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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디치 Feb 10. 2022

불편함을 감수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내일의 세계》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편


2022년 1월 15일 저녁 7시 반

서울 중구 중림동 스튜디오 메디치에서

체커 : 타타

채터 : 콘버지코리안재재저녕꾹꾹



*1편 읽어보기

https://brunch.co.kr/@medicibooks/51




적게 쓰기 위한 재생에너지


《오래된 미래》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대부분의 정부가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추진하는 그린뉴딜을 합니다. 에너지를 적게 쓰자거나 자원을 적게 쓰자는 말을 하지 않는 그린뉴딜입니다. 대신에 더 많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자고 단순하게 말합니다. (121쪽)


콘버지 이 분 121쪽에 나오는 얘기까진 문제의식이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하는 그린뉴딜은 에너지를 적게 쓰자는 그린 뉴딜이 아니다. 근데 우리가 지금 에너지를 쓰고 사는 방식이 당연시 되면 안된다, 그런 느낌이어서. 확실히 재생에너지도 우리가 원자력이나 화력을 대체하자는 의미로 쓰지, 덜 쓰자는 의미로 얘기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재재 이 파트에서 나왔던 얘기 중 가장 와 닿았던 부분 같아요. 더불어 '전기차 좋고, 수소차 좋은데, 그럼 지금의 화석연료 자동차를 버려야 한다는 건 또 다른 쓰레기를 만드는 행위'라고 말하는 부분도 와 닿았고요.

타타 화석연료 끝물이지만 있는 건 다 써야지?

재재 그런 말은 아닌데 (웃음) 근데 저는 처음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별로였는데, 왜냐하면 읽으면서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근데 다 읽으면서 다시 생각이 든 게, ‘아, 결국 이 어쩌라는 거야라는 태도 때문에 지구가 망해가고 있는 건가?’ 그런 반성을 갑자기 막판에 하게 돼서, 이게 이 사람의 메시지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콘버지 근데 제가 아쉬웠던 건...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러다이트 운동(Luddite)은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있었던 사회 운동으로 섬유 기계를 파괴한 급진파부터 시작되어 1811년에서 1816년까지 계속된 지역적 폭동으로 절정에 달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산업화, 자동화, 컴퓨터화 또는 신기술에 반대하는 사람을 의미하게 되었다. (위키백과)


저에게 희망을 주는 심오하고 상징적인 징후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부엌에서 빵을 굽기 시작했어요. (135쪽)


콘버지 135쪽 저 구절은 와, 진짜 너무 나이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여기 인터뷰이들이 다 좀 이상론적인 게 묻어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구가 곧 망하는데, 정치 등 기성 집단은 그것에 관심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개인이 소규모의 공동체를 꾸리자’. 인류를 사랑하자, ~~하자 등의 해법 있잖아요. 다 그런 식이란 느낌이 드는 거예요.

타타 '왜 이런 아쉬운 느낌이 들까?' 그 느낌을 추적을 해봤는데. 각자 이유가 다르겠지만, 어쩌면 요새 우리가 좌파에게 느끼는 불만과 비슷하게 닿아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대안을 얘기하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얘기하는 게 대안이 아니라 보완에 불과한 느낌?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이 현실을 조금 더 나아질 수 있게 보완하는 정도의 역할은 할 수 있겠지만, 이 자체가 사회 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근데 이걸 너무 거대한 대안인 얘기인 것처럼 얘기를 하니까, 거기서 나오는 괴리감 때문에 약간 불쾌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아요.

저녕 그것도 그거고. 우리는 보완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어쨌든 이 사람들은 이게 지금 현 사회체제에 대한 대안이라고 내놓은 거잖아요. 근데 너무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느낌의 말들이 많아요. 특히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가 탈중앙화와 분산화 얘기를 하면서, 이 분산화 얘기를 통해 다시 집 앞에 있는 것으로 밥을 먹자, 이런 얘기를 하는 거잖아요. 이게 산업화 이후 자본주의가 들어오기 전에 우리가 해왔던 것들을 다시 하자는 논리잖아요.

타타 그니까. 이게 러다이트 운동이랑 뭐가 달라?

저녕 그렇죠. 교통이 편리해지고 자본이 발달한 사회에서 다시 어떻게 과거로 돌아갈 것인가, 돌아갈 게 아니라면 새로운 사회의 모습은 무엇이고, 그걸 어떻게 가능하게 할지 정도에 관한 언질 정도는 해줬으면 아주 공감은 안 갈지라도 <이런 방법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생각할 텐데. 

콘버지 118쪽 리카도를 언급한 부분도 그래요. 


합리적인 사람은 생필품을 지구 반대편에 의존하지 않아요. 고전적인 무역 공식은 나에게 없는 것을 교환하거나 사오는 겁니다. 지금은 이윤을 추구하는 비교 우위가 경제원칙이 됐습니다. 17세기 말부터 18세기에 활동했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비교 우위를 갖는 물품에 집중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냈는데요, 그러니까 스코틀랜드에서는 귀리가 잘되니까 오로지 귀리를 길러 수출하자, 그렇게 번 돈으로 나머지 필수품을 싸게 수입해서 모두를 이롭게 하자는 논리죠.


콘버지 이 부분도 문제가 있는 게, 예전에 맬서스 <인구론>*등에서 식량 감소는 어쩔 수 없는 문제고, 그런 과정을 통해 인류 개체 수가 적정 수를 유지하게 된다는 주장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게, 리카도의 저런 비교 우위 개념을 통해 고전적인 무역 공식을 극복했기 때문이기도 하잖아요. 물론 리카도의 주장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헬레나의 방식은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자는 거죠. 텃밭에서 먹자, 이런 류의 해법이 현실적으로 대안이 되기엔 불가능하잖아요.

*맬서스 인구론 : 과잉인구로 인한 식량부족으로 인류 상당수가 가난과 기아, 전쟁, 전염병 속에 살다가 인간 개체수 감소로 식량의 불균형은 시정될 것으로 본 이론

꾹꾹 근데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요는 <현재의 편리함을 좀 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생활이 어떻게든 계속 좋아질 수는 없는 거고, 환경 문제도 앞으로 심각해질 텐데. 그거에 따라서 우리 가치관도 불편함을 감내할 수 있는 쪽으로 변화해야 하지 않냐? 저는 이런 얘기라고 읽었는데, 저는 이런 시각에 대해선 공감은 하거든요. 그래서 완전 이상적인 얘기로는 읽지 않은 것 같아요.

저녕 ‘불편함을 감수하자’까지는 당연히 동의하는데. 그것과는 다른 결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불편함을 감수하자’를 넘어서서, 지금 편리한 걸 다 포기하자. 예를 들면 지금의 소비가 문제다. 그러면 이것들을 부추기는 체제, 제도 등이 있을 텐데, 이것들을 고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무언가를 하든 단순히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명확한 대안이 있고, 이 대안에 따른 부작용을 감수하자는 것과 그냥 대안 자체가 ’불편함을 감수하자‘는 얘기가 다르죠. 여기서 오는 불쾌함이 있었던 것 같아요.

타타 물론 이게 인터뷰여서 발생하는 한계들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이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현실 사회에서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가에 관해선, 이 사람들도 아마 우리가 좋게 읽었던 그런 부분 위주로 얘기를 할 것 같아요. 근데 아무래도 한정된 시간과 분량이다 보니 이 사람 삶의 얘기와 이 사람이 현실에 대해서 하는 얘기가 구분되지 않고 섞여 있어서, 거기서 우리가 읽을 때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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