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은 아니 두번쯤은 조금 더 두고봐줘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힘들어지는게 인간관계와 그냥 하루를 버티는 체력인것 같다. 후자는 노화라는 치명적이고도 합당한 변명거리가 있지만 인간관계는 변명 아닌 변명도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내가 나로 보이는 것 자체가 이렇게 힘든 일일줄이야.
처음부터 잘 맞는 경우야 상관없지만 무언가 삐그덕 대는데 이게 진짜 안맞아서인지 낯을 가리는 것인지 또 다른 무엇인지 시작하는것 자체가 피곤해지는 경우가 있다. 어릴때엔 그냥 끌리는대로 혹은 귀찮은게 싫어서 회피해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한살이라도 더 먹으면 일종의 책임감때문에 조금 더 버텨보려고 노력해본다. 이정도는 해야 어른이니까, 적어도 내가 노력한 점이 있어야 망해도 내 잘못이 줄어들테니까. 진정한 회피를 위해 더 노력하는 참 피곤하게 사는 삶인것 같다, 어른이란.
첫 인상이 별로였다. 건들거리면서도 꽤 무뚝뚝한 말투에 가끔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너무 차가워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은 그냥 버려야 하는건가 싶을 정도로 실망을 많이 했고, 그냥 너무 차갑고 어두웠다. 부다페스트는 그랬다.
첫날부터 비가 내리고 또 내렸다. 겨울비는 너무 차가워서 야경을 보러 올라간 언덕 위엔 함박눈이 내려 한치 앞을 보기도 힘들었다. 익숙한 공기를 느끼고자 찾은 스타벅스의 점원들조차 차가웠고, 갈 곳이 없어 식당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며 내내 따뜻하고 기름진 식사를 해서 몸만 풍족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호텔은 내부 수리를 해서 아침엔 공사소리에 쫓겨나오듯 외출을 할 수 밖에 없는 나날들이었다. (어떤 날은 하우스키퍼가 아침에 몇번이나 그냥 문을 열어 당황하기도 했었다.) 분명 좋은 점들은 있었으나 나를 꽤 지치게 하는 도시였다, 마지막날 전까지는.
평소의 나였다면 일정을 조절해서 일찍 떠났었겠지만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다음 도시가 비행기로 이동이라 어쩔 수 없이 더 지냈는데 마지막날은 떠나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추위 때문에 찾아간 동네의 카페는 현지 사람들을 보며 소위 멍때리기에 최적의 곳이였으며, 눈이 내리는 국회의사당의 밤과 맑은 아침의 국회의사당은 하룻밤의 꿈 같을 정도로 다른 분위기였다. 마지막날 아침에 야심차게 걸어 올라간 겔레르트 언덕은 간밤에 내린 눈 때문에 꽁꽁 얼어붙어 말도 안통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응원해주며 올라가는 훈훈한 등산길이 되었다.
내가 여길 더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면, 그 전에 먼저 떠났더라면 어땠을까.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한채 돌아선 것은 아니었을까.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때론 얼마나 독이 되는지 우리는 알고 있었을까. 그때는 어마어마한 고통이었지만 이제는 이유조차 잘 생각나지 않는 한때를 추억하며. 앞으로는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노력해야만 하는 시간을 버텨내길.
또 한번의 생일을 보내며.
한살 더 먹은 내가 조금 더 걷고, 더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때로는 그대로, 때로는 새롭게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