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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함 Apr 20. 2020

자발적으로 포르노를 찍는 10대들

4월 20일 월요일 일기


고등학교 1학년, 판도라tv로 첫 포르노를 봤다. 음란물 규제가 명분으로만 존재할 때였다. 애니메이션을 찾다가 자연스레 영상이 포르노로 넘어갔다. 고작 3분짜리 영상이었지만, 아는 누나의 집에 놀러간다는 컨셉으로 제작된 그 포르노는 내게 '미지'를 소개해 주었다. 태어나서 접한 것 중 가장 자극적인 것이었다. 신기한 마음에 남동생을 불렀다. 10초 정도 영상을 같이 봤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느라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포르노와 불법촬영물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전문가가 촬영한 것과 다르게 조잡하게 찍은 영상이 여럿 보였다. spycam부터 glasscam까지, 소형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휴대폰으로 촬영한 것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그 영상들의 제목에는 어떤 제품으로 촬영했는지 소개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제목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빴다. 어떻게 이런게 포르노로 둔갑해서 유통될 수 있는 거지? 의문을 가지고 나서 몇 년 후, 언론에서 불법촬영물 논란을 크게 다루기 시작했다. 장자연 사건도 수면 위로 끌어 올려졌다. 대한민국에서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며칠 전에 친구의 추천으로 '핫 걸 원티드'를 봤다. 넷플릭스를 무료기간만 사용하고 연장하진 않을거라 말했더니, 이건 꼭 보라고 했다. 침대에서 뒹굴면서 본 다큐멘터리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너무 충격적이라 다큐멘터리 중반부터는 서서 봤다. 누워있자니 머리에 혈압이 몰려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낮에는 듀크 대학교 1학년, 밤에는 포르노 스타로 소개된 여자가 나왔다. 이후 듀크 대학은 가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포르노를 찍는 10대 여자애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들은 '지금의 상황과 부모님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포르노를 찍는 거라고 말했다(미국 공교육 어떻게 된거냐 물었더니, 친구가 미국 공교육 빻았다고 말했다. 사실인지 제보 받습니다...). 처음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포르노 스타가 된 듀크 대학교 1학년생과 학벌도 뭐도 없으면서 인기스타가 되길 바라는 여자들을 비교하는 이야기인가 싶었다. 듀크 대학교 1학년생은 토크쇼에 출연해 포르노 배우도 직업으로 인정 받아야 한다면서 자신의 행동에 타당성을 실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니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명문 대학교를 다니는 머리 좋은 백인 여자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잘 차려입고 근거를 들면서 논리적으로 말하니 꽤 타당성이 있게 들렸다. 무엇보다 본인이 시종일관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이미지는 무척이나 견고해서, 방청객들이 그녀의 발언 하나하나에 박수를 치는게 이해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본인들의 처지를 깨닫게 된 여자들에 의해 산산조각이 난다. '저 애도 우리와 같이 본인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거야'. 포르노를 찍기 위한 숙소에 머무는 여자 중 한 명이 한 말이다. 무엇이 이들의 눈과 귀를 막고 그릇된 판타지를 심어준 걸까? 포르노 스타를 꿈꾸는 여자들의 말과 상반되는 상황이 펼쳐진다. 10년이고 이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인터뷰 뒤에 여자들은 2~3번 촬영하면 포르노 배우로서 수명이 끝난다는 관계자의 인터뷰가 이어지고, 첫 포르노 촬영을 하러 가서 할아버지뻘인 남자 배우가 등장하자 첫 상대로 이런 배우를 생각하지 않았다며 실망하는 여자의 모습이 나온다. 그들이 포르노라는 판타지에 빠져 있음을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더군다나 포르노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이들은 자신이 성적으로 억압당한다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포르노를 찍는 것이니 '연기'로 여겨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영상 중에서 '포르노'라는 장르는 시청자 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배우들에게도 자극적인 경험을 준다. 더군다나 평범한 성관계가 아닌, 가학적인 부분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배우들은 아무리 '연기를 하는 거야'라고 말해도 그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일 뿐이다. 그 일이 본인에게 일어난 것임을 어떤 방식으로든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핫 걸 원티드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다큐였다. 지금까지 본 다큐 중에서 현시대에 가장 필요하고, 누구나 알아야 하는 진실을 밝혔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수많은 18~19세들이 포르노 스타를 꿈꾸며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만 믿고 비행기를 탄다고 한다. 자신은 다를 거라 생각하면서.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image&query=%ED%95%AB%20%EA%B1%B8%20%EC%9B%90%ED%8B%B0%EB%93%9C&nso=so%3Ar%2Ca%3Aall%2Cp%3Aall&sm=tab_nmr


핫 걸 원티드에 대한 내용은 네이버 이미지에 검색만 해도 자세히 볼 수 있다. 막아두지 않은 네이버에게 경의를 표한다. 내 몸은 내가 챙기는 시대라지만, 영상이 주는 판타지에 10대들이 상처받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지구 온난화보다 포르노를 자발적으로 찍으러 가는 10대가 수없이 많다는 것이 더 위험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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