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네에서 맛보는 에세이.
'밑바닥에서부터 시작.'
내 단골 떡볶이 집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 문장이 아닐까 싶다. 아파트 단지 앞 포장마차부터 시작해서, 가게가 점점 확장되더니 이젠 체인점까지 낸 떡볶이집이다. 이젠 포장마차 아줌마에서 사장님이 된 그녀의 떡볶이 맛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고, 언제나 맛있다. 이곳의 떡볶이는 맵지 않고 달짝 지근하며 끝 맛은 젓가락을 쉬지 않게 할 정도로 여운을 주는 맛이다. 캅사이신 느낌의 자극적인 매운맛이 아닌 고춧가루와 고추장으로만 낸 매콤함이다 보니 은은한 맵싸함이 감돈다.
SNS나 인플루언서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집의 마케팅 비법은 입소문이다. 사업가의 마인드와 전략보다는 친숙함과 변치 않는 맛으로 동네 주민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이곳의 떡볶이는 엽기 떡볶이나, 국물 떡볶이와 다르게 전혀 무거운 느낌이 아니다. 예전의 국민 간식이라 불렸던 떡볶이, 그 정서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학교 끝나고 1000원짜리 주며 종이컵에 받았던 그 떡볶이가 파, 어묵과 함께 버무려져 먹음직하게 나온다.
나는 다이어트 중에도 불구하고, 하루 날 잡고 이곳에서 떡볶이를 먹기로 다짐했다. 이 떡볶이를 먹고 나선 더 뛰고, 더 운동하고, 더 굶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생각나버린 맛의 향연이 내 침샘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다이어트 중에 생각나는 음식점이 진짜 맛집인 듯하다. 굳건한 의지 속에 본능적으로 생각나버리는 그곳들. 한번 꽂히면 그 유혹을 이겨내기엔 감내해야 할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 차라리 한번 먹어버리는 낫다는 자기 합리화가 끝날 때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곳 앞에 와있었다.
오랜만에 와도 날 잊지 않고 인사해주는 아주머니들. 안부 묻는 목소리에 차마 다이어트 중에 왔다곤 말 못 하고, 생각나서 왔다는 흔한 변명을 해버렸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떡볶이를 하나 시키고, 먼저 나온 어묵 국물로 목을 잠시 축였다. 뜨뜻하게 우린 국물이 식도에 흘러 뱃속까지 따듯하게 만들어, 떡볶이를 먹기에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주는 듯하다. 굶은 상태로 와서 미각이 제대로 돌았다. 그렇게 나온 떡볶이. 역시 내가 상상하던 모습 그대로다. 난 길거리에서부터 시작된 이 좋은 떡볶이를 먹기 위해 천천히 젓가락을 들었다.
하나를 집고 입에 넣는 순간, 앞에서 말했던 변치 않는 맛이 내가 기대했던 맛의 수준을 제대로 충족시켜줬고 다이어트 중에 먹은 거라 그런지 더 음미해서 먹었다. 이 떡볶이 특유의 쫄깃함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천천히 씹어 먹으니 떡볶이 소스의 맵달찌근함 다음엔 떡의 고소함이 은은히 느껴졌다. 한 번씩 떡볶이 소스가 흥건히 잘 스며들어있는 어묵과 파가 입맛을 더욱 돋우고, 떡볶이는 그렇게 계속 고소함이 느껴질 때까지 하나하나 천천히 꼭꼭 씹어 먹었다.
그렇게 다 먹고 나니, 다이어트 중에 참지 못한 충동에 대한 죄책감이 없었다. 도리어 먹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고수할 수 있는 것. 우린 그걸 신념이라 부른다. 이 떡볶이집은 맛이라는 신념이 있다. 길거리 포장마차부터 시작해서 겨우 낸 가게가 한번 불나기도 하고, 여러 풍파를 겪었다. 그럼에도 변치 않는 맛은 어찌 보면 인간의 위대한 의지와 같아 보인다. 위대하다는 것은 삶의 태도가 누군가에게 감명을 준다는 뜻이니, 아무래도 이 말이 내가 먹은 떡볶이에 들어맞는 말이 아닐까.
'좋은 떡볶이, 위대한 떡볶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