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ndakko Aug 06. 2016

산티아고 대신 손가락GO

서른 전후에 가장 산티아고에 많이 간다더라. 난 무서워 못가겠다.

한 회사에서 6년을 다녔다. 이제 조금 뭔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퇴사했다.

정년이 보장된 기관이었지만, 내 삶은 정년 이후에도 한참일텐데 불안했다.

'나'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두 말렸고 나도 혼란스러웠지만 지금아니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았다. 나는 퇴사했다.

그리고 힘들다.



서른 전후의 사람들이, 그리고 여성이 산티아고에 많이 간다고 한다. 나를 찾고싶은 사람들이다. 나처럼 회사생활 하면서 회의감이 든 사람, 일이 잘 안풀리는 사람, 원하는걸 아직 결정하지 못한(못 만난게 아니라 아직 선택하지 않았다 말하고 싶다)사람이 갔을 것이다. 퇴사하면서 하고 싶었던 것운산티아고 아니면 제주 올레길이라도 가는 것이었다. 나를 찾을 수 있을거 같았다. 번번히 실패한 이유를 대라면 핑계가 금방 열개가 넘을테지만 줄이고 줄이자면, 이유는 하나. 무서웠다.


아시다시피 퇴사 후 가장 해야할 일은 여행이다.  산티아고를 못가는 내 자신이 좀 한심했지만, 여행은 갔다. 가고싶었던 유럽에도 가고 다이어트를 잠시 멈추고 대만에서 매일 밀크티를 마시며 야시장을 돌아다녔다. 엄마랑 온천에도 가고 친한 동네 친구와 휴양지에 가서 인생샷을 건지겠다며 1,000장 가까운 사진을 찍어왔다. 회사다니면서 시간을 쪼개 다녀오던 쪼임과 아쉬움이 없는대신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 순간 허무함이 더 커졌다. 앞으로 뭘 해야겠다는 의욕도 없어졌다. 여행지에서 본 사람들은 매우 다채로웠다. 사는데는 여러가지 방법이있는데..하는 희미한 생각이 시작됐다. 그러다 다섯번의 여행이 마무리 되고 나는 결심했다.


나를 찾지 않기로 했다.

그냥 오늘 정의하는 내가 '나'인걸로.


내가 과거에 어떤 생각을 쌓았고, 말했고, 행동을 했건 연연해하지 않을거다. 그덕분에 나는 나를 찾지 못한다는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모습을 원하기만 하지 않고 '나'로 누구보다 빨리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살겠노라 생각하면 그렇게 사는 내가 되기로 했으니까.


나는 근사한 사람이다. 담담하고 정갈하게 하루를 보낸다. 친구들에겐 좀 더 담백하게, 남자친구에겐 온전하고 완전한 사랑을 전하는 사람. 무엇보다 흔들리지 않는다. 내일을 두려워 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책으로도 많은 스승을 만나고, 좋은 선배를 만나고, 내 생각을 제대로 기록하는 사람이다.  

그러기로 마음 먹었으니까.



산티아고 대신 손가락으로 나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만들어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조일기는 그렇게 시작한다.



산티아고 대신 손가락 G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