까.


사진 / 글 이정현


#철학

#사진

#해외여행

#상처를대하는태도를돌아보기

#위기는기회의점핑보드일때가많다

#아무생각이없으면상처는흉터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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