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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Sep 21. 2023

해외여행 보다 짜릿한 직장인 '막장' 휴식법

[직장인 OTT] 한심하게 취급했던 OTT가 건넨 통쾌한 대리만족


유난히 폭염과 폭 기승을 부 여름이 지났다. 9월 중순까지 30도 넘는 날이 이어졌는데, 이번 주에는 정상적인 가을 날씨가 찾아온 듯하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긴 후부터 극성수기에 여행을 가지 않다. 더위, 고속도로 마비, 비싼 숙소, 바가지 물가 등 괴롭고 불편한 것 투성이다. 즐겁자고 떠나는 여행인데 시작부터 피로감이 밀려 때문이다.


올여름 역시 '휴가철 피서객 1억명 이동한다...하루 차량 523만대씩'이라는 기사에 기겁해 8월 중순 이후에 휴가를 다녀왔다.


처음에는 코로나19에 밀려 엄두도 못 내던 해외(일본) 여행을 계획했다. 아이들 여권 만료를 뒤늦게 발견해 접었다. 어 눈높이를 조금 낮춰 제주도로 결정했다. 항공과 숙소를 예약하고 투어 일정도 짰다. 아내에게 일이 생겨 취소했다.


세 번째 계획을 세우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큰 비용과 시간을 들여 떠나는 여행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가는 아이들 방학을 위한 여행이자 가족이 즐거움을 나누는 자리지 부모의 의무감 해소 수단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이래저래 꼬인 올해는 아내의 제안대로 평창 계곡으로 짧 알뜰한 휴가를  다녀왔다.


서운함이 내어준 특별한 기회


올여름 아이들은 교회 수련회를 두 번이나 다녀왔다. 덕분에 해외여행, 제주 여행 취소에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아빠의 괜한 호들갑이라는 걸 깨달았다. '엄마, 아빠랑 같이 가는 게 중요하죠'라는 아들 말처럼 모두가 함께하는 데 의의가 있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니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주말에도 학원에 다니기 시작해 바빠졌다. '주말이라도 아이들과 함께 해야지' 서서히 무용지물이 되는 중이었다. 잠깐 서운함도 느꼈다. 하지만 나에게는 잠시 잊었던 일상을 즐길 기회였다.


특별한 시간이 생겼다.


남다른 시간 속으로 평소 눈길도 안 주던 OTT가 어느 순간 훅들어왔다. 최근 한 모임에서 OTT 문외한으로 극한 소외감을 느낀 후 드라마 몰아보기에 동참했다. 'OTT 볼 시간에 책이나 읽지'라던 비딱 레는 즐거움으로 돌변했다.


올해 처음으로 OTT를 만났다. 시리즈는 시간이 아까워 가끔 영화만 봤다. 모임 사건 이후인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리즈 시청에 돌입했다. 뒤늦게 열혈 시청자가 된 덕에 볼거리가 넘친다. 특히 기다릴 필요 없이 1편부터 결말까지 논스톱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최고다. 연차와 반차, 주말을 이용해 OTT와 함께 여유로운 휴식을 만끽하는 중이다.


막장에 빠 낡은 직장인의 '대리만족'

▲ 펜트하우스 주인공 천서진 막장 드라마의 최고봉 펜트하우스의 한 장면 ⓒSBS

떠들썩했지만, 외면했던 드라마를 최근에 시청했다. <SKY 캐슬>(2018), <부부의 세계>(2020), <펜트하우스>(2020)부터 올해 작인 <더 글로리>, <마당이 있는 집>, <셀러브리티>, <킹더랜드>, <마스크걸>, <행복배틀>, <악귀> 등등.


막장의 최고봉이라 평가받는 드라마이자, 시즌3까지 나온 <펜트하우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살인, 복수, 불륜, 사기, 폭력, 학폭 등 온갖 껄끄러운 소재를 끌어다 버무렸다. 사람들 감동도 맥락도 없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드라마를 왜 만들었냐고 욕하면서도 시청을 멈추지 않았다.


비슷한 심경으로 헛웃음을 흘리며 시즌3까지 완주했다. 이유는 등장인물의 대사가 하나같이 시원시원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물이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욕까지 난무한다. 재벌이어도 가난해도 악해도 착해도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감정 표출, 현실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다 장면이었다.


막장은
'인생을 갈 때까지 간 사람 또는
그러한 행위를 꾸며 주는 말'


한번쯤 경험하고도 싶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쉽지 않기에 드라마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십수 년 사회생활을 하면서 속마음 표현을 억압받아 온 직장인이 보기에 이만큼 시원한 광경이 또 있을까.


출생의 비밀이 밝혀질 듯 말 듯한 조마조마함이나 늘어지는 줄타기도 별로 없다. 기물 파손은 기본, 소리 지르고 싸우며 시종일관 입으로 독침을 날린다. 서로 물고 뜯으면서도 적당한 감정을 유지하고, 악을 쓰면서도 할 말을 조리 있게 풀어낸다. 가장 흥미롭고 놀라운 점서로 감정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 쿨한 모습이다.


가장 원초적인 인간 내면을 그대로 드러낸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현실 세계 인간들의 페르소나를 걷어낸다면 모두 드라마 <펜트하우스>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이들의 욕심과 욕망, 배신과 음모가 딴 세상일처럼 낯설지만은 않았다.


권선징악의 당연한 교훈, 현실에 사는 사람들 대신  말을 해주는 대리만족, 시원함과 통쾌함까지 선사한 드라마였다. 짧은 평창 휴가와 막장 드라마로 채운 휴가 덕분에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을 알뜰하고 쿨하게 날려 보냈다.


효율적 시간 관리 OTT 휴식법

▲ 펜트하우스 주인공 천서진 막장 드라마의 최고봉 펜트하우스의 한 장면 ⓒPixabay

OTT에 빠졌어도 방에 틀어박혀 TV만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기에 기준이 있다. 평일에는 뇌다 지친 퇴근길(출근길에는 독서를 합니다), 주말에는 집에 아무도 없을 때나 늦은 밤, 모두 잠든 새벽과 아침나절에 OTT를 시청한다.


아이들 주말 밤에 모여 OTT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최근에 아들과 영화 <범죄도시> 1, 2봤다. 딸아이와는 드라마 <악귀>를 감상했다. 치킨과 피자, 팝콘을 집어 먹으며 아이들과 주말 밤을 달랜다. 가족이 단합하는 OTT 휴식 법이다.  


휴가에 대한 의무, 휴식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다. 모두가 떠나는 기간, 아이들 학원 방학에 맞춰 떠나는 휴가교통난, 숙박난, 요금난이 늘 함께한다. 휴가에 담긴 休(쉴 휴)가 무색한 의무적 여행이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이제 좀 쉬어야지'라는 아이러니는 직장인에게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휴가와 휴식은 직장인이 다시 달리기 위한 재충전 시간이다. 경쟁하듯 천편일률적 휴가를 떠날 필요가 있을까. 몸과 마음이 즐겁고 편해야 진정한 휴가이자 휴식이 아닐까.


올해는 OTT를 즐기며 가상의 세계에서 나만의 작은 휴식을 즐기고 있다. 드라마에 담긴 나만의 특별한 메시지를 찾는 것도 재미 요소다. 덕분에 <직장인 OTT>도 연재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만에 맞이한 색다르고 마음 넉넉한 직장인 아빠의 휴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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