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호]동네이슈 | 글 권대익
글 권대익, 동구여중 교사
너른바위는 구민회관과 동구여중 사이에 있다. 지금은 철조망이 처지고 학교 밖이지만 예전엔 동구학원의 소유라 야외수업 장소로 이용하곤 했었다. 이곳은 넓은 시야가 확보되어 삼선교, 혜화문, 종로를 볼 수 있는 곳이라 가을이면 야외학습을 핑계로 작은 소풍을 오곤 했던 곳이다.
오늘 근무시간임에도 학교 밖 너른 바위에 혼자 와 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동구정상화 과정에서 해직되었기 때문이다. 동구학원은 횡령으로 감옥에 갔다 온 사람이 학교 행정실에 근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야기한 선생님을 수차례에 걸쳐 해고를 했고 학교를 민주적으로 운영하고자 임용된 교장을 해고하여 학생, 학부모, 시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다. 나는 고등학교에 교장으로 임용되었다가 2018년 해고되었다. 그 이후 수차례의 소청(교사가 징계를 받으면 바른 징계인지 확인을 하는 행정절차)과 법적 판단을 거쳤음에도 법인에서는 나를 비롯한 3명의 교사에 대한 부당징계를 계속하고 있다. 서울교육청에서 부당징계를 철회하라는 수차례의 공문에도 불구하고 동구학원에서는 막무가내이다. 사립학교가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어 당연히 교육청의 행정지도를 따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나오는 것은 사학의 자율성을 보장한 사립학교법이 있기 때문이다.
사립학교법은 작년 유치원 3법 제정 시 알려진 것처럼 사립학교가 나라의 세금으로 운영되면서도 인사나 운영에 대하여 공적 통제를 받지 않게 하여 비리의 온상이 되게 하는 악법 중 악법이다. 사립학교법은 회계 부정을 저지른 직원을 당연히 퇴직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교 발전에 기여한 자로 포장을 하여 벌이 아닌 포상을 하여도 국가 기관(교육청)에서는 손을 쓸 수 없게 한다. 유치원 3법은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회계프로그램을 모두 사용하라는 것이 골자인데 당연하게 생각되는 이것도 국회를 통과하기 힘들었고 그 반발은 엄청났었다. 이는 사립학교가 일부 권력, 가진 자들의 소유물로 전락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한 공익제보가 동구에서 있었으며 그 결과 많은 법이 만들어 졌다. 회계부정과 같은 비리를 저지른 직원도 당연 퇴직 조항이 신설된다거나 비리로 당연히 징계를 받아야 할 교직원을 징계하지않을 경우 임금 지급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에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한, 평등하게 교육 받을 권리를 주장하면서 학생, 학부모의 선택도 아닌 사립학교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헌법소원을 낸 것도 그 성과라 할 것이다. 사학의 자율성이란 이름으로 교육의 장이 누군가의 호주머니를 불리는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동구 투쟁이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비롯한 해직교사들의 복귀시점은 암울하다.
너른 바위에서 바라본 동구는 평화롭다.
교사로 있으면서 매일매일 하는 질문 중 하나가 “학교란?”이다. 교과서에선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곳이 학교이다. 과연 학교, 사립학교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기본 이념에 충실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무엇을 가르치고 학생들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 것인지 물어보지만 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우리가 요구한 동구정상화는 무엇인가?
학교가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곳이라면 비리 당사자를 학교에서 쫓아내는 것과 공익제보자가 학교에서 근무하도록 하자는 것,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학교를 민주적으로 운영하자는 것이었다. 2012년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요구한 학교 민주화는 아직도 요원하다. 사립학교법을 개정한다면 사립학교는 민주화 될까?
비리당사자를 학교에서 쫓아내지도 못했고 공익제보자를 계속 근무하도록 하지도 못할 것 같다. 그럼 우린 진 것일까? 승리하여 모든 것이 정리되면 좋겠지만 그리 쉬운 싸움이라면 여기까지 왔을까 싶다.
동구정상화 과정에서 우린 무엇을 얻었을까?
교육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동구정상화 과정에 관심이 많다. 학교(교사)는 변하여 학생, 학부모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사학 민주화 과정에서 미약했던 교육공동체가 중추적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지역, 학생, 학부모들이 당사자인 교사, 교원단체(전국교직원노동조합)보다 더 조직적으로 움직였으며 사학 투쟁이라는 기존 틀을 벗어나 교육의 평등권을 주장하기에 이르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한 것에 주목한다. 동구정상화 과정에서 교육공동체(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주민)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찾아 시의회 체험학습, 헌법소원과 같은 결과물을 만들었으며 실제 동구여중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을 지켜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교육공동체가 살아나면서 학교를 살리고 더 단단해 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살아있는 민주시민교육을 함께 만든 것이다. 이 보다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까?
세상은 변하고 변화과정에서 우리의 요구도 변할 것이다. 어우러지며 합쳐지는 과정에서 새로운 물줄기가 만들어 지듯 우린 이런 경험을 살려 더 나은 학교를 만들어 갈 것이다. 학교 본연에 충실하여 더 나은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교사, 학생, 학부모, 지역이 연대하여 앞으로도 꾸준히 투쟁하였으면 한다.
※ 이 원고는 2019. 9. 27.(금)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로 송고되었고, 이후 권대익 선생님은 복직하였습니다. 원고를 청탁하게 된 배경, 투쟁 과정에서의 소회 등을 원고로 작성해주십사 요청드린 것이라 그 취지를 살리고자 보내주신 원문을 싣습니다.
권대익은 동구학원이 운영하는 동구마케팅고등학교와 동구여자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교사이다. 2017년 5월 동구학원정상화를 위하여 공모교장으로 일하다 2018년 1월초 해직을 당하였다. 현재는 2019년 10월 교육주체들의 강력한 힘으로 다시 동구여중 교사로 복귀하여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4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9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9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