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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의 서재 Jul 08. 2024

이야기를 잃은 인간은 방황한다

서사의 종말, 한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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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발달로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지금, 우리는 초연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류 역사 그 어느 때보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우리는 왜 과거보다 더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까?


저자는 외로움이 인류가 서사를 잃은 부작용 중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사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긴 이야기이다. 난 이러이러한 인생을 살아왔고, 앞으로 이런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주관). 만약 사람의 인생이 책이라면 이런 제목의 책이었으면 좋겠고, 이런 줄거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철학(주관)이 서사가 있는 책(삶)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우리를 서사의 종말로 이끌었을까? 저자가 지적하는 원인은 정보 과잉이다. 우리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서 필요 이상의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다. SNS의 게시글은 소통보다 광고, 혼잣말에 가깝다. 마치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는 강과 같다. OTT의 콘텐츠는 사유를 만들지 않는다. 하루 종일 콘텐츠를 시청하는 빈지와칭(binge watching)은 우리를 생각 없는 좀비로 만든다.


SNS의 또 다른 문제점은 나와 타자의 경계를 지운다는 것이다. 우리는 터치 몇 번으로 이웃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이런 정보는 마치 그 이웃을 잘 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초연결 사회는 타자와 나의 경계를 없애고 거짓된 소속감을 만든다.


저자가 지적하는 또 다른 문제점은 공동체 서사의 부재이다. 과거 작은 사회에서는 공동체의 선, 도덕이 존재했다. 우화나 전래동화를 통해서 지켜야 하는 공동의 선을 만들었다. 이런 이야기는 시간이 흐르면 다시 누군가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재생산되어 다듬어지면서 그 사회를 지켜주는 보호막 역할을 했다.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공동체의 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은 철저히 무의미한 정보로 싸여 고립되어 있다. 스마트폰의 저변화는 기록을 쉽게 만들었고, 쉬운 기록은 오히려 서사의 종말을 불러왔다. 기록을 위한 기록은 서사를 생산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뜻깊은 순간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진과 동영상을 다시 살펴보았을까?


니체는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반대로 말하면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는 사람은 쉽게 무너진다. 살아야 하는 이유, 즉 서사가 없는 인간은 방황한다. 우리가 과거보다 더 소외감, 고립감,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개인의 서사, 공동체의 서사를 가지기 위해선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개인적으로 글쓰기의 활성화가 작은 해결책이 된다고 생각한다. 작게는 일기부터 시작해서 그 기록이 쌓이면 개인의 서사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글쓰기 공동체가 있다면 공동체의 서사가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SNS를 통해 게시되는 글이 아니라 내면의 침잠과 고민을 통한 글쓰기는 대면과 유사한 효과가 있다. 그 어떤 해결책이든 쉽게 문제가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이미 사회는 정보화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이 너무 많이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문제의식을 느끼는 개인이 많아지고, 그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시간이 쌓인다면, 언젠가는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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