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을 읽었는데 다음에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소개를 해주세요”
“한국요리 레시피가 담긴 책을 추천해 주세요”
“아이에게 읽어줄 그림책을 고르는데 도와주세요”
“20대 작가가 쓴 소설이 있습니까”
“한국의 시를 읽고 싶어요”
책거리를 찾는 손님들의 목소리이다. 책거리에서 책을 팔다 보면 이렇게 직접적인 질문 외에도 어떤 책이 많이 팔리는지. 어떤 이유로 책을 사 가는지를 알 수 있고, 또 각 출판사들이 어떤 책을 간행했는지, 어떤 번역가가 번역을 했는지 등 업계 흐름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데이터들 역시 현장의 목소리들이다,
책방은 이처럼 출판계 엔드유저의 목소리, 출판계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나는 직접 출판을 하기도 하고 여러 출판사에 판권을 중개하는 일도 하고 있어서 이 현장의 목소리는 큰 도움이 된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편집자나 영업자들에게 엔드유저의 목소리를 직접 경험하게 하자는 생각에 K-BOOK FESITVAL을 열었다. 2019년의 일이다. 진보초의 출판 클럽을 빌려 한국 책을 번역 출판한 출판사 14사, 한국에서 온 시집 전문 책방 “위트엔 시니컬”, “땡스북스”, 문학전문 책방인 “고요 서사”, 보자기 선생 최희주 씨의 공방, 책거리 멤버들에게 커피 내리는 법을 알려준 유미 씨는 떡과 커피로 손님들을 맞았다. 한국에서 소설가 이기호 씨, “우리에게는 언어가 필요하다”의 이민경 작가도 참가하여 명실공히 작가, 출판사, 독자가 함께하는 축제였다.
축제는 당일보다 그 당일까지의 과정이 더 신나는 법이다. 당연하게 K-BOOK FESITVAL 역시 축제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스펙터클 하였다. 강연회나 대담 등의 이벤트는 연간 100회 이상 기획하여 참가신청을 받아 진행을 해 보았지만 큰 회장을 빌려 손님이 얼마나 올지 모르는 이벤트는 처음이었다. 처음이라 무모했던 사건들을 꼼꼼하게 K-BOOK FESITVAL 편에서 자세히 적기로 하고 오늘은 이벤트 당일에 있었던 어떤 한 장면을 전하기로 한다.
2018년에 오픈한 출판 클럽에서 K-BOOK FESITVAL을 열고 싶었다. 일본 출판계의 중심인 곳에서 새로 단장한 출판 클럽 홀에서 한국 서적 출판의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흑심이 있었다. 욕심은 늘 큰 비용을 동반한다. 회장을 빌려서 하는 이벤트는 회장 렌털 비용이 이벤트 전체 비용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당일 치의 렌털뿐만이 아니라 준비를 위한 전날, 철거를 위한 다음날까지 렌털을 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자금으로는 축제 당일 하루치만의 자금뿐이었다. 준비도 철거도 다 당일에 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제한된 환경은 또 다른 창작의지를 불태우게 하는 요소인 것 같다. 축제 오픈을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하고 아침 8시부터 회장에 들어가 준비를 하기로 하였다.
책거리와 출판 클럽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
축제 당일 노란 티셔츠를 맞춰 입은 볼런티어 20여 명과 책거리 멤버들이 회장에서 쓸 의자며 여러 장비, 장식물을 들고 줄을 지어 출판 클럽으로 갔다. 다들 마음이 급했는지 도착하니 7시 45분.
그러나 일찍 왔다고 들어가서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8시부터 사용계약이니 기다리라는 말에 노란 병아리들은 다들 몸을 움츠리고 말았다.
위축된 병아리들 앞에 두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하크스이샤의 홋타 씨와 고바야시 씨가 당신네 책을 가득 실은 다이샤를 밀고 나타났다.
어, 출판사들은 우리가 회장 설영을 마칠 10시 무렵에 와서 각자의 매대 장식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왜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8시 아닌가요. 아이고 우리가 시간을 잘못 알고 일찍 온 거 같네요.
들여보내 주지 않는 출판 클럽의 원칙주의에 속이 상했다가 바로 마음이 누그려졌다.
두 분은 회장에 들어서자마자 우리와 한 몸이 되어 회장 설영을 함께 하였다. 100평의 회장, 높은 천장에 오색종이를 늘어뜨리는 작업을 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해 주었다. 두 분이 없었다면 어쩔 뻔.
축제 내내 두 분은 당신들 매장에만 있지 않고 회장을 두루 살피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영업이 끝나고도 당신들 짐을 간단하고 꾸린 뒤 철거작업을 마지막까지 함께 했다. 긴 사다리를 타고 오색종이와 헬륨이 가득 차 천정을 뱅글뱅글 도는 커다란 풍선들을 다 잡아 주었다. 이 작업이 실은 여간 위험하고 여자들로만 구성된 우리가 하기에는 난도가 높은 작업이었다.
오빠들이 이럴 줄 알고 일찍 오신 거구나.
여러분,
근처에 이런 오빠를 보유한 책거리랍니다.
(하크스이샤는 책거리에서 도보 7분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