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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마 Jul 04. 2023

사람은 삶을 욕망한다

연극 〈육쌍둥이〉(2023) 리뷰


※ 본 포스트에는 연극 〈육쌍둥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극 〈육쌍둥이〉 무대



Ⅰ. 귀향歸香


    저녁 일곱 시 이십 분.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막은 올라있고, 관객이 입장하는 가운데 두 명의 배우로 채워진 무대에서는 이미 행위가 일어나고 있었다. 바닥을 두 쌍의 손발로 기어 다니고 어딘가를 향해 절을 하고, 제4의 벽을 벽 아닌 창인 듯 보며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 히죽대는 여인. 리어카 위에 앉아 주먹에 아이스크림 막대를 꽂다시피 하고 끊임없이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 소년. 열 살 남짓한 나이에 집을 떠나 10년 만에 재회한 다섯 쌍둥이는 세상의 거친 풍파에 긁히고 베인 모양이 역력했지만, 아버지의 그늘 아래 생장이 더딘 채 덜 자란 조진내는 홀로 말간 얼굴이었다. 


    함화자, 이기라, 최고야, 신기해, 박수처, 조진내. 육쌍둥이는 모두 얼굴에 붉은 표식을 지니고 있다. 각각 함화자는 입술, 이기라는 눈, 최고야는 이마-머리, 신기해는 뺨, 박수처는 코, 조진내는 머리카락이다. 잉크처럼 진한 빨간색을 얼굴 이곳저곳에 묻히고 기저귀를 찬 육쌍둥이가 노래하고 춤을 추며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은 시작 전 기이하고 음울했던 분위기를 익살스럽게 반전시킨다. 여인과 조진내가 침묵하는 가운데 마이크를 돌려가며 떠들어대는 쌍둥이들의 발화는 두서라곤 없는 '집단적 독백'이다. 이들이 진작 돌아섰던 집에 돌아온 이유는 고물상 아비의 초상(初喪)이었으나, 아비에게서 물려받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다시 미련 없이 떠나려 한다. 그런 쌍둥이들을 다시 잡아 앉히는 것은, 내내 고요 속에 있던 조진내가 꺼낸 고물상 땅이 재개발 구역에 포함되었다는 문서였다. 


    그 문서는 동시에 불쏘시개가 되어 쌍둥이들의 얼굴에 붙은 불을 키운다. 붉은 분장의 범위가 넓어지고, 음악은 빨라지고, 돈이 생기면 이루고 싶은 자신의 꿈을 말하는 쌍둥이들의 동작이 커진다. 욕망은 번지고 희망은 변질한다. 제 몫을 나서서 주장하지 않는 조진내와 여인을 맡겠다고 자처하며 그들의 몫을 챙기려던 쌍둥이들은 곧이어 꺼내어진 아비의 유서를 읽고 조진내에게 아비를 향한 사랑을 심사받기 위해 춤을 추다가, 결국은 조진내와 여인에게 위압을 행사한다. 극단에 치달은 그때, 타는 듯 붉은 머리칼의 조진내가 울부짖기 시작한다. "내 안의 부우울(불) 꺼주세요!"라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번지지도 않고 머리칼에 붙은 불을 간직하며, 그 불을 끄기 위해 연신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던 조진내. 아비가 그의 아내이자 자신의 어미인 여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우발적으로 그를 살해한 조진내는, 그 살인을 계기로 아비를 태우던 불을 물려받고 말았다. 조진내는 형제들에게 자신을 사르는 그것을 꺼달라고 호소한다. 그때 비로소 무언가를 깨달은 그의 형제들은 조진내를, 서로를 부둥켜안고 노래하며 춤을 추지만, 조진내는 그들 모두를 살해하고, 마지막으로 여인에게 살해 당한다. 혼자 남은 여인은 가족을 파국으로 몰아넣은 불에 대해 이야기하며, 집에 불을 붙이고 집과 함께 오그라든다. 공연 내내 서서히 타들어가던 향처럼. 향내음이 자욱한 집으로 돌아온 육쌍둥이는 그렇게 재가 된다. 



Ⅱ. 우리를 태우는 것은 무엇인가


    연극 〈육쌍둥이〉는 극작과 연출을 맡은 하수민 작연출이 2009년 발생한 용산참사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작품이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 20일 서울시 용산구에서 용산 재개발 보상 대책에 반발한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하던 중 발생한 화재로 인해 6명의 사망자와 24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대참사이다. '건물 꼭대기 망루를 태우는 불이 계속해서 옮겨 붙는다면, 사람에게까지 옮아가다 못해 버려진 사람에게까지 옮겨 붙는다면?' 이라는 발상의 발전 끝에 무대에 오른 〈육쌍둥이〉에서 '불'은 인간의 '욕망'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문명의 촉매로 작용하였으나 잘못 다루면 큰 재난으로 덮쳐오는 불처럼, 욕망 또한 정도나 방향성이 적절할 때엔 삶의 동력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육쌍둥이 가족처럼 파국을 맞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육쌍둥이〉는 공연 팸플릿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그리스 비극의 구성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든 인물이 주인공이 아닌 코러스로 등장한다. 사건을 겪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영웅 없이 상황의 흐름 속에 흘러가는 것이다. 때문에 관객은 대개 주인공이 되는 특정 인물에게 이입하지 않고 철저하게 관람자로서 존재하며 이 가족사를 관망할 수 있다. 사실 이와 같은 태도는 연극의 관객이라기보다는 시사 프로그램의 시청자에 가까운데, '욕망의 양면성'이라는 화두를 제공할 뿐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 이 작품에 어울리는 형식을 적절히 취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게 관객은 100분의 러닝타임 동안 춤과 노래, 웃음과 농담을 주로 보지만, 여인과 조진내에게, 고물상 아비에게, 사람에게 불을 옮긴 도화선과 그 끝의 망루를 간과할 수 없게 된다. 조진내에게 옮긴 것은 고물상 아비다. 고물상 아비에게 불을 옮긴 것은 철거민이 정리된 후 건물에 남은 고물을 모두 주겠다며 그를 끌어들인 자다. 그 자에게 불을 옮긴 것은? 관객은 여인이 붉게 타오르는 모습을 보며 그 너머 표표히 타고 있는 향을 본다. 영정의 띠처럼 둘러진 벽 가운데는 비어있고 빛만이 빈 벽을 비춘다. 관객은 그곳에 자신이 생각하는 얼굴을 그린다. 



Ⅲ. 죄와 불


    하수민 작연출은 지면을 통해 '우리 모두 각자의 마음속에, '스스로를 살리는 불'이 피어나길 바라본다'고 말한 바 있다. 극에서는 직접적으로 '좋은 불'과 '나쁜 불'이라는 말로써 인간을 살리는 불과 파멸시키는 불이 언급되는데, 불이 옮겨진 대상을 '버려진 사람들'로 설정했다는 것이 이 지점에 있어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가장 크게 남는 의문은 육쌍둥이가 희망한 것이 그렇게까지 나쁜 욕망이었는가다. 


    집을 떠난 다섯 명의 쌍둥이는 모두 아비의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어린 나이에 가정의 울타리를 박차고 나섰다. 고물을 주워 팔지만 돌아올 집이 있는 아비도 부업에 손을 벌이는 판국에 어린아이라고 해서 이 사회가 그들에게 친절했을 리 없다. 함화자는 성매매에 뛰어들었고, 이기라는 남이 먹고 버린 짜장면을 훔쳐 먹다가 중화요리집 양녀가 되었고, 박수처는 노숙자가 되었다. 최고야에게 학업이 좌절된 경험은 아비의 죽음으로도 삭여지지 않는 분이고, 부잣집에 입양을 가 쌍둥이들 중 가장 형편이 좋은 신기해도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이들이 돈으로 이루고자 하는 건 별일이 아니다. 그냥 남들처럼 사는 것. 남들처럼 살며 남들이 꾸는 꿈을 꾸는 것. 


    가난한 사람도 악해질 수 있다. 여기에는 부정할 수 없다. 다섯 명의 쌍둥이가 제 몫을 늘리기 위해 조진내와 여인에게 한 행동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악한 행동이다. 그러나 그들의 변명을 묵살해서도 안 된다. 육쌍둥이는 그들 중 학교에 갈 수 있었던 사람이 첫째인 함화자뿐일 정도로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런 육쌍둥이의 파멸을 오로지 그들 개인의 탐욕을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날. 그때. 용산에서 망루에 난 화재로 6명이 죽고 24명이 다친 사건의 책임을 철거민들에게만 물 수 있는가? 


    이 작품에서 '좋은 불'과 '나쁜 불'이라는 표현으로 개인의 욕망에 선악을 규정한 것은 그래서 아쉬움이 남았다. 이러한 이분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면 관객으로 하여금 육쌍둥이가 비극이 된 근본적인 해답을 더 깊이 고찰해보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았을까 싶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이 작품이 어떤 메시지를 피력하는 극은 아니지만, 복잡한 사회 문제가 얽혀있는 것치고 풍자 의식이 다소 부족했다는 감상이 남는다. 다만 '‘지금, 여기’라는 동시대 아래 관객과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공연을 추구'하는 극단 〈즉각반응〉의 성격으로 보아 동시대성을 반영한 변화의 여지는 충분하다. 공연의 막이 내려간 지금부터는, 그런 다음을 기대해본다. 




이미지 출처 즉각반응 공식 트위터(https://twitter.com/immediatelyRE)


육쌍둥이

연극 | 드라마극 | 100분
2023. 06. 23. ~ 2023. 07. 02.
화~금 19:30, 토·일 16:00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작·연출 하수민
출연 권일 이주영 이진경 장재호 정연주 조은아 홍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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