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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의 서재 May 25. 2024

생각의 속도

생각에 속도가 있다면

이과생처럼 생각해 보자면 속도가 있으려면 시작점과 도착지점 그리고 속력이 있어야 한다. 생각의 시작점은 무엇일까. 어떤 대상에 대한 생각일까. 그럼 끝 지점은 무엇일까. 다른 대상으로 생각이 옮겨간 시점으로 봐야 할까. 그럼 속력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일정 시간 동안 생각해 낸 단어의 횟수로 정할 수 있을까. 생각의 흐름대로 적긴 했지만, 너무 어렵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해보자. 대화를 잘하려면 잘 들어야 한다. 잘 듣고 이해해야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말이다. 듣기에는 생각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 사람의 입장에서 맥락, 상황, 감정을 이해하는 ‘생각’이라는 공정이 포함되어 있으니 말이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생각의 속도를 양 극단의 사례로 나누어보자. 생각이 빠른 사람은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운전자와 같다. 운전자에게 주변 풍경을 볼 여유는 없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사람에게 중요한 건 바로 앞 목적지다. 부딪치지 않기 위해, 살기 위해선 앞에 집중해야 한다. 생각이 빠르면 상대의 말을 들을 때 표면적인 의미만을 받아들이기 쉽다. 정말 그 사람이 의중이 무엇인지 파악할 여유는 없다. 옆으로 지나가는 빠른 풍경처럼 그저 빠르게 스쳐 지나갈 뿐이다. 생각이 빠른 사람에게 듣기란, 목적이 있어야 한다. 목적지라는 도착지가 있어야 속도가 생기니까 말이다.  


생각이 느린 사람이라면 어떻게 들을까. 생각의 속도가 느린 것은 걷기와 같다. 집주위를 천천히 산책해 보면 우리가 보지 못했던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길가의 꽃, 들꽃의 여름 향기, 졸졸졸 흐르는 강물 소리. 산들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들. 빠르게 지나갔다면 놓쳤을 아름다운 것들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찬찬히 뜯어보면 친구의 행동이 보인다. 목소리의 높낮이, 눈동자의 떨림. 손의 움직임은 어떤가. 대화를 할 땐 어떤 단어를 반복하는가. 시선은 어디로 향하는가. 자꾸 문쪽으로 시선이 향하는데 내가 집중하지 못하는걸 눈치챈 걸까. 조금 더 집중해 보자. 생각을 천천히 해보면 이야기가 들리는 것이 아니라 화자가 보인다. 어떤 사람이 왜 말하고 있는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어떤 심정으로 말하고 있는지. 행동으로 어떤 심정을 보이고 있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느리게 생각하는 듣기(?)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경청이 될 것이다. 경청하는 순간부터 내 시간과 공간은 화자에게 한정된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부터 내 의지는 너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렇다. 누군가 내 말을 경청해 준다는 것은 그만큼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즘은 누군가의 말에 경청해 주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경청해 주는 사람(목적지)이 없다 보니 의미 없는 말들이 더욱 많아진 것 같다.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더 많아졌으나 들어주는 이는 없으니 그 울림이 더욱 공허하다.


생각의 속도에서 경청까지 의식의 흐름이 와버렸다. 글의 끝을 어떻게 맺어야 할까. 경청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나조차도 그러하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 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눈동자 굴리는 소리가 난달까) 결국 경청하지 못한 내 말은 그 사람의 마음에 닿지 못한다. 그 사람에 닿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말을 내 가슴에 집어넣어야 한다. 가슴에 집어넣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한다. 잘 듣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늘부터 잘 듣기 위해 잠시 나를 내려놓으려 한다. 명상을 할 때 내 호흡에 집중하는 것처럼. 경청을 할 땐 나를 잠시 잊고 상대방에게 집중해보려고 한다. 명상을 수련하는 것처럼. 경청도 수련하다 보면 언젠가 내 말도 당신에게 닿을 수 있겠지. 부족한 집중력을 달래 보며, 오늘도 생각의 속도를 조금 늦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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