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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락 한방현숙 Dec 15. 2024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국어 수업

수업 공백이나 안전사고 등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

 오늘(12/9), 2025학년도 후기고 평준화지역 일반고 원서접수를 마지막으로 중3 고교입학 절차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다. 우리 반 30명은 각각 특성화고, 일반고, 특목고 등에 모두 진학할 예정이다. 10월 말에 마지막 고사를 치르고, 11월 내내 고교 입학 전형을 위한 성적처리와 상담이 이어졌으니 중학교 3학년 교실은 다른 학년과 다르게 학사 일정이 진행되고 있다.

 졸업을 앞둔 중3, 고3 교실은 다른 듯 같은 모습이 많을 것이다. 수능 후 고3 교실, 분주하고 혼란스러운, 또는 나태하고 늘어진 모습이 간혹 뉴스거리로 걱정을 사기도 하지만 각 교과나 담임교사는 이 시기 수업 공백이나 안전사고 등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고 있다. 자기개발시기 교육과정 세부 계획 등을 꼼꼼하게 세워 다양한 학교행사를 마련하고, 그동안 시간에 쫓겨 여유롭지 못했던 학습 내용을 보충하며 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국어 수업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국어 수업'을 계획하여 행하는데 그 수업은 익히 알고 있던 단어 '줄행랑치다'에서 출발했다. 우연히 연수를 듣다 알게 된 내용, 행랑채와 줄행랑의 관계! 수업 중 재미 삼아 이야기하다 보니 옛 한옥 구조,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의 설명이 필요했다.


안채: 한집에서 안팎의 두 채 이상으로 된 집에서 안에 있는 채, 주로 여성이 기거하는 곳
사랑채: 한옥에서 집의 안채와 떨어져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는 용도로 쓰는 집채
행랑채: 보통 대문을 중심으로 마구간, 하인들이 기거하는 방, 광 등으로 되어 있는 행랑방이 시설된 집
-다음백과-
'행랑채'에서 '줄행랑치다'를 배운다.

 안채, 사랑채뿐만 아니라 하인이 기거하는 행랑채도 집안의 흥망성쇠에 따라 규모가 달랐을 것이다. 집안이 번성해 행랑채가 줄을 이을 정도로 늘어나면 '줄행랑'이라 불렀다. 그러다 가문이 쇠하거나 풍비박산으로 가세가 기울게 되면 줄행랑의 길이가 짧아지거나 아예 하인들이 도망가는 일이 발생하는데, 여기서 '줄행랑치다(=어떤 대상을 피하여 도망하가)'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은 우리가 배운 윤흥길의 소설을 떠올린다. '기억 속의 들꽃'에는 피란을 즐거운 소풍쯤으로 여기는,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소년이 화자로 등장한다. 우여곡절 끝에 떠난 피란길에서 만난 인민군의 행렬을 보고 놀란 소년이 보조석이 딸린 오토바이를 '몸체 옆구리에 행랑채까지 딸린' 괴상한 모양이라고 표현한다.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행랑채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기에 아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사랑채'에서 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만난다.

 안채에 있는 우리 엄마와 사랑채 손님이 사랑을 하면 어찌 될까? 아이들 눈이 동그래진다. 주요섭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 대한 공부가 시작된 계기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삶은 달걀, 유복녀, 과부, 내외하다 등등의 말이 지닌 뜻과 상징적 의미를 찾아본다. 엄마와 아저씨의 사랑을 순수하게 그리려면 이 사랑을 순수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했기에 이 소설의 화자는 6살, 유치원생 옥희임을 이야기한다.

  소설의 시점에 대한 공부가 소홀하여 혹시라도 이 소설의 시점을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고 말한다면 꽤 이상한 내용이 될 수 있음을 밝히니 아이들의 실소가 터진다. 사랑 아저씨가 엄마랑 사랑을 해야지, 화자인 옥희, 나와 사랑한다면 거의 범죄에 가깝지 않을까? 이 소설이 '1인칭 관찰자 시점'임을 다시 강조한다.

 2009년생인 아이들은 이들이 왜 행복할 수 없는지, 아저씨는 왜 떠나야만 하는지 도무지 엄마와 사랑 손님의 내적 갈등을 이해하기 어렵다. 여자가 재혼을 하면 손가락질을 받던 그 사회문화적 배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봉건적 윤리관에 순응한 엄마와 아저씨의 모습을 통해 이번에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유형에 대해서 공부한다. 전형적 인물과 개성적 인물, 입체적 인물과 평면적 인물, 주동 인물과 반동 인물까지 되뇌는 아이들이 기특하다.


'소설'을 읽기에서 듣기로!

 마침 EBS 라디오에 중학교 교과서 소설을 성우가 실감 나게 읽어주는 프로그램 있어 이번에는 읽는 것이 아닌 듣는 것으로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공부해 보기로 했다. 엄마와 아저씨, 옥희의 성대모사를 어쩜 그리 실감 나게 잘 표현하는지 영화를 보는 듯, 소설을 읽는 듯 귀에 쏙쏙 들어왔다.

 게다가 조선시대 기생 홍랑이 최경창에게 이별 후 지어 보낸 시조를 소개하며, 시조의 '뫼버들'과 소설의 '삶은 달걀'의 상징적 의미까지 연결 지어 그 중요성을 알려주니 수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참에 정형시인 시조의 기본 틀과 유의점을 밝히며 우리 문학을 대표하는 시조에 대한 공부도 더불어 이어갔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에게
자시는 창가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이 나거든 날인가 여기소서
풍금을 본 적 없는 아이들과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을 감상한다.

 소설 속 어머니가 타던 풍금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아이들이 웅성거린다. 놀랍게도 '풍금'에 대해 모르는 눈치다. 피아노와 같은 건반 악기지만 그 음색의 다름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90년대까지 국민학교 교실마다 한 대씩 있던 그 풍금을 아이들은 본 적도 없었던 것이다.

 그때 교과서 진도에 바빠 지나쳤던 학습활동이 떠올랐다. 사회 문화적 배경을 중심으로 시나리오 이해하기 활동에 이 영화의 대본이 짤막하게 소개되었기에 '풍금'에 꼬리를 물어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을 보기로 했다.


 1960년대 강원도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진 순수한 첫사랑의 뭉클함이 가득한 영화. 벌써 50대가 훌쩍 넘은 배우들의 푸릇한 20대를 마주하는 설렘은 나만의 몫이었다. 아이들은 그 유명한 이병헌, 전도연, 이미연 배우를 잘 모른다. 교과서에 나온 대본을 간단히 살펴보며 대본에 대한 배경지식을 확인한다.

 영화, 연극을 상영, 상연하기 위해 필요한 대본의 종류, 시나리오와 희곡의 공통점과 차이점, 신(Scene)과 막과 장, 행동과 대사의 문학에 대해 공부한다. 러브신, 키스신 이야기에 아이들의 반응이 뜨겁다. 대본에서 #22를 찾으며 이 글이 희곡이 아니라 시나리오임을 큰소리로 말한다.

 2009년생인 아이들은 60년대 교실의 풍경이 낯설기만 하다. 장난과 재미로 이어지는 행동들이 지금은 실수나 범죄까지 될 수 있음을 파악한다. 17살 홍연이가 왜 아직까지 5학년인지, 젖먹이 동생을 업고 등교할 수밖에 없는지, 소풍에 산 닭을 가방 속에 넣어가는지 궁금한 게 정말 많다. 양초로 마룻바닥 광내기, 주판으로 계산하기, 채변 봉투 걷기, 손톱 검사하기까지 나도 어느새 그동안 잊었던 옛 추억에 젖는다.

 영화에는 각 지역방언이 잔치를 이룬다. 홍연엄마의 함경도, 하숙집 주인의 경상도, 학교 선생님의 전라도 사투리 등 다양한 방언들이 등장해 아이들과 지역방언 단원을 공부할 때도 좋은 자료가 될 것 같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LP는  '삶은 달걀'이나 '묏버들'처럼 서로의 진심을 전달하는 데 중요한 소재이다. 산골 소녀 홍연에게는 낯선 신문물, LP! 수하와 은희가 나누는 대화 속, LP라는 말을 듣고도 엘프? 라며 도통 알아차릴 수 없는 그 시대 향수, LP! 이 엘피레코드판 Vinly로 수하는 양은희샘에게 호감을 전하고, 홍연은 어렵게 구한 Vinly로 수하를 위로하고 애정하는 마음을 전달한다. 풋풋하고 순수한 이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까지 따스해진다.

 장필순, 한동준이 부른 이 영화의 OST는 추운 겨울을 녹일 정도로 아늑하게 들린다. 현란한 춤 동작이 없어도 아름다운 가사에 젖어드는 아이들 표정이 참 곱다.


영화의 원작 소설에서 '수난이대'로 이어진다.

 이 영화는 하근찬의 작품 각색하여 만든 것으로 원작 소설 제목은 '여제자'이다. 영화의 화자가 홍연이라면, 소설은 교사, 수하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다음에 공부할 것이 하근찬의 소설이기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국어 수업은 계속 이어진다. 강제징병으로 끌려가 팔을 잃은 아버지 만도의 수난을, 6.25 전쟁에 참전해 다리를 잃은 아들 진수의 수난을 아이들은 어찌 생각할까?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때 태어난 우리 반 아이들은 대를 이어 부자가 겪은 민족적 아픔과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외나무다리를 힘겹게 건너는 부자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하근찬의 소설 '수난이대'로 이어지며 나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국어 수업은 현재 진행 중이다.

여유로운 시기, 자율적이어서 오히려 풍성한 느낌의 국어 수업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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