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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Jan 18. 2021

나의 최애 어르신과의 성북동 수다

[14호]주민 인터뷰 | 인터뷰어 지강숙

나의 최애1) 어르신과의 성북동 수다

1) ‘최고로 사랑하는’이란 뜻의 요즘 줄임말


인터뷰어·글 지강숙 / 인터뷰이 임정숙

사진 17717 김선문



성북동에 온지 막 4년을 넘겼다. 4년여 시간의 큰 소득이라면 길거리에서 만나 안부를 물을 정도의 어르신을 많이 사귀었다는 점이다. 그 중 대표적인 분이 임정숙 선생님이다. 나는 선생님의 유머센스를 좋아한다. 또 어떤 일이 닥치든 어린 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접근하시려는 모습도 좋아한다. 앞으로도 이런 어르신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지강숙(이하 ‘지’) : 선생님이 성북동에서 하신 활동 중 제일 애착이 가는 건 무엇인가요?


임정숙(이하 ‘임’) : 저는 성북동의 주민모임 중 하나였던 ‘마을계획단’의 단원으로 있으면서 주민총회, 어린이장터, 공유부엌, 마을음악회 등의 활동을 했고 그 밖의 봉사활동도 많이 했는데 제일 애착이 가는 활동은 독거노인 돌보는 일이에요. 노인들이 혼자 오래 생활하시면 심한 외로움을 느끼며 존재 가치를 잃어버려 우울증과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OECD국가 중 우리나라가 노인자살률이 1위일만큼 심각한 문제잖아요? 혼자 사시는 노인 분들께 한 달에 4번 전화드리고 1번 방문해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가끔은 후원자들이 기증하는 선물을 전달하고 식사도 함께 하고 있어요.


지 : 저는 선생님을 마을계획단에서 만나게 되었잖아요. 동네에 인사하고 지내는 이웃 어르신이 계시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어요. 특히 선생님은 일이든 사람이든 다가가는데 거리낌이 없으시고 대화를 나눌 때 항상 유머를 잃지 않으시는 스타일이라 격의 없이 편안하게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마디로 선생님은 제가 바라는 ‘노인상’인데요, 혹시 평소에 ‘나는 이런 청년이 좋더라’라는 선생님의 ‘청년상’이 있으신가요?


임 : 좋은 인품을 갖고 있는 사람이요. 근면성실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청년이요. 30분만 얘기해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청년들은 젊은이들이라도 존경하고 싶어요.


지 : 선생님은 어떤 청년이셨어요?


임 : 나는 재력가이신 아버지의 외동딸로 다 누리면서 버릇없이 자랐어요. 수영, 아이스 스케이팅 같은 운동도 즐기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대학 조정선수 생활도 했어요. 그러다 대학 다닐 때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소개로 대학생연합 등산동호회에 가입하게 됐는데 거기서 동국대 철학과 정종 교수님, 홍익대 미대 김영중 교수님, 조선일보에서 칼럼을 쓰시던 이규태 선생님을 다 만났지요. 그 분들이 보여주신 인품을 보며 감동하고 열심히 따랐지. 또 동아리에 예술하는 분들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미술작품도 보러 다니고, 그 시절 경험하기 힘든 미술전시회나 오프닝 칵테일 파티에도 참석 할 수 있었어. 참 근사한 모임이었지. 

그 분들의 영향으로 예술에 대한 안목과 품격 있는 언행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세계 어딜 가도 미술관부터 찾아가 그림을 보는데 지금도 좋은 작품 앞에 서면 가슴이 울렁거려. 그 시절 그분들과의 만남의 영향으로 오늘의 내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청년시절 어떤 사람을 곁에 두고 만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 문제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청년들에게 “주위에 좋은 만남을 많이 가지고 영향을 많이 받아라.”말해주고 싶어요.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삶의 큰 기회이고 무형의 자산이 쌓이는 것과 같으니까요.


지 : 그런 모임의 하나로 성북동 주민자치회가 얼마 전 발족했잖아요. 주민자치회에서 주민들과 함께 무슨 일을 하고 싶으세요?


임 : 주민자치회에서 아무래도 마을의 주요 이슈나 안건에 대해서 주로 다루게 되겠지만 모든 활동의 출발은 친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젊었을 때 해봤던 칵테일 파티 같은 소소하고 근사한 모임도 좋구요. 

또 생활에서 예술을 많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민자치회에서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예술작품을 보면서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자기만족을 느끼거든요. 가서 좋은 그림에 가슴 설레는 것도 좋고, 내가 좋아했던 작품이 포스터, 잡지에 나오면 반가움과 나의 감각에 대한 만족감을 느껴요. 

뉴욕에 가서 보니 작은 축제라도 온 동네가 같이 즐기더라구요. 우리 성북동이라면 만해 한용운 선생 기념일 즈음해서 퍼레이드를 하면 어떨까 생각 많이 해요. 세계적으로 축제가 발달된 나라들은 보잘 것 없는데 퍼레이드라도 주민들이 다 나와서 박수치고 흥을 돋워 주더라구요. ‘콜롬버스의 날’이라 그러면 복장도 다 콜럼버스시대 의상을 입고, 관련된 것들로 꾸미는 거죠. 어떻게 보면 작고 보잘 것 없는데 주민들이 정말 즐겁게 참여해요. 나는 성북동에 그런 게 실현됐으면 좋겠어요.


성북로 걷고 싶은 거리


지 : 성북동은 이미 문화적인 토양이 잘 가꾸어져 있으니 시작만 한다면 잘 꾸려질거란 생각이 드네요. 혹시 성북동의 최애(최고로 사랑하는) 장소는 어디세요?


임 : 길상사 좋아해요. 특히 그곳에 얽힌 스토리가. 김영한과 백석의 절절한 러브스코리가 감동적이잖아요. 김영한 씨 한 명 안에 수많은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지 : 김영한 씨는 단순히 대형요리집 사장이 아니라 여성CEO로서 정·재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았고 시인과의 러브스토리까지 있는 ‘모든 것을 가진 여성’이잖아요?


임 : 스토리 못지않게 분위기도 좋지요. 길상사 식당 위에 쾌적한 카페가 근래 생겼어요. 규모도 넓고 책도 많은데다 커피도 저렴해요. 여름날 저녁에 마을버스를 타고 길상사에 가면 저녁 예불 목탁소리가 은은한 게 정말 좋아요. 젊은이들이 저녁예불에 꽤 많이 오던데 그 모습도 보기 좋구요.


지 : 앞으로 성북동은 어떤 마을이 되면 좋을까요?


임 : 신문기사를 보니 세계적으로 성북동의 한양도성처럼 마을 안에 있는 도성은 희귀한 사례라고 하더라고요. 성북동은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개발과 보존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성북동이 가진 유무형의 자원들이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살아남아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인터뷰어]지강숙은 성북동의 주민이자 작가이다. 요즘 성북동을 산책하며 희곡을 쓰고 있다.

greenpuspa@gmail.com


[인터뷰이]임정숙은 지금은 해소된 성북동 마을계획단 부단장을 역임했고, 10월 1일 발대식과 함께 공식 출범한 성북동 주민자치회 위원이기도 하다. 노인과 청소년 세대에 대한 관심이 많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4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9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9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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