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의 서재 May 27. 2024

스팅, 자연의 따끔한 맛

침 쏘는 곤충들의 신기한 세계

5월 20일은 세계 벌의 날이었다. 생태계에서 벌이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알리기 위해 UN에서 2017년에 지정했다고 한다. 나는 나날이 사라지는 꿀벌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껴 무릎을 꿇고 책을 정독하지는.. 않고 순전히 침을 쏘는 곤충에 대해 알고 싶어 책을 골랐다.


이 책은 정확히 말하면 꿀벌과 개미가 포함된 벌목과의 침을 쏘는 곤충에 대한 책이다. 저자인 저스틴 슈미트는 독침의 고통지수를 4단계로 나눈 슈미트 지수를 만들어 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침을 직접 맞아보고 점수를 매겨본다니.. 이런 괴짜 같은 사람이 실제로 있었구나 하고 감탄하며 읽었다.


저자가 슈미트 지수를 만들어낸 괴짜라는 사실을 배제하더라도, 책은 쉽고 알찬 내용으로 가득했다. 벌과 개미가 침을 쏘게 된 이유를 인간의 경제활동이나 진화론을 예로 들어가며 누구나 알기 쉽게 설명했다. 침을 쏘는 곤충만 줄줄이 나열했어도 재미는 있었겠지만(아닌가.. 나만 재밌었을까..) 곤충이 침을 쏘게 된 이유, 모든 침이 다 아픈 것인지, 누구에게나 아픈 것인지, 의문이 생길법한 질문을 속 시원하게 긁어주는 책이었다.





인간이 경제활동을 하며 돈을 버는 것처럼. 생명체의 활동 역시 희귀한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것과 같다. 육식동물은 자신이 자체 생산하지 못하는 아미노산, 비타민 같은 희귀한 자원을 다른 생명체를 섭취하며 얻는다. 생명체의 활동의 중요한 요건을 요약해 보자면 자신이 활동하며 소모하는 에너지보다 섭취하는 에너지가 많아야 한다 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곤충은 포식자가 보기에 에너지 효율이 상당히 괜찮은 먹잇감 중에 하나이다. 식물은 영양분의 밀도가 낮고 소화하기 어려운 물질이 많다. 소가 식물의 섬유질을 소화하기 위해 여러 위를 가지고 미생물의 도움을 받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곤충은 너무 작다는 부분만 빼면 식물에 비해 ‘괜찮은 ‘ 먹잇감이다. 다만, 작은 곤충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소모되는 에너지가 섭취했을 때 얻는 에너지보다 더 많다면, 굳이 곤충을 사냥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곤충 한 접시라면 육식동물들도 입맛이 싹 돌 수 있다. (인간은 그렇지 않겠지만..) 많은 수의 곤충을 한 번에 사냥이 가능하다면 얻는 에너지가 활동하는 에너지보다 높을 것이라고 추측이 가능하다. 그리고 곤충은 작기 때문에 비슷한 에너지를 섭취할 수 있는 다른 사냥감보다는 사냥하기에 쉬웠을 것이다. 여기에서 군집생활을 하는 곤충들이 방어수단으로써 침을 발달시켰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사회생활을 하는 곤충들이 생겨나자 이를 먹잇감으로 노리는 대형 포식자들이 생겨나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침을 쏘는 곤충들이 살아남는 선택압이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의태나 맛이 없는 물질을 체내에 생성하는 등의 다른 방어법도 생겨났다고 한다.)


그럼 여기에서 자연스러운 의문점이 더 생겨난다.

(1)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단독생활 곤충의 침은 무슨 역할을 하는가?


(1)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선 침을 쏘는 곤충의 조상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침을 쏘는 곤충의 머나먼 조상은 잎벌(sawfly)이다. 이 잎벌은 단단한 산란관을 통해 식물 줄기를 뚫고 안전한 곳에 알을 낳는다. 이 산란관이 곤충 침의 시초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생말벌(parasitoid wasp)을 보면 산란관 진화과정의 분기점을 알 수 있다. 기생말벌은 알을 낳을 숙주의 몸을 마비시키기 위해 침이 산란관 역할도 하고 마비침 역할도 한다. 그러나 이 침은 대형 포유동물인 인간에게는 거의 통증을 일으키지 않는다. 기생말벌은 단독생활을 하기에 대형 포식동물에게 의미 있는 먹잇감이 아니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기생말벌의 침도 대형포식동물에 대항하는 진화를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곤충의 침은 산란관의 기능이 사라짐으로써 독침으로서 더 특화되어 발달하기 시작한다. 운동으로 치면 고등학교 때까지 투타겸업을 하던 선수가 진로를 정해서 매진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관찰할 수 있는 침을 쏘는 원시개미나 단독성 말벌의 침은 ‘마취’와 ‘통증’의 기능을 한다. 이는 독침이 산란관의 기능이 제거되어 발달한 중간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대비되어 현재 대부분의 꿀벌 등 사회성 말벌은 오로지 포식자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독침을 사용한다.




통증시스템의 빈틈을 노린 ’ 독침‘


https://ko.m.wikipedia.org/wiki/총알개미

통증은 우리 몸에서 현재 ‘위험’ 하거나 ‘위험할 예정’이라는 상태를 경고하는 신호체계이다. 곤충의 독침은 이런 신호체계의 허점을 잘 이용한 방어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아프지 않은데 자꾸 아프다 아프다 하고 신경계를 속이니 진짜 아파져 버린 것과 같다고 할까. (가스라이팅..?)


곤충의 통증 지수를 계량화한 슈미트 지수는 1에서 4까지 있다. 참고로 꿀벌은 2이다. 4의 통증은 아프다 수준이 아니라 정말 ‘심각할’ 정도의 통증이다. 4의 통증을 주는 곤충 중 하나가 총알 개미인데, 우리에게 익숙한 앤트맨에서 등장한 개미가 이 개미이다. 이름이 총알 개미인 이유도 총에 맞은 것처럼 끔찍한 고통을 주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책에서는 ‘순수하고, 강렬하며, 감탄할만한 고통. 7cm가 넘는 긴 못이 발뒤꿈치에 박힌 채로 불타는 숯 위를 걷는듯하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런 끔찍한 고통을 주지만, 그 고통만큼 생명체에게 유독하지는 않다고 한다.(물론 많이 물리면 고통에 의한 쇼크사의 위험이 있지만 저자는 실제 총알개미에 쏘여 사망했다는 사례는 아직 접하지 못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실제로 남아메리카의 한 부족에서는 성인 의식으로 총알개미가 들어간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몇 시간이나(… 어른 안할래) 소리 내지 않고 버텨야 하는데.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고 성인식을 치르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사망자는 없다고 한다. 


여기까지 곤충의 침 진화과정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봤다. 추가로 재미있게 봤던 곤충을 몇 가지 소개하고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단독생활을 하는 곤충의 경우 독침이 약하거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언급했다. 사실 모든 경우가 그렇지 않다. 그리고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게 진화의 재미있는 점인 것 같다.


개미벌(velvet ant)은 단독생활을 하며 벌과 같은 사회곤충 둥지에 알을 낳아 번식을 한다. 이 친구는 여타 다른 벌과 다르게 여섯 가지나 되는 강력한 방어체계를 가지고 있다. 기다랗고 강력한 독침(슈미트 지수 3), 바위처럼 단단한 몸, 신속하고 빠른 다리, 시각적 경고메시지를 전하는 강렬한 색, 후각을 자극하는 경고용 화학물질, 청각 경고를 보내는 소리까지.


개미벌이 이토록 강력한 방어수단을 여섯 개나 가지게 된 이유는, 개미벌의 번식을 위한 환경이 거의 모든 포식자에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미벌의 숙주가 되는 곤충들은 탁 트이고 노출된 환경에 사는데 이런 환경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포식자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주로 산란활동을 하는 암컷 개미벌은 날 수가 없다. 그렇다 보니 개미벌은 물고기를 제외한 곤충,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등 거의 모든 포식자들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런 다양한 포식자를 방어하기 위해 강력한 방어체계를 갖추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럼 마지막으로 여기서 궁금해지는 점 한 가지 더.

만약 이렇게 강력한 방어체계를 갖추었지만 쓸모없는 환경에 노출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https://en.m.wikipedia.org/wiki/Harvester_ant

수확개미는 포유류에게 가장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는 강력한 독이라는 ‘방어체계‘를 가지고 있다. (수확개미 한 마리의 독은 쥐 여러 마리를 죽일 정도로 강력하다고 알려져있다.)

수확개미 중 한 종인 포고노미르멕스 안젠시스(Pogonomyrmex an-zensis)는 환경조건이 아주 혹독한 곳에 산다. 이 개미가 서식하는 캘리포니아 안자보레고 사막에서는 포식자를 마주할 일이 거의 없다. 

과학자들이 이 녀석들의 독주머니를 조사해 보니 독주머니 용량의 1/6 정도만 차 있었다고 한다. 물론 남아있는 독을 조사해 보니 여전히 포유류에게 아주 유독한 성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강력한 독을 생성하는 것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므로, 생산량을 줄여 에너지를 줄이는 방식으로 환경에 적응한 것이다. 

자연의 경이로움이란…!




장난스럽게 꿀벌의 날을 서두로 글을 시작하긴 했지만, 꿀벌은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이 먹는 작물의 75%가 꿀벌에게 수분을 의지하며(야생식물은 90%) , 문명이 생기기 이전부터 인간은 벌통을 털어먹었다.(조금 더 미안해진다) 꿀벌이 살 수 없는 지구는 인간도 살 수 없다. 꿀벌이 돌아올 수 있는 지구가 되길 바라며, 이만 글을 줄여본다.

작가의 이전글 스토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