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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디치 Jun 20. 2022

"동상이몽(同牀異夢)"

『김경수, 댓글 조작, 뒤집힌 진실』서평

- 작성자, '지니'


 절대적인 것 같은 시공간도 과학적 사실을 통해 상대적인 것으로 증명되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블랙홀에 가까운 행성에서의 3시간이 지구에서는 23년이다. 또 영화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와 런던의 시차는 9시간인 것을 알지만 그것을 체감하기란 어렵다. 움직이는 대상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시공간은 상대적으로 움직인다. 그것은 내가 어디에 있느냐,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과학적 사실 말고도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상대적이기 마련이다. 음식점 사장님이 처음 온 손님보다 단골손님에게 더 인심을 쓰는 것처럼, 아주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게 편한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법은 객관적이길 바란다. 누군가와 다툼이 있었을 때, 도로 위에서 접촉 사고가 있었을 때 지인을 부르는 게 아니라 경찰을 불러 누구의 잘못이 큰지 따져 묻는다. 수사기관에 있는 사람들은 법을 통해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나만해도 누군가와 문제가 있을 때, 가장 먼저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할 것이다.

 법은 우리 같은 서민들이 다가가기엔 진입장벽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법률 전문가를 고용할 수밖에 없고 그런다고 하더라도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완벽하게 인지할 수 없다. 

그런데 법마저 상대적으로 적용된다고 한다면 일반 서민들은 자신을 보호해줄 최소한의 장치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김경수 전 지사의 사건만 해도 그렇다. 그때 당시 언론은 김 전 지사가 가지고 있는 유죄 가능성에 대해 집중 보도했다. 언론의 그러한 행태는 이미 그 사람을 범죄자로 낙인찍고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고 무죄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애초에 고려하지 않는 태도다. 

거기에 법원의 유죄 판결은 추측성 기사에도 사실상 답을 내려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건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유죄 판결이 났다는 기사의 헤드라인만 보고 가볍게 넘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법이 얼만큼 불리하게 피고인에게 적용되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유죄 판결이 났다는 사실만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잘못이 있으니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라고 보통 사람들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법이란, 사람들에게 있어서 정의를 구현하는 절대적인 믿음이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경수 전 지사 사건이 정치적 사건이기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다 보면 일반인은 알 수 없는 사법부의 구조적인 문제를 알 수 있게 된다. 유력한 정치인이었던 도지사가 억울하게 정치적 판결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한 개인이 법 앞에서 정당하게 판단받지 못한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살면서 재판받을 일은 없어야겠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어떤 일에 휩쓸릴지 모르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한 일만큼 처벌받을 수 있는 권리 또한 보장받아야 한다.

 우리가 친구나 애인과 다투게 될 때의 원인은 갈등을 유발한 일에 대해 각자의 해석과 판단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상대에게는 넘어갈 수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사람 간의 갈등에서 시시비비를 따지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람의 감정이란 상대적인 것이고 그것을 판단 내리는 기준마저 객관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형사 재판에서도 직접적인 증거가 없이 증인의 진술에 의존해야 할 때 유죄 판결을 내릴 근거가 모호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증인의 진술이 증거능력과 증명력이 있는지 철저하게 따져 봐야 한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이러한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는 설령 유죄의 의심이 든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49p) 책에 인용된 대법원 판결에 일부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가 유죄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하는 정도가 아닐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김경수 전 지사에 대한 판결을 그렇지 않았다. 김 전 지사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증인들의 진술이었다. 그렇지만 2심에서는 그들의 증언의 많은 부분을 허위라고 인정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했다니, 법을 잘 모르는 나에게도 큰 모순처럼 느껴졌다. 판사가 진술의 일부분은 진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인데, 그럼 여기서 자연스럽게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였는지에 대한 질문이 따를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판사가 그렇게 판단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김경수 전 지사의 변호인단은 여기서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만큼 법정에서 판사의 권력은 막강하게 작용된다. 그 구조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피고인은 아무도 없다. 친구들과 농담할 때, 어제 일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런데 증인의 기억을 오로지 유죄 판결에 근거로 삼는다는 것은 크게 무리가 있지 않을까. “뚜렷한 증거가 없는 사건이라면 증인들의 진술이 가지는 가치는 더욱 커지지요. 뚜렷하지 않다면 무죄가 돼야 하지만, 진술이라는 증거를 근거로 법원의 판단은 유죄로 나올 수 있는 겁니다.”(62p)

 뚜렷한 증거가 없다면 피고인의 이익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하지만, 법원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증거는 디지털 증거였다. 김 전 지사는 ‘컴퓨터 등 업무 방해죄’로 실형을 받았다. 법원이 판단한 근거로는 네이버 로그기록과 킹크랩이라는 매크로 프로그램이었다. 이런 IT와 관련된 부분을 법 전문가인 판사들이 제대로 분석하여 판단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의견이 재판에 반영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전문가 의견은 재판에 반영되지 않았다. 김경수 전 지사의 변호인단은 검증을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재판부는 전문가의 의견을 배제했는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재판을 받을 때, 변호사를 고용하는 이유도 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판에서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할 때,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피고인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우리가 평소 재판 관련 드라마를 볼 때, 예기치 못한 증거를 변호인이 갑작스럽게 내밀며 재판의 분위기를 바꾸는 극적인 장면이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판사가 그것을 증거로써 효용가치가 없다고 받아들이면 재판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피고인으로서는 무죄를 증명할 수 있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싶을 것이다. 현 사법부는 판사 한 개인의 판단에만 의존하고 있다. 그것을 검증할 방법과 감시할 기관이 없다는 것은 큰 문제다. 이번 사건의 흐름을 보면 느낄 수 있다.  

[양지열 저자의 책 소개 영상] 김경수, 댓글 조작, 뒤집힌 진실

  이 내용 말고도 법원의 판단에 모순이 느껴지는 지점들이 많았다. 내가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낀 것은 살면서 법정에 설 일은 없어야겠다는 것이다. 유무죄를 다투는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은 약자일 수밖에 없다. 법률 전문가인 검사가 법리와 증거를 엮어 기소하면 그것을 반박하기 어렵고 아무리 변호사를 고용하였다고 해도 수사기록을 나중에 받기 때문에 공을 들여 수사한 검사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있다고 해도, 검사가 만들어 놓은 유죄 가능성에 대해 반박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와는 전혀 다른 가능성을 제시해야 그나마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판사에게 공정한 판단을 바라고 있지만 사실상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책에서는 여러 지점들을 꼬집고 있는데, 현실적인 어려움도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보통 형사재판은 한 달에 한 번 열리는데, 피고인이 예정에 없던 증거를 내밀면 재판의 결론이 한 달 뒤로 미뤄진다. 그렇게 되면 판사는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고 더군다나 검사의 주장과 증거로 판사가 이미 유죄 심증을 굳힌 상태라면 피고인의 증거를 받아들이는 것이 불필요한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또한, 법은 수사 과정에서 사건 기록을 보여주지 않는데 그 안에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들이 빠져있기 쉽고 재판에 넘겨지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김 전 지사의 사건 기록은 3만 페이지가 넘었다고 한다. 여기서 또 다른 증거를 제출하여 검토하는 일은 무리일 수 있다. 사건에 주 핵심 증거인 디지털 증거 역시 2심에서 다루어졌는데, 그것은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 한 개인에게 처벌을 내리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변명은 피고인에겐 소용없는 것이다. 재심이라는 제도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원활히 이루어지란 어렵다. “어떻게든 형사재판 절차에서 충분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몇 년, 몇십 년이 걸리더라도 말입니다.”(143p) 판사 한 명에게 문제를 제기하기보단,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어야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책에서는 이러한 지점을 꼬집으면서 판사 출신 변호인 분들의 인터뷰를 통해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재판에 국민 참여도를 올리는 것도 방법일 수 있고, 지금처럼 성적으로 줄 세우기 하는 임용방식을 바꾸는 것도 방식일 수 있다. 또한, 검경 수사권 분리를 통해 구조적인 문제를 탈피하는 방법도 모색할 수 있다. 법관의 수를 늘리는 것 또한 해결의 열쇠일 수도 있지만, 민사사건을 지나치게 형사사건화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재판을 받을 때, 유무죄를 가르는 사실 말고는 어떠한 것도 개입돼서는 안 된다. 검사가 기소한 사실과 피고인이 제시한 무죄 증거가 창과 방패처럼 싸울 때, 판사는 그것을 중립적인 입장에 서서 바라봐야 한다. 여기서 그럴 수도 있고, 이럴 수도 있을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에 따라 판결을 내려야 한다. 나는 김 전 지사가 한 개인으로서 법정에 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언론에서는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려놓고 추측성 기사를 통해 그에게 선고를 내렸다. 유력한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는 개인으로서 제대로 판단받을 권리마저 보장받지 못한 것이다. 이미 언론과 여론은 그에게 심판을 내려놓고 그가 유죄 판결을 받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사법부는 유죄추정의 시각으로 재판을 내리고 있고 있다.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그 반대의 경우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 언론을 통해 심판이 끝난 피고인에게 반대의 판결을 내리는 것은 판사에게 큰 부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최대한 객관적이야 하는 것이다. 피고인의 직업은 판단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김경수 전 지사가 정치인이라는 사실이 재판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컴퓨터 등 업무 방해죄’에 대한 판례에서 실형을 산 판례는 없다. 그에게 내려진 판결이 과하지 않았는가에 대해 재고해 봐야한다. 재판부가 실형을 선고할 때, 결정적이고 합리적인 증거와 유죄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야 한다. 그러지 않다는 것은 책을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모두 판사의 판단과 해석에 기대어 있다. 우리가 아는 그 흔한 cctv 증거도 없었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지표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김 전 지사에게 유리한 무죄 증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떤 이는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는 김 전 지사의 지지자의 의견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정치적인 이분법적 사고로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재판부가 김경수라는 한 개인에게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 논리적이고 비판적으로 보자는 것이다. 

이 책은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통해 불합리한 사법구조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이야기다. 결과는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론이 합리적이지 않은 과정을 통해 도출되었을 땐, 차근차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 나의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본사와 제휴한 외부 필자에 의해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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