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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Jun 17. 2016

경험이 부족한 나에게

Hamburg erasmus 여행기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있다. 만약 그게 정말 팔자라면, 내 팔자는 걱정 사주였나 보다.

어릴 때야 그렇다고 쳐도 밤만 되면 내일 점심 걱정부터 전쟁 걱정, 테러 걱정, 환경오염 걱정, 뭐가 이렇게 할 걱정이 많은지.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은 생각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그래도 만약에..'라며 상상을 하다 보면 어느새 잠자리에 누운 지 30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체로 겁이 참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할 때도 그렇다.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있는 독일에서는 자전거 high-way라고 불릴 정도로 자전거 길이 참 시원하게 도로와 떨어져서 만들어져 있다. 너무 빨리 달리다가 넘어지거나 십자로에서 부딪힐 까 무서워 적당한 속도로 달려가는 나와는 다르게, 친구들은 웬만한 차 속도만큼 달려 나간다.


 겁이 없는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두려워했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나는 왜 벌레를, 엘리베이터를, 비행기를 또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을 두려워했었을까?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이 겁쟁아!'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연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사연이 없는 나에게는 겁쟁이라는 말이 가끔은 타당할 것 같다.


 학교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는 erasmus 친구들끼리 같이 Hamburg에 3박 4일간 여행을 다녀왔다. 4인실을 이용하고 교통까지 포함해서 80유로라는 가격의 메리트는 무시할 수 없었다. 함부르크는 궁금하지 않았지만, 저렴한 가격에 내가 모르는 도시를 가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순 없었기에 떠난 여행이었다. 독일 안에서만 거의 8시간 정도를 달려간 함부르크는 바이에른과는 참 다른 느낌을 보여주었다. 소시지 가게가 그득그득하고 물을 보기 힘든 바이에른에서 본 함부르크는 바다내음이 풍겼고, 곳곳에는 생선 샌드위치를 팔고 있었다.


 3일 간 같이 방을 쓰는 사람은 우리가 자유롭게 정하는 것이었는데, 한국 친구 하정이와 브라질 친구 Fernanda, 교환학생은 아니지만 우리의 꼬임에 넘어온 Maria와 함께 방을 쓰게 되었다.


 첫날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시작한 pub crawl, pub crawl은 1시간 정도마다 술집을 옮겨 다니며 노는 술집/클럽 투어 같은 것이다. 독일에서 한국과 다른 술 문화에 놀란 것 중 하나는, 여기는 안주를 먹는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안주는 보통 시키지 않냐고 물으면, 이미 밥을 먹었는 데 뭘 또 먹냐는 반응이다. 한국에서 술을 먹을 때면 사실 술을 먹는 다기보다는 맛있는 안주를 먹고, 안주에 곁들여서 살짝살짝 씩 먹는 것이 술이었다. 보통 1차, 2차 다니면서도 꼭 삼겹살, 치킨, 해물탕과 같이 밥이 될 만한 안주들을 곁들였었다. 처음으로 pub crawl을 했을 때 소시지나 치즈 같은 안주들을 많이 먹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저녁도 먹지 않고 갔었다. 그런데.. 안주 먹을 시간도 없이 샷과 맥주들을 다 같이 마시고는 1시간 만에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안주도 없이 술을 먹고는 독하다는 생각에 물을 주문하니까 친구들은 물을 대체 왜 시키냐고 한다. (독일 친구들은 샷을 먹고 난 후에 독하면 물보다 가격이 저렴한 맥주를 주문해서 마시곤 한다.)


pub crawl 시작 전에 데킬라와 과일 맛이 나는 가루를 먹고 시작한다.(아무래도 pub crawl은 취하는 것이 목적인 것 같다.)


 pub crawl, 시티 투어, 크루즈 투어 등을 하고 나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카누를 타는 것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바다나 강 위에서 카누를 타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부럽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서웠기에 해본 적이 없었다. 고민하는 나에게 Fernanda는 Don't worry~라고 말하며 꼭 해봐야 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준다. 다만 걱정할 것은 니 팔이 많이 아플 거나 걱정해라며. 브라질의 남쪽 섬이 고향인 Fernanda는 자기 소유의 카누를 매일 타고 놀기도 하고 각종 수상 스포츠는 물어보는 족족 다 해봤다고 한다. 신기해하는 나에게 '그런데 너도 바다 근처에 살지 않냐고, 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냐'라고 묻는 데 그러고 보니 난 수상 스포츠를 즐긴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수영을 할 줄 알면서도 바다는 무서워서 꼭 튜브도 끼고 들어갔으니 말이다. 섬에 사는 다른 친구 Norba 역시 섬에서 다른 섬 정도까지는 바다 수영을 해서 가곤 한다고 말한다. 가다가 힘들면 뒤로 누워 둥둥 떠서 쉬다가 다시 출발한다는 말에 솔직히 너무 놀랐다.


 우리나라 학생들에 비해 좀 더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다른 나라의 친구들은 확실히 다양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여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승마를 다들 할 줄아는 보편적인 경험들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돈과 시간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Maria와 고등학교 때 이야기를 하다 보니 Maria는 고등학교 때 보통 2시~4시 정도에 마쳤다고 한다.(지금은 교육과정이 조금 바뀌어서 좀 더 늦은 시간까지 하는 대신 일 년이 축소되었다고 한다.) 마리아에게 우리나라의 고등 교육과정을 말해주자, 경악을 한다. 대체 취미 생활은 언제 하고 그럼 가족들과 저녁 식사는 어떻게 하냐며 놀라는 마리아에게 그저 "그러게.."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확실하게 우리는 무지한 대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어릴 적 장수하늘소와 콩벌레를 동글동글 말아서 주머니에 넣어 다니던 내가 벌레를 무서워하게 된 것은 밖에 나가서 뛰어노는 시간이 줄어든 중학생 시절부터였던 것 같다. 이제는 나방만 봐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 일상이 되어갈 무렵, 독일에서 생활 한 뒤 풀밭에서 지내는 일상이 많아지면서 슬금슬금 다리에 올라오는 벌레들도 그냥 쓱 튕겨버리고 말뿐이다. 우리의 자극에는 분명히 '역치'라는 것이 존재한다. 우리가 그것을 많이 경험할수록 두려움은 작아진다.


hamburg에서 처음으로 타 본 카누
장난기 많은 친구들 덕분에 물에 빠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

 깜빡하고 구명조끼도 받지 않고 오른 카누는 생각보다 많이 흔들렸고, 친구들이 무거워서 그런 건지 수면은 생각보다 보트의 면과 너무 가까웠다. "얘들아.. 나 수영 못 해, 너네 날 꼭 구해줘야 해"라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열심히 노만 저어 가고 있는데, 그냥 가는 것도 무서운데 장난기 많은 친구들은 주변 카누 팀에 물을 뿌리고 일부러 배를 부딪치면서 낄낄거린다.


 처음에는 얘들을 만류하다가 계속하다 보니 긴장도 풀리면서 이제는 잘 못 가서 나무에 걸려도 그냥 웃게 된다. 점차 풍경도 즐기게 되고, 우리 배 옆을 지나가는 오리 가족들도 보인다. 그러다가 주변 카누 팀과 경쟁을 해서 속도를 올리다 보니 어느새 3시간이 지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있다. 타고나서 서로 수고했다고 칭찬해주다 보니 재밌었다는 생각이 든다.


 Hamburg에서 내가 얻은 수확 중 하나는 내가 두려워하는 리스트에서 카누 타기를 지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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