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에도 사람은 있어
엄청난 반항아는 아니지만 시키는 것을 잘 하지 않는 아이. 왜 해야하는지 관심은 가지면서도 결국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는 아이. 조용히 앉아 딴짓할 궁리를 하는 아이. 학창시절의 나는 문제는 일으키지는 않지만 딱히 순종적인 아이는 아니었다.
이 아이는 자라서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현지인들이 사는 주택가를 기웃거리고, 사진 찍히는 것보다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고, 카페나 공원에서 사람구경하는 것을 즐기는 한량같은 여행자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곳이든 그 주변을 서성이고, 한걸음 더 천천히 걷는 하루를 보내고는 한다.
처음 내가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엔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중국인들에 대한 시위가 한창이었다. 그들이 보기엔 모든 동양인이 중국인처럼 보일테니 시위가 있는 날엔 되도록 시위무리를 먼저 피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시위를 피하고나면 길 곳곳엔 집시무리들이 있었고, 그들은 아이 어른 할것없이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노렸다. 때마침 여행일정을 늘리게 되면서 인출한 돈이 다 떨어져가던 때라 좋은 곳에서 쉴 여유사정은 되지 않았고, 그렇게 길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내 주머니는 비어있으니 긴장은 덜 해도 되었고, 마음은 평온했다. 부족한 돈만큼 남는건 시간뿐이니 남들보다 조금 느린 속도로 걷고,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다보니 해변가의 노점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말이 노점상이지 경찰이 보이기만 해도 도망가느라 바쁜 보따리장수들이었다. 그들은 딱히 호객행위도 하지 않고, 목이 좋은 곳에서 자리를 펼 뿐이었다. 그 앞엔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으며, 그에 비해 벌이는 정말 시원치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니 어떻게든 관광객의 돈을 뜯으려는 사람들이 짠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벌이나 혹은 법과 세금이 어찌했든 그저 누군가를 기다리고,그들도 그저 반복되는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하루의 추억으로 남아있는 장소에서 다른 누군가의 일상을 보게 된다면, 그들의 뒷모습이 짠해 보이는건 내가 두고온 일상을 그렇게 느끼고 있어서 아닐까. 그렇게 그 곳은, 그 사람들은 나의 시각으로 또 한번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