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 <프렌즈> S7 E22 리뷰
*주의: 드라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많은 남자와 바람을 피웠다. 집안일을 봐주던 직원과도 관계를 맺었다. 조심성 없는 부친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가 남자와 부적절한 행위를 갖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겨우 7살 때였다.
부부 관계가 원만할 리 없었다. 계속 마찰을 일으키던 부모는 추수감사절에 이혼 결정을 내린다. 그가 아직 9살 때였다. 그때 생긴 트라우마 때문에 그는 여전히 추수감사절 음식을 피한다.
그런 그가 2주 후면 결혼한다. 약혼녀는 그가 아버지를 초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고. 과연 약혼자는 그의 상처를 헤아리기나 하는 걸까.
상처 많은 남자, 평생의 짝을 만나다
미국 시트콤 ‘프렌즈’(1994~2004) 시즌7 에피소드22 ‘챈들러의 아버지’는 이처럼 심각한 문제를 다룬다. 결혼식에 아버지를 부르지 않는 것은 웬만해선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누구보다도 자식의 결혼을 축하하고 싶을 아버지를 초대하지 않는다는 건 오랫동안 마음에 짐으로 남을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정 파탄의 원인이 아버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챈들러(매튜 페리)는 가정에서 받은 상처로 인해, 여성과 진지한 관계를 맺는 걸 오랫동안 어려워했다. 그러다 모니카(커트니 콕스)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꿈꾸게 되고, 비로소 결혼에까지 마음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약혼자가 아버지를 결혼식에 초대하라고 권하고 있다. 자신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임을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도 말이다.
사실 이것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상당히 무리한 요구처럼 느껴질 수 있다. 모니카는 ‘프렌즈’에 등장하는 친구들 중 비교적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인물이다. 부모가 오빠인 로스를 좀 더 편애하긴 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자식들을 기복 없이 사랑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렇기에 그녀는 약혼자의 상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난한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이 무난함의 정반대 편에 있는 집안에서 자란 이가 받은 상처를 완벽히 파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버지를 향한 챈들러의 증오가 어떤 형태를 하고 있는지 그녀가 속속들이 알기는 무리가 있다. 그가 그녀의 태도를 ‘배려 없음’으로 규정하고 돌아서도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장한 부친을 바에서 만났지만, 마주 볼 용기가 없었다
챈들러는 그녀를 설득하려 한다. 아버지가 이혼 이후에도 자신의 행사 때마다 여장한 채로 참석해서 부끄럽게 했던 일을 털어놓는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모든 수영 대회에 자리했는데, 할리우드 신인 여배우처럼 입고 왔을 때 느껴지는 민망함이 어떤 것인지 묘사한다.
모니카 또한 챈들러를 설득한다. “중요한 건 당신의 모든 수영 대회에 참석해서 응원하셨다는 거잖아. 좋은 아버지인 거지.”
이후 두 사람은 챈들러 아버지가 드레스를 입은 채 무대를 펼치는 라스베이거스 바로 향한다. 이미 성전환 수술까지 받은 아버지가 남자들에게 매력을 발산하며 노래하는 모습을 챈들러는 보기 힘들어한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와 대면하고, 결혼식에 와달라고 초대한다. 챈들러는 오랜 시간 외면해 왔던 아버지를 그렇게 용서한다.
“너를 위해서” 상처를 극복한다
‘챈들러의 아버지’는 ‘프렌즈’의 많은 팬이 최고 회차로 꼽는 에피소드다. 챈들러가 자신을 괴롭게 했던 내면의 어두움을 직면하고, 넘어서는 순간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 에피소드는 트라우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사실 챈들러는 아버지를 초대하는 게 옳은 일이라는 모니카의 설득에 깊이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챈들러가 아버지를 만나는 건 스스로 밝혔듯 “너(모니카)를 위해서 하는 것”일 뿐이다. 사랑하는 약혼자에게 “져준 것”이다.
우리는 사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입게 된다. 어떤 때는 내가 잘못해서, 어떤 때는 남이 잘못해서, 어떤 때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도 할퀴어진다.
그것을 극복하는 건 우리가 예전보다 성장했을 때일 수도 있다. 여러 사람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 소소한 성취를 경험하는 동안 우리 내면이 예전보다 단단해져서 “그런 일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웃어넘길 수 있게 됐기 때문일 수 있다.
챈들러의 사례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상처를 극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챈들러가 아버지를 대면하기로 마음먹는 건 “네가 그토록 원하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그리고 그 결심 때문에 실제로 상처를 극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저 꿈과 희망을 그리는 시트콤이기 때문에 가능한 에피소드일까. 생각보다 이런 사례는 적지 않다. 예를 들어, 가족과 친구, 또는 스스로가 만든 여러 상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던 사람이 부모가 된 이후 “자식을 위해서” 상처를 극복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울타리가 돼줘야 하는데 자기 상처를 부둥켜안고 계속 괴로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그러다 보면 상처가 극복되기도 한다.
고통받았던 매튜 페리, 그곳에선 챈들러처럼 웃을 수 있길
‘프렌즈’의 팬들이 챈들러를 사랑했던 건 그가 완벽한 품성을 갖춘 인물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각종 사건과 사고를 겪은 챈들러는 종종 지나치게 비관적인 생각으로 주변 사람을 힘들게도 했다.
하지만 그는 늘 유머러스한 태도로 어려움을 극복하려 했고, 남에게 웃음을 줬다. 어쩌면 그는 ‘상처 입은 치유자’였는지도 모른다. 결혼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그는 자기 인생을 내주고 싶은 짝을 만났고, 결혼 이후 아내를 위한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다. 모니카와 결합한 뒤 챈들러가 보여주는 넉넉한 웃음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우리가 성숙해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챈들러 빙을 연기한 매튜 페리가 최근 사망했다. 그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부모가 이혼하고, 성인이 돼서는 제트 스키를 타다가 큰 사고를 당하는 등 순탄치 않은 삶의 여정을 지났다. 챈들러를 연기하며 세계인에게 위로를 주던 그 순간에도 약물 중독으로 고통받고 있었다고 하니, 그는 진정 상처 입은 치유자였던 것이다.
친구들이 정든 집을 떠나던 ‘프렌즈’의 마지막 회를 보며, 그들에게 아무런 아픔도 없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많은 팬이 그랬을 것이다.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또다시 기도하게 된다. 어느 종교가 묘사한 내세든지 간에, 그곳에 그가 당도한다면, 진정 행복하기를 바란다. 늘 같은 장소에서 기다려주는 친구들을 다시 한번 꼭 만나게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