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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미마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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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마 Sep 13. 2023

2023年 9月 13日 밤

근황 및 7~8月 감상작 간단 리뷰


마지막 포스팅 이후로 지나간 시간은 두 달이 넘었는데 그동안 뭘 했는지는 생각이 안 나고, 했어야 했는지 하지 못한 일들은 많아 겸연쩍은 마음이 든다. 10월 초에는 제법 긴 해외여행 일정이 있어 그전까지 해내야 하는 일을 쭉 정리하다가 이 매거진을 새로 개설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지만 변명은 해야겠고, 제대로 된 리뷰로 올라가는 것 외의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도 할 창구가 필요했다. 


원래 8월 초에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와 연극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의 리뷰를 업로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늘어나게 된 아르바이트 근무 일정과 그에 따른 적응 문제로 미뤄졌다. (해당 리뷰는 이번 주 안으로 올라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재미있게 본 작품이 꽤 많았는데 바로바로 글을 쓰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크다. 어제인 9월 12일에는 연극 〈갈매기〉를 보았는데 9월 8일부터 17일까지로 워낙 짧게 하는 연극이라 어쩔 수 없지만, 내 리뷰는 좋은 작품을 소위 '영업'하는 역할은 되지 못한다. 그래도 같은 무대를 공유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의 뇌리에서 그 즐거움을 더욱 길게 타오르게 하는 땔나무 중 하나가 될 수 있길 바라며 열심히 쓰려한다. 






오늘 밤에는 7월과 8월에 감상한 작품을 정확한 감상 날짜의 구분 없이 장르로만 분류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계획 없이 본 영화도 몇 편 있는데 그런 것은 기록을 해두지 않아 이제와서는 알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드라마




마스크걸

장르 드라마, 웹툰 원작 한국 드라마, 스릴러 시리즈

출연 고현정, 안재홍, 염혜란, 나나, 이한별, …


원작 웹툰의 팬이었기 때문에 배우의 캐스팅 소식이 하나둘 들려올 때부터 이 작품과 만나기를 몹시 고대하고 있었다. 진부한 말이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한껏 부풀었던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켰다. 원작에서 각색된 요소들도 좋았고, 드라마에 비해 긴 내용을 7부작으로 축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도가 높다고 느껴졌다. 


다른 리뷰에서도 비슷한 말을 하려는 참이지만 음악을 잘 사용하는 작품이 좋다. 유튜브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뮤직비디오 영상 최신 댓글에는 마스크걸을 보고 들으러 왔다는 글이 한참 올라왔다. 2009년에 발매된 음반이라 그때 추억과 드라마의 여운에 잠겨 한동안 들었는데, 새삼 이 곡이 수록된 앨범 《Type B》의 커버에 'Back to the 80's'라고 적힌 걸 문득 보고 혼자 피식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외 대부분 느껴지는 심상은 역시 서글픔이었다. (서글픔이라는 단어는 슬픔과는 또 다른, 그보다는 가볍고 더 아련한 어감이 있는 것 같다.) 웃으며 핑거스냅 춤을 따라 할 때는 가사가 이렇게 서글픈 내용인 줄 생각도 못했었는데. 


염혜란 배우는 '엄마' 역할에 정말 탁월한 배우다. 사실 엄마 역할이라는 건 창작물 속 여성 캐릭터의 다양성이 부족한 와중에 여성 배우로서 중년이 되면 내몰리고 마는 배우 인생의 말단이었지만, 장르물이 다수를 이룬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 작품의 '경자' 같은 매력적인 엄마 역할이 풍부해지고 있다. 〈더글로리〉의 '매 맞지만 명랑한 년', '현남'을 생각하면, 또 경자와 나란히 떠올리면 이 얼마나 놀라운가. 




영화



존슨 집안의 기묘한 일

(The Strange Thing About the Johnsons)

2011

장르 단편

감독 아리 애스터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관람일을 하루 앞두고 본 작품. 흐름이 매끄러우려면 사실 보(Beau)를 봤어야 했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이 작품 이야기가 나와 그냥 봤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영화는 가장 크게는 공포 영화로 분류됨에도 공포 장르에서 흔히 사용되는 점프 스케어(Jump scare) 요소가 없는 것이 특징적인데, 그 덕에 나처럼 겁이 많은 사람도 공포를 즐길 수 있어 감사하고 있다. 나는 공포 영화를 꽤 좋아한다는 것을 이 작품과 〈보 이즈 어프레이드〉 보고 깨달았다. 


이 단편은 제목 그대로 기묘하다. 한 번 보았을 뿐이라 작품이 은유하고 있는 바나 메시지 같은 것은 잘 모르겠지만 작품의 기묘함 자체로도 적지 않은 인상을 남긴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가족 이야기이고, 그 가족이 풍비박산 나는 이야기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와 비교하면 단편 특성상 템포가 빠르고 간결해서 '웃픈' 코믹함이 더 부각된다. 콩트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작품. 




보 이즈 어프레이드

(Beau is Afraid)

2023

장르 장편, 블랙 코미디, 드라마, 공포, 고어

감독 아리 애스터


나는 블랙 코미디를 정말 좋아한다. 요컨대 이런 것. 어떤 사람이 친한 동창과 은사님의 장례식에 조문하러 갔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온다. '배가 아프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몸은 친구와 같이 저항 없이 신발을 벗고 빈소로 들어섰다. 영정 앞으로 설 때까지 걸음걸음을 의식하고 무엇보다도 의식되는 것은 아픈 배와 잔뜩 조인 괄약근이다. 친구는 그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그의 상태는 첫 번째 절을 하고 일어나는 그 순간 은은하게 넓지 않은 공간으로 퍼져나가는 구린내로 모두가 알게 된다. 상주에게 인사를 하는데 그의 표정은 지친 것과는 다른 이유로 표정이 어둡다. 은사님의 가족친지 가운데 어린아이가 "이상한 냄새난다!"라고 소리친다. 그는 죽고 싶은 기분이다. 그의 친구는 당황스럽다. 이걸 상황 밖의 제3자로서 지켜볼 때의 불편한 마음 그럼에도 입술 밖으로 비져 나오는 웃음 그리고 그걸 참는 것까지도 즐겁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작품이 그렇다. 내가 잠깐 집을 비운 사이 노숙자들이 침입했고 그 안에서 파티가 벌어지는 사이 밖에서 밤을 새워야 했다. 다음 날 집에 들어가 엉망진창이 된 집안을 보고, 잠깐의 안정이라도 취하기 위해 옷을 벗고 욕조에 몸을 담갔는데 알 수 없는 위화감에 고개를 들어보니 천장에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노숙자가 양쪽 벽 사이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다. 노숙자는 팔에 힘이 풀려 떨어지기 직전이고 마침 거미 한 마리가 그를 깨물러 다가온다. 이걸 보며 몇 번이고 눈썹을 찌푸리고 웃지 않을 자신이 없는 것이다. 


이 영화의 어떤 부분은 피터 위어 감독의 〈트루먼 쇼〉와도 비슷한 점이 있다. 작업을 하거나 잘 때 ASMR처럼 트루먼 쇼를 틀어놓곤 했는데 이 영화로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Slumdog Millionaire)

2009

장르 범죄, 로맨스

감독 대니 보일


이 영화는 최근에 처음 만난 사람이 자신의 인생 영화로 꼽아서 보게 되었다. 보는 내내 '인도 영화 치고(※ 영국 영화다) 춤과 노래가 안 나오네' 라고 생각했는데 맨 마지막에 나온다. 주인공 '자말'이 출연한 퀴즈쇼의 호스트가 화장실에서 자말에게 가짜 정답을 알려주는 장면이 가장 흥미로웠고,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작품을 보고 싶다는 단상이 남았다. 




복수는 나의 것

2002

장르 범죄, 미스터리, 스릴러, 블랙 코미디, 하드보일드, 피카레스크, …

감독 박찬욱


복수 3부작 중에서는 〈친절한 금자 씨〉만 예전에 봤는데 이번에 별 계기 없이 다른 두 작품을 한꺼번에 보았다. 결론적으로 이 〈복수는 나의 것〉이 최애 작품이 되었다. 3부작 중 가장 웃기다. 송강호가 맡은 '동진'이 칼을 맞는 마지막 장면이 백미. 복수는 나의 것의 블랙 코미디는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그것과는 결이 다른데, 슬픔이 겹겹이 껴있기 때문이다. 가난하다고 행복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가난에게 부름 받는 건 대개는 깊은 슬픔이다.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 라는 대사 중 '착한 놈'이라는 말이 아픈 이유다. 류는 착하지만 가난하고, 가난이 그를 슬프고 나쁘게 만들었다. 


복수 3부작에는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로 사소한 실수가 보이지 않게 적립되어 업보로 돌아오는 상황이 꾸준히 제시되는데, 이것이야말로 '복수심을 야기하는 비극'의 패턴이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내가 어쩔 수 없었던, 그런 일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역린을 찌른 치명타가 될 수 있고, 나의 고통과는 무관하게 살고 있는 상대를 바라보는 그 고통은 어떻게 측량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적절한 때에 미안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올드보이

2003

장르 범죄, 미스터리, 스릴러, 하드보일드, 피카레스크, …

감독 박찬욱


위에서 한 이야기에 이어〈올드보이〉의 '대수'는 그야말로 실수투성이다. '우진'에게 한 과거의 실수는 물론이고 사소하게는 노상방뇨를 하고,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근친상간까지 하게 된다. 


올드보이의 리뷰는 이미 넘쳐나고 오래된 영화인 만큼 새로이 제시할 수 있는 감상은 없는 듯하다. 다만 이렇게나 오래 정신을 지배하고 속을 사르는 감정이 궁금할 뿐이다. 물론 아들이 살해 당하거나(마스크걸의 경자) 연인 관계였던 누나가 소문 때문에 자살하는(우진) 일 따위가 일반적이지는 않아서 쉽게 공감할 수 없는 게 당연하겠지만, 오늘은 뒤로 흘러가며 시간에 희석되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는 것이 아직은 쉬이 믿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구를 관자놀이에 갖다 대는 우진의 슬픈 눈을 보고 있자면,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실감 나게 잘 쓴 괴담 속 귀신이나 엄마의 이야기 속 엄마 친구가 보고 온 용한 점집의 무당처럼, 그것들을 상상할 때처럼 긴 시간에도 녹지 않는 슬픔의 덩어리를 상상하게 된다. 




오펜하이머

(Oppenheimer)

2023

장르 스릴러, 전기, 전쟁, 드라마, 정치, 시대극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이 영화의 강점은 단연 플롯이지만 나는 '스트로스 제독'이라는 캐릭터를 위해 지면을 쓰고 싶다. 영화 자체에는 별 두 개 반에서 세 개 정도 줄 수 있지만 스트로스에게는 다섯 개를 다 줄 수 있다. 이유는 자격지심이 심한 캐릭터를 좋아한다는 단순한 것이지만 '(목적이) 처벌하는 것이 아닌 몰아내는 것'이라는 캐치프레이즈성 대사도 인상적이었다. 오펜하이머를 향한 스트로스의 앙심도 근원을 찾으면 아주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트로스는 오펜하이머가 자신을 낮잡아보고 무시한다는 생각에 오래 갇혔지만 그렇다고 확신하게 한 사건에서 정작 오펜하이머는 스트로스를 의식조차 하지 않았다. 위에서 다룬 비극의 패턴과 달리, 해당 사실이 밝혀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많은 관람자들은 쉽게 스트로스를 경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전혀 미적이지 않은 점이 스트로스를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든다. 


인간은 그들 자신의 생각보다 더 무른 존재다.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기분에 큰 영향을 받고, 분노나 슬픔을 몰아내지 않고 손수 키우기도 한다. 해서 그것을 동력 삼아 타인을 짓밟으면 그것으로써 감정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아들이 죽거나 누나가 자살하는 일은 또 다를지 모르지만 누가 나를 낮잡아본다는 것 정도는 그를 파멸시키지 않고도 얼마든지 모멸감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캐릭터는 그걸 평생 알지 못하기에 아름다운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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