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또 이렇게 그려놨대?
요즘 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주로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데,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회사 생활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래서 '왜 그럴까?'가 나의 최근 고민거리였는데, 어제 친구와 대화를 통해 힌트를 얻었다.
내가 회사에서 맡은 일은 PM(Product Manager) 업무이다.
주요 업무는 다른 회사의 PO(Product Owner)와 비슷한데, 주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설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기획을 하고 디자이너, 개발자와 함께 제품을 만들고 성과를 내는 그런 일이다.
추가로 나는 팀 문화에도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전사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같이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전사 문화를 개선하는 업무는 나보다는 CEO의 주요 업무이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나에게 팀 문화 업무에 대한 권한과 책임은 제한된다.
이 말은, 내 주요 업무는 PM 업무이고 팀 문화 개선은 하면 좋은 부차적인 업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둘 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특히 팀 문화 개선에 나의 사명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나만 오버해서 둘 다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 건 아닌지?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문득 '내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있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우울이란 본디 이상적인 나와 현재의 나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것.
최근 나답지 않게 '~~였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것도 그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신호인 것만 같았다.
나는 메모지를 꺼내 들었다.
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 내가 원하는 나, 현재의 나를 각각 적어보았다.
다 적고 나서 보니 '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에 적힌 항목이 가장 많았다.
'내가 원하는 나'와 '현재의 나'는 개수도 비슷했고, 실제로 내용도 비슷했다.
내가 원하는 나와 현재의 내가 비슷하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행복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자 그럼 이 우울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비현실적인 목표를 먼저 지워냈다. 절반 이상이 날아갔다ㅎ
실제로 내가 스트레스받고 있는 문제에 대입해 보니 굳이 스트레스받지 않아도 될 문제들이 다수였다.
사회 집단 안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렇게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의 이상적인 모습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려지는 것 같다. 언제 또 이렇게 그려놨대?
이 그림은 어떤 면에서는 필요하다. 내가 더 나은 내가 되도록 채찍질해주기도 하니까.
하지만 너무 비현실적인 항목은 우울해지기만 하고 쓸 데는 없다.
내 안의 내가 또 열심히 그려나갈 테니 지금은 살짝 지워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