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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Jan 24. 2021

파스타의 모든 것

[14호]우리 동네 쉐프 | 글 계세언

글 계세언

사진 17717 김선문



1. 파스타의 기원

파스타의 대표인 스파게티는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동방견문록〉의 저자로 알려진 베네치아 상인 마르코 폴로는 1274년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 현재의 베이징을 방문했다. 그는 원나라를 창건한 쿠빌라이 칸을 알현하고, 원나라를 섬기기로 하였다. 그는 중국 각지를 여행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아,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사실을 쿠빌라이 칸에게 보고했다.

그는 1290년에 원나라의 공주가 일한조로 시집을 갈 때, 그 일행과 함께 중국을 떠나 그대로 이탈리아에 귀국했다. 그때, 그가 중국의 면을 이탈리아에 가지고 온 것이 계기가 되어 스파게티로 정착했다는 것이 스파게티의 중국 기원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이 설을 인정하지 않는다. 기원은 중동 근처에서 전래된 것이라든지, 고대 로마의 죽이 기원이라든지 설은 분분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분명한 것은 14세기에 이탈리아에서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모양을 만들고, 이것을 삶은 요리의 총칭으로 마케로니(maccheroni)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즉 수제비 같은 모양에서부터 베르미첼리(vermicelli)라고 이름이 붙은 가는 끈처럼 생긴 것까지, 오늘날 파스타라고 총칭하는 것을 마케로니, 즉 마카로니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마카로니의 어원에 대해서는 고대 그리스의 보리 요리 마카리아(makaria)라고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베르미첼리, 영어로 버미셀리는 이탈리아어로 지렁이를 뜻하는 베르메(verme)의 파생어인데, 현재는 스파게티보다 가느다란 면을 가리킨다. 참고로 즉석면으로 익숙한 누들(noodle)이란 영어 단어도 실모양으로 생긴 벌레를 뜻하는 ‘nudel’이 어원이다. 파스타의 대표 격인 스파게티(spaghetti)는 끈을 뜻하는 ‘spago’가 어원인데, 이 단어가 이탈리아에 나타난 것은 18세기 전반으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 파스타의 의미

라틴어에서 유래한 이탈리아어 파스타(pasta)는 ‘반죽’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스파게티와 같은 밀가루 식품뿐 아니라 빵이나 파이의 생지도 파스타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도 스파게티 종류나 빵, 파이 생지를 모두 파테(pate)라고 한다. 영어에서는 보통 파스타 종류는 이탈리아어를 그대로 쓰고, 파이 생지는 도우(dough) 그 밖의 반죽한 제품은 페이스트(paste)라고 구별해 쓴다.

이 외에도 파이를 뜻하는 스페인어 파스텔(pastel)이나 독일어의 파스테테(pastete) 등, ‘반죽’에서 유래하는 단어는 정말 많다.


3. 파스타의 종류

파스타는 모양이나 형태에 따라서 긴 면, 짧은 면과 속 채운 면 등으로 나눈다. 그리고 건조 여부에 따라서 건면과 생면으로 나눈다.

이탈리아에는 20개 주가 있는데, 각각의 주마다 주로 만들어 먹는 파스타의 종류가 다르고, 우주의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은데, 지금까지 알려진 가짓수만도 약 450여 가지나 된다고 하니, 면요리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파스타 디자인 대회를 통해 새로운 파스타들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


면 삶고 있는 계세언 셰프

4. 파스타와 토마토의 만남

토마토는 안데스 지방이 원산지인 가짓과의 식물이다. 16세기에 스페인 사람들이 유럽으로 가져왔지만 좀처럼 식용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관상식물로 재배되던 토마토를 처음 먹은 사람은 이탈리아인이다. 스페인 사람이 새로운 식물을 유럽으로 가져왔을 당시, 나폴리왕국은 스페인령이었다. 그런 이유로 토마토는 이탈리아에서 먼저 식용으로 재배되었다. 18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겨우 프랑스에서 채소로 인정받고, 토마토에 독성이 없다는 것이 알려지자, 19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급속도로 보급됐다. 토마토는 열을 가해도 그 상큼한 산미를 잃지 않기 때문에 채소보다는 오히려 소스의 재료, 즉 조미료로 받아들여졌다.

이 시기에 나폴리에서는 파스타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해냈다. 현재의 파스타를 이탈리아 국민음식으로 일컫는데, 경질밀인 세몰리나(semolina)를 원료로 만들어 씹는 맛이 있는 건조 파스타는 원래 나폴리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남부의 음식이었다. 그래서 남부에서는 파스타를 삶을 때도 ‘알 덴테(al dente)’로 삶아 먹는다. 그것이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진 데는 파스타와 토마토의 행복한 만남이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


5. 파스타와 소스의 궁합

소스는 영어나 프랑스 모두 소스(sauce)인데, 어원은 라틴어로 소금을 뜻하는 ‘sal’에서 파생한 라틴어의 ‘salsa’이다. 이 말은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에서도 그대로 살사(salsa)다.

토마토를 사용한 이탈리아의 살사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간단한 것으로는 ‘포모도로(pomodoro)’나 여기에 앤초비를 넣은 ‘마리나라(marinara)’가 있다. ‘살사 마리나라(salsa marinara)’는 ‘바다의 소스’라는 뜻이다. 프랑스 요리의 소스 에스파뇰처럼 마리나라는 수십 종류에 달하는 소스를 만들어내는 소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살사 지타나(salsa gitana)-집시식 소스’는 살사 마리나라에 검정 올리브를 첨가한 것이다. 이탈리아 요리에서는 ‘볼로녜제(bolognese)-볼로냐식, 흔히 말하는 미트소스’처럼 지명을 따거나, ‘봉골레(vongole)-바지락을 뜻함’처럼 재료명을 그대로 쓴 단순한 명칭이 일반적인데, ‘집시식’처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이름도 간혹 보인다.

달걀노른자와 생크림, 판체타로 만드는 유명한 ‘카르보나라(carbonara)’는 거칠게 간 후추가 숯처럼 보인다고 해서 ‘숯불구이식’이라는 뜻이 됐다. 펜촉처럼 끝이 뾰족한 모양의 펜네에 잘 어울리는 ‘아라비아타(arrabbiata)’는 ‘아라비아식’이 아니라, 고추의 매운맛이 ‘열 받게 한다’는 뜻의 살사다.


6. 코리안 파스타

양재천변, 한때는 파스타 전문점들로 넘쳐났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파스타를 즐겨 먹지 않는 사람이라도 스파게티가 면의 일종이며, 파스타의 하위 개념이라는 사실 정도는 안다. 〈파스타〉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브라운관을 스쳐간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 땅의 파스타의 형편이 좀 나아졌나?

아니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 익숙해졌기 때문에 더 멀어진 것을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실크로드에 맞먹는다는 〈누들로드〉를 거친 파스타. 이 땅에 건너와서는 팔자가 한층 더 기구하다.

일단 국물이 흥건하다. 그렇다. 소스 아닌 국물이다. 최소한의 점성조차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종류를 불문하고 한결같이, 또 꾸준히 흥건하다. 정말 생크림으로 만들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자칭 크림소스 파스타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올리브유 바탕인 것조차 기름이 둥둥 뜬 국물 위에 올라앉아 있다. 까르보나라가 그렇다. 계란 노른자와 파르마산 치즈가 딱히 덜 느끼할 것도 없는 우유크림에게 자리를 내준 것도 모자라 접시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다. 매일 아침 각자의 암탉이 낳아준 싱싱한 계란을 들고 갱도에 발을 디뎠을 광부들에게 미안할 지경이다.

이렇게 국물이 흥건한 파스타가 우리나라에서 대세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 파스타의 핵심인 면과 그 재료인 밀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없이 우리의 국수 문화와 혼동하기 때문이다. 그 혼동 사이에서 태어난 돌연변이가 코리안 파스타다.

국물이 아닌 소스!

우리의 국수는 부드러운 목넘김을 기본으로 기분 좋을 정도의 씹는 맛, 또는 쫄깃함이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대부분 국물 위주고, 비벼먹는 종류라도 양념장이 최대한 국물에 가깝게 물기가 자작자작하며 촉촉하다. 연한 밀로 뽑은 면의 특징을 가장 잘 살려주는 궁합이기 때문이다.

파스타에 쓰이는 밀은 우동이나 소면, 또는 빵이나 케이크의 원료인 연한 밀보다 훨씬 더 단단하다. 그래서 이름마저도 라틴어로 단단하다는 뜻의 두럼(durum) 밀이다. 이를 빻은 가루가 세몰리나(semolina), 라틴어로 밀가루를 뜻하는 ‘simila’에서 비롯된 말이다. 알곡이 단단한 탓에 세몰리나는 연한 밀을 빻은 것처럼 곱지 않고 물을 더해 반죽해도 단단하고 뻑뻑하다. 따라서 수타면처럼 늘려 뽑을 수 없으니 글루텐 함량이 적어 부스러지는 메밀 면처럼 압출, 즉 틀에 반죽을 넣어 누르는 가공을 거친다. 이를 말리면 슈퍼마켓에서 흔히 살 수 있는 바로 그 파스타면이 된다.


파스타면은 소면처럼 쫄깃하거나 부드럽지 않고 꼬들꼬들하다. 그게 바로 특유의 매력이지만 대신 묽은 국물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혹시나 부드러워질까 오래 삶으면 짧게 부서지듯 끊어져버리니 스파게티나 링귀네처럼 긴 면이라면 포크로 감아올릴 수도 없다.

이렇게 파스타면과 국물이 겉돌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삶아서 호화된 면의 겉에는 서로 엉겨 붙게 만드는 전분이 남는다. 연한 밀로 만든 면이라면 서로 달라붙고 엉기지 않도록 삶은 뒤 찬물로 씻어 전분기를 말끔히 걷어 내줘야만 한다. 하지만 파스타의 경우는 정반대다. 남은 전분을 헹궈내 버리면 제아무리 점도가 높은 올리브유, 버터, 돼지기름 등의 지방이라도 면에 달라붙지 않는다. 그 어느 파스타 포장지의 레시피에도 소면처럼 ‘찬 물에 헹군다’는 순서가 없는 이유다.


또 하나의 고질적인 병폐는 다양성의 부족이다. 그렇게 우주의 별처럼 많은 면이 존재하는 이유는 다양성 때문이다. 같은 세몰리나 반죽으로 만든 건면이라도 모양이나 길이에 따라 식감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파스타는 거의 대부분 한 종류의 면, 그것도 흔해빠진 스파게티다. 20년 전의 파스타 전문점의 시대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길이나 두께, 재료에 따라 더 잘 어울리는 소스가 따로 있다. 예를 들어 건더기가 크거나 크림, 또는 치즈를 바탕으로 해 걸쭉한 소스는 가늘고 둥근 스파게티보다 넓고 납작한 페투치네에 더 잘 어울린다. 표면적이 넓으니 소스가 훨씬 더 잘 달라붙기 때문이다.


두럼밀의 단단함은 파스타 조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를 감안하지 않았는지 우리의 파스타는 대부분 싱겁다. 세몰리나로 만든 건면에는 나트륨이 아주 조금 들어있거나 아예 없다. 결국 파스타면에는 간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은 셈이다. 이유는 높은 단백질 함량 때문이다. 세몰리나 면을 뽑을 때 반죽에 소금을 더하면 더 단단해지니 가공 또한 어려워진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면에 소금을 넣지 않는다. 법으로 제한하기도 한다.

이렇게 면에 모자란 간은 삶을 때 반드시 소금을 더해 맞춰줘야 한다. 간을 맞춘답시고 짜장면처럼 소스를 수북이 올려봐야 단단한 면의 속까지 베어들지 않는다. 면을 삶을 때 바닷물처럼 짠물이 필요하다. 1인분 파스타면 100g 기준으로 물 1L, 소금 15g이 기준이다.

때로 달라붙는 걸 막기 위해 파스타 삶는 물에 기름을 더하라는 레시피도 종종 있는데, 이는 아무런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기름은 물과 섞이지 않고 위에 뜨니 별 효과를 못 미치며, 혹 영향을 미치는 경우라도 면의 표면에 막을 이루어 소스가 달라붙는 걸 막기 때문이다.


7. 이것만큼은 꼭 지켜주었으면

요즘은 파스타를 파는 전문점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띤다. 카페에서도, 심지어는 분식점에서 조차도 파스타를 판다. 퓨전음식이든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재료의 조합으로 탄생하는 음식이든 맛이라도 있다면 다행이지만, 파스타의 정체성은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한 가지 아주 단순한 원칙만 지켜주면 된다. 소스가 파스타를 기다려야지, 그 반대여서는 안 된다. 파스타의 본고장 이탈리아까지는 못 가더라도, 최소한 한국은 떠난 파스타를 기대한다.




지금은 없는 추억의 아삐에디 주방 앞에서

계세언은 돈암초등학교 33회 졸업생으로 동소문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우고 돌아와 이탈리아 음식을 만들었고, 최근 새롭게 동소문동에 파스타 가게를 오픈해 ‘1년간 100가지 파스타’에 도전하고 있다.


아삐에디(a piedi) 동소문로6길 4 (1층, 삼선시장 내 횟집과 슈퍼 사이)

(※ 아삐에디는 셰프가 레스토랑에 스카웃되어 문을 닫았다. 다시 돌아와 문을 열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4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9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9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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