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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마 Jun 16. 2023

위대한 생명창조 역사의 재현

아니쉬 카푸어 〈프로토 프로토〉(2009) 비평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Proto Proto, 2009, Acrylic, 87*60*60(cm).


세계미술용어사전(1999, 월간미술)에 따르면 미학에서 숭고란 미적 범주의 하나로, 좁은 의미의 ‘미(美)’와는 대립되는 개념으로 쓰인다. 대상이 인간을 압도하는 크기 혹은 힘을 가질 때 처음에는 불쾌감과 공포를 느끼지만 곧 그 느낌이 사라지면서 유한한 감성으로 하여금 무한한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그럼으로써 대상에 대한 경외, 정서적인 경악이나 황홀경, 즉 넓은 의미의 ‘미’의 감정을 낳는다. 

칸트는 그의 저술 『판단력 비판』을 통해 미와 숭고의 차이를 분석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숭고는 생을 직접적으로 촉진시키는 미와 달리, ‘자기보존’과 관련되어 생을 간접적으로 촉진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숭고의 대상은 인지적인 관점에서 자기보존능력을 압도하거나 신체적인 면에서 압도한다. 이때 그 대상이 인간의 자기보존력을 완전히 무력화시켜 파멸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면 자기보존능력을 적절히 상승시켜 간접적으로 생을 촉진시킨다. 


숭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의 조건으로 가장 쉽게 언급되는 것은 단연 거대한 크기이나, 〈프로토 프로토(Proto Proto)〉(2009)는 86*60*60(cm)의 크다고는 볼 수 없는 작품이다. 본고에서는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가 어떻게 채 1미터도 되지 않는 크기의 작품인 프로토 프로토로 숭고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담아 표현하였는지 분석하고 평한다. 


프로토 프로토는 포스트미니멀리즘(Post-Minimalism) 양식에 분류되는 조각설치 작품이다. 1960년대 후반 나타난 포스트미니멀리즘은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최소화된 수단으로 간결하게 절제된 형태 미학과 본질을 추구하는 콘셉트를 계승하되 그 미학에는 반대하는 신동향이다. 이 작품은 미색 투명한 색감의 공간에 떠 있는 기포 덩어리라는 단순한 형태로 순수한 지적 행동 미술의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에 해당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아크릴이라는 소재를 활용한 기법이다. 작품 중심의 덩어리는 용기에 액체 상태의 아크릴을 붓는 과정에서 발생한 공기 방울이다. 작가는 2007년 〈우주의 새로운 모델을 위한 실험실(Laboratory for a New Model of the Universe)〉이라는 작품에서도 아크릴과 공기를 활용한 작업을 보여주었는데, 이 작업은 아크릴 수지를 성형하는 과정에서 인위로 공기를 주입하여 굳힌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Laboratory for a New Model of the Universe, 2006, Acrylic, 123*134.1*132.7(cm).


〈우주의 새로운 모델을 위한 실험실〉은 생명체의 탄생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투명한 사각의 아크릴 중심에 응집해있는 타원의 형태는 세포 증식과 같은 생명의 발생 단계를 이미지화했다. 카푸어는 이처럼 생명 현상의 과정처럼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작업물에 대해 “원형적인 감각(proto sense)을 불러일으킨다”고 언급한 바가 있다. 〈프로토 프로토〉는 ‘proto(히랍어로 ’초기의, 최초의‘라는 의미의 접두사)’라는 단어가 직접 들어간 제목에서 미루어 볼 수 있듯 여기서 한 단계 발전한 작업물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토 프로토〉는 인위적인 공기의 주입 없이 온전히 용기 안에 아크릴이 부어지는 과정에서만 탄생한 작업이다. 원기둥 모양의 용기에 담긴 아크릴은 약간의 노란빛을 띄는 미색 투명한 색감으로 갖가지 유기물이 함유된 원시바다를 떠올리게 하고, 중심의 형태는 〈우주의 새로운 모델을 위한 실험실〉의 단순한 타원형 구체와는 또 다르게 둥근 구체 가운데를 마치 뼈대처럼 보이는 기포 기둥이 관통한 모양새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약 20억 년 전 원시바다에서 탄수화물로부터 만들어진 복잡한 유기물에 질소가 붙어 생성된 단백질과, 그것을 근원으로 생장분열을 거듭해 탄생한 원시생물을 연상시킨다. 또한 〈우주의 새로운 모델을 위한 실험실〉과 연달아 볼 때 그 발전된 형태는 원시생물의 진화 과정을 목도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유기체의 생성-진화 과정에서 비롯되는 신비감과 경외감은 작품의 소재가 아크릴(무기체)라는 것을 잊게 만들어 무기물과 생명체의 경계를 흐리고 숭고함만을 남긴다. 


작가는 스스로 “미술가의 소명이란 바로 이러한 창조와 탄생의 순간을 증언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듯 미지의, 혹은 먼 과거의, 지금 실재하는 생명체의 근원이 되는 원시적인 유기체를 보여줌으로써 과학적 창조의 순간을 재현한다. 그리고 이런 재현은 아크릴이라는, 현대에 이르러 없어선 안 될 플라스틱 소재로 이루어져 원시와 문명을 가장 짧게 연결시킨다. 이를 통해 관람자는 원시의 바다를 품은 지구의 영원성에 비해 인간의 삶은 한없이 짧고 미비하다는 진실을 사유하고, 동시에 시간의 지배 아래서도 가치 있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 살아가는 정신적 자신의 보존됨을 느낀다. 이 사유와 감각의 과정을 거쳐 숭고함이라는 감정은 마땅히 성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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