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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함 Apr 28. 2020

동생이 2주마다 20인치 캐리어 가득 반찬을 챙겨간다

4월 27일 월요일 일기


나는 서울에 사는 29살 여자다. 글을 쓰면서 적당히 먹고 살 정도의 돈을 번다. 거주는 부모님과 함께하고 있다. 3살 터울인 남동생은 재학 중인 대학 앞에서 자취 중이다. 동생은 자취를 하면서 전입신고를 그리로 옮겼기 때문에, 우리집에 사는 사람은 부모님과 나로만 기재되어 있다. 동생은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2주에 한 번씩 집에 들러 20인치 캐리어에 반찬을 가득 담아간다. 그렇게 산 지 1년 반이 되었다.






지난주에 엄마와 싸웠다. 싸우면서 평소와 마찬가지의 싸움이려니 했다. 엄마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자리에서 간과한 것이 있었다. 2주에 한 번 집으로 돌아오는 동생의 존재였다. 이야기는 복잡해졌고, 다툼이 이어질수록 나만 억울해졌다.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사실 이 다툼은 동생으로부터 시작된 것이기도 했다. 싸움이 길어지자 동생이 나를 봐 온 시선을 알 수 있었다. 동생은 그런 발언(내가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고, 못나다고 생각하는 것을 드러내는 발언 등)을 서슴치않고 내뱉었다. 엄마는 동생을 제지하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 없는 아빠에게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했는데, 그 행동이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결국 나는 엄마가 현관문을 뚫고 골목이 떠나가라 외친 날카로운 비난의 목소리와 동생의 생각없는 발언에 큰 상처를 입었다. 가슴 한 가운데 쉽게 메꿀 수 없는 큰 구멍이 생겨버렸다.


앤드류 와이어스_크리스티나의 세계


그 전까지 우리가족은 평화롭게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다. 싸워도 돌아서면 잊고, 머리와 어깨를 붙이고 앉아 드라마를 보거나 간식을 먹었으니까. 엄마와 내가 그랬고, 아빠와 내가 그랬으며, 엄마와 아빠가 그랬다.


생각해보면 동생은 달랐다. 동생이 함께 살 때, 부모님과 동생의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나와의 싸움도 그랬다.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질 않으니 싸움이 성립하지 않았다. 동생은 매번 듣는 시늉만하고 허공에 손을 휘휘 저으며 '알았어, 알았어'라고 말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방 문을 잠구고 들어가 친구들과 전화를 하며 술약속을 잡거나 시시껄렁한 수다를 떨곤 했다.


동생은 행동은 우리가족 사이에 균열을 만들었다. 그러한 동생의 행동은 2주마다 반찬을 가지러 집에 오는 동생에게 20인치 캐리어 가득 반찬이 담긴 반찬통을 테트리스처럼 차곡차곡 쌓아 보내는 엄마의 행동의 의해 묵인되었다. 동생이 자취를 시작한 순간부터 엄마는 자신의 아들이 밖에서 밥 한 술 뜨기 어려울 줄 알았는지 밥까지 해서 보냈다.


한 사람이 20인치 캐리어에 반찬, 밥, 국을 가득해서 보낸다는 건 생각보다 엄청난 체력과 정신이 소모되는 일이다. 여행갈 때 너무나 작게 느껴졌던 20인치 캐리어는 끝도 없이 반찬통을 꾸역꾸역 삼켜댔고, 엄마는 그 양을 맞추기 위해 동생이 집에 오기 이틀 전부터 동네의 마트와 시장을 훑고 다니며 장을 봐왔다. 하루에 최대 16시간 동안 음식하는 엄마를 본 적도 있다.


그렇게 음식을 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아빠와 난 엄마를 말렸다. 음식을 하고나서 손가락과 어깨 관절이 아프다는 후유증도 있었지만, 엄마가 음식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동안 아빠와 나에게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이 퍼부어졌기 때문이다. 평소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던 것들이 눈에 거슬리는지 엄마가 점점 히스테릭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나는 엄마의 정신과 상담을 진지하게 고려하게 되었다.


그러다 지난주에 일이 터졌다. 엄마와 나는 크게 갈라섰다. 아빠는 우리 둘 사이를 눈치보느라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다. 그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동생은 20인치 캐리어에 반찬을 가득 담고 자취방으로 떠났다. 이후 동생에게서는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엄마와 나는 며칠 동안 서로의 눈치를 보다 3일째가 되던 날에 2시간 동안 울면서 속상함을 풀어냈다.


하지만 엄마의 짜증과 히스테릭한 고함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동생이 20인치 캐리어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멈추지 않는 한. 생활비를 아끼려는 명목에 그런다는 것을 안다. 나도 한 때 자취했던 사람으로서 한 푼이라도 절약하려 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격돌하는 가족간의 감정을 외면하는 건,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져버렸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아니, 일주일 안에 동생과 이 이야기를 하려 한다.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두 번 다시 20인치 캐리어를 사용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가족끼리 감정을 가라앉히고 이야기하는 법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동생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쉽게 외면해버릴지도 모른다. 이래서 가족이라는 관계가 세상의 어떤 인간관계보다 어렵다고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Editor by 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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